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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을 하라

이종덕 |2007.05.18 12:27
조회 41 |추천 0
“밥 묵자!”

모 방송국에서 주일 밤에 방영하는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대화가 필요해》는 항상 아버지의 이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는 같은 말을 하지만 다른 뜻이요 다른 상황을 언급하는 가족 간의 대화는 예의 서너 번의 대화로 매듭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곤 “밥 묵자”, “일단 밥 묵자”로 위태한 가족의 식사는 계속 이어져 간다.


가족 간의 대화가 없음을 풍자하면서, 아들과 엄마와 그리고 아버지로 이어지는 단절과 ‘단절의 연속’을 보는 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이 오늘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으로 공감 되어서 더욱 그렇다.

가족 간에 대화가 끊어지고, 서로를 철저히 모르고 살아감은 비극적이라 하겠다. 대화 없음도 문제이지만, 대화할 줄 모르는 것은 더 큰 어려움이다. “대화법”을 인터넷 검색어로 살펴보면 무수한 기교와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만, 어쩌랴 ‘법(法)’일 뿐인 것을...... 그렇다고 늘 ‘밥이나 먹고 보자’고 할 수만은 없지 않는가?

비극적인 이 가족은 비극의 현실 속에서도 식사 자리는 항상 함께하고, 끝없이 말문을 여는 아들이 있고, 힘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인내가 있고, 익숙하지 않아서 표현하지 못하는 관심이 있어 희망적이기도 하다.

그 희망의 한 쪽 끝을 부여잡자. 그리고 이제 다른 한 쪽 이야기를 영화의 힘을 빌어서 더 해보자.

대화는 교감(交感)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화할 상대의 상황과 형편을 살펴보아서 말문 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영화로 감독의 영화『미시시피 버닝』이 있다.

1964년 미 남부지역, 남부흑인 참정권 획득을 지지하기 위해 북부에서 내려온 세 청년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미 연방 수사요원 앨런 워드(윌리엄 데포)가 수사책임자로, 루퍼트 앤더슨(진 헤크만)이 수사관으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원칙에 입각하여 수사를 하고 있는 앨런 워드는 눈곱만한 단서도 하나 얻지 못하고 그 지역 사람들과 갈등만 일으키는 반면, 루퍼트 앤더슨은 수사에 전혀 비협조적인 그 지역 사람들과의 갈등을 절묘한 교감의 방법, 교감의 언어로 풀어 나간다.

앤더슨은 그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가 서 있다. 야구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야구 경기를 소재로, 미장원에서는 머리 이야기로, 흑인의 권리에 대해서 강변하는 교회의 목사와 여자 청년에게는 꽃의 이름을 물으면서 다가간다. “여기서는 이 꽃 이름을 뭐라고 하지?” 사람들은 그의 물음에 “예, 아니오”로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교감은 마음 문을 여는 열쇠이다. 마음이 열려질 때 말문이 열려지는 것이다. 내친 김에 대화와 관련한 영화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2002년에 만든 영화 『그녀에게』이다. 우리나라엔 2003년 4월에 개봉되었고, 영어 제목이 『Talk to Her』이니 대화와 관련하여 생각이 났다.

영화는 독일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무용극《카페 뮐러》로 시작되는데, 이 무용극을 나란히 앉아 관람하는 두 남자 - 라는 남자 간호사와 라는 기자 - 이 두 사람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각각의 파트너 - 와 - 를 간병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에피소드들이 스토리라인을 이루고 있는 영화이다.

 
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밝고 아름다운 여인 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 누운 순간부터 4년 동안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남자 간호사이고, 여행잡지사 기자인 는 우연히 여성투우사인 를 취재하러 갔다가 연민의 정이 싹텄지만, 가 뜻밖에 황소에게 받혀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와 같은 병원에 입원하여 다시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공들의 운명은 산자와 죽은 자로 나눠지게 된다.

철의 여인으로 묘사된 강인한 여인 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로 죽는다. 는 식물인간인 가 아이를 임신하게 된데 대한 혐의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가운데 절망감에 사로잡혀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된다.

회복 불가능하리라 여겨지던 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로 일어나 춤을 추기 위한 새로운 준비로 영화에 생동감을 주고 있고, 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에게 새로운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 이 두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처음 시작하는 무용극에서 부터 영화의 끝까지 전해지는 주제는 교감(交感)의 문제였다.

가 눈뜨지 않아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식물인간임에도 매일같이 말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와, 절절하게 타올랐던 사랑의 마음을 한순간 접어버리고 와 교감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는 절묘한 대입이었다.

와 의 대화를 조금 옮겨보자.

근무를 마치면 발레를 보러 다녔죠. 무성 영화도 보러 다녔고요. 독일, 미국, 이태리 거의 모든 무성영화는 다 봤죠. 제가 봤던 걸 에게 다 얘기해 줬어요. 4년 동안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죠. 곁에 있으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걸 하고.. 여행가는 것만 빼구요

나와 경우와는 완전히 반대군요. 난 그녀와 교감할 능력도 없고 그녀의 몸 상태도 파악 못 해요. 간호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난 형편없는 놈이죠

그녀와 얘기하세요.

그러고 싶지만 듣질 못해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뇌사 상태요

여성의 정신세계는 신비해요. 특히 아플 때는요. 여성을 닮아보세요. 깨어날 거라는 신념을 갖고 계속 말을 건네세요. 제 경험으로는 그게 유일한 치료법이에요

는 에게 “그녀에게 말을 하라”고 한다.

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말을 하는 그것만이 “대화가 필요한” 이 단절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어떤 관계였던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까운 지름길이 사마리아를 지나는 것임에도 서로 상종치 않으려고 길을 돌아가기도 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제 육시(한낮) 야곱의 우물 가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네셨다.

놀람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생수를 말씀하면 우물에 고인 물을 말하고,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을 말하면 그 물 길러오지 않을 생각에만 온통 집중하는 등 서로 어긋나기만 하던 대화이다. 그러나 점점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논점이 하나로 모아지고, 잘못된 이해가 바로 잡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던 그 여인은 예수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리스도를 알리게 되었다.

실로 예수님의 ‘말 건넴’은 소통이 끊어진 채로 홀로 외톨이로 한 낮에 우물가로 나왔던 여인의 입을 열게 하였고, 마음을 열게 만들었고, 감추어진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었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는 ‘생의 사건’이 되었다.

우리들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나와 함께 사는 이들과 마음을 담은 대화가 필요하다. 가족 안에서의 대화가 필요하다. 세대 간의 대화도 필요하고, 계층 간의 대화도 필요하고, 보수와 진보 사이에도 대화가 필요하다. 내 이웃들 뿐 아니라, 니체가 갈파한 것처럼 ‘먼 이웃’들과도 대화가 필요하다.

‘다름’의 문제라고 한다면, 아니 설령 ‘틀림’의 경우라 하여도 식물인간이 되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이 불통(不通)의 세태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교감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어디 그 뿐이랴! 말을 할 뿐 아니라, 말 걸어옴을 느끼고 그것에 반응하는 열림도 경험해야 하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것들이 말 걸어옴을 느낀다. 하늘, 새, 구름, 바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언덕과 들녘, 멀리 보이는 이웃교회의 십자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귀를 기울여 적극적으로 경청하여 보자.

외톨이가 되어 홀로 서 있기에는, 제 각각 주어진 길만을 살아가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 소중하다고 말을 걸어오질 않는가? 나와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말을 건네 오지 않는가?

지금 밥을 먹으려는가?
나와 함께한 가장 소중한 ‘그녀’인 바로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건네 봄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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