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실언3종 세트, 그리고 자책점 올리는 또라이들...
최근 이명박은 결정적인 실언 3종 세트를 선사했고, ‘너 죽어야 나 산다’는 사방의 적들에게, 그리고 세상에서 쌈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지론을 어줍잖은 글빨로 포장하는 찌라시급 언론사 기자들이나 짝퉁 논객들에게 신선한 소재를 제공했다. 일종의 일감이니 이 청년실업, 고령실업이 만개하는 신록의 계절에 얼마나 아름다운 살신성인인가? 지금 나 역시 그걸 미끼삼아 글을 쓰고 있으니 나 또한 그 3종세트의 낙수를 마시고 있지 않은가?
그 신의 선물과도 같은 3종세트 이른바 3종의 신기 내지는 3보가 그럼 무엇인가? 장애인 낙태 허용과 동성애자 반대론, 교수노조 불가 발언, 그리고 마파도2의 3류배우론 등이다. 물론 이 전 시장의 ‘말실수’가 이들 3종의 신기가 처음도 아니다. 예전에 서울시 봉헌론으로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고 지난 2월에는 “요즘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3종의 신기든 더 많은 비기보화든 그것을 놓고 벌어지는 양측의 공방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전 시장 측이나 경쟁자 측의 자못 날선 공방이 서로 칼질을 한다는데 사실은 톱질에 가깝다거나, 별로 잘 벼리지도 못한 칼로 단칼에 목을 날리겠다고 우기는 꼴인지라 유감이 많다.
우선 장애인 낙태허용 문제와 관련, 결국 장애인을 낙태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사회적 차별에 대한 근원적인 해법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비장애인들의 사회적 공감대만을 여과없이 대변한 이 전 시장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줄곧 비난하고 이를 재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비난하는 측이나 방어하는 측이나 본질을 벗어난 논박을 하다 보니 정작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창출이 안된 채 장애인만 두 번 죽이는 결과가 되지 않나 싶다.
장애인 문제는 그렇게 양비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치지만, 동성애 반대 발언에 대한 좌파의 반박은 사실상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전 시장의 반동성애 발언이 이성애와 동성애를 ‘정상’ 대 ‘비정상’으로 가르는 것이며,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의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주장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조차 없는, 그래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억설이다. 성적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동성애 옹호발언은 아무리 세상이 진보했고 인권이 무한적으로 보호받는 사회가 되더라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까지 외면하고 옹호하자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마파도2'와 관련해 "그 영화는 '한물 살짝 간' 중견배우들을 모아 만든 영화"라는 발언은 아무리 그들과 제 아무리 친하고 그 영화 개봉에 초청받았던 좋은 관계임을 내세울지라도 예의없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한물간 배우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엑스트라라든가 로드매니저의 생활상이나 오케스트라 단원들마저 노조를 결성할 수밖에 없는 예술인 노동자들의 구조적인 문제를 그런 농담의 소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술정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이명박의 이런 실언이 있을 때마다 재미삼아 가십거리를 찾던 옐로 페이퍼들은 물론, 어떻게 해서든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공공의 적을 거꾸러뜨리려는 반이명박 연합세력의 총공세가 있었고 심지어는 적의 적은 친구라고 같은 당의 박근혜 지지자들까지 물 만난 고기처럼 비난대열에 총동원됐지만, 실제로 이러한 발언이 그때마다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거나 심각한 정치적 이슈가 된 것 같지도 않다.
민주노총과 민노당, 열린당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으나 그간 네가티브 공세로 이미지를 많이 손상당한 박 의원 측이 별 영양가 없는 이런 문제에까지 네가티브 공세로 일관하기는 어려웠다고 보이며, 노조문제라든가 동성애 문제 등에는 좌파의 어거지에 말을 섞을 입장도 안됐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전 시장 역시 최근 자신의 발언이 잇따라 논란이 된 데 대해 “이해가 부족했거나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일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론적으로 이 전 시장이 많은 실언을 하여 여론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임기응변에 강하며, 단어선택에 있어서도 일반 대중의 생활언어를 즐겨 쓴다는 점에 원인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어쩜 정치인에게 있어서 최소한도로 요구되는 촌철살인의 표현이라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현재 최대의 라이벌이자 반드시 극복해야 할 박 의원은 '수첩 공주'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강연 때 준비된 원고에 충실하며, 그래서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이 됐지만 설화에 시달린 적이 없다는 1%의 오류도 없다는 자칭 신이 내린 정치인임에도, 그리고 입만 열면 '원칙'을 강조하기 바쁜 박 의원조차도 자신의 주장이 제대로 먹혀들지 못한다는 판단이 설 땐 '걸레', '고스톱판' 등 험한 표현이나 반어법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인은 거울같이 투명한 도덕교사로만 남을 수 없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 '한물 살짝 간 중견배우들',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나 하는 짓‘, ’교수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슨 노조‘, '안에 있어도 시베리아지만 밖에 나가면 더 춥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낙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등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염장을 지르기가 일쑤였지만 뭐 딱히 노무현 식으로 세상을 뒤집을 듯한 심각한 문제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보통사람들이면 할 법한 얘기들이었다.
이 전 시장 스스로 자신의 발언 스타일에 대해 캠프 내에서 걱정이 많다고 하자 “걱정도 팔자”라면서, “적절한 시점이 돼 남들이 다 이해해 주면 내가 알아서 조절해 갈 것”이라고 했으니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며, 에둘러 표현하거나 알듯 모를 듯한 선문답식 답변을 하지 않아 그 말의 배경이 무엇이고 진의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좋으니 그게 또 매력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렇게 가볍게 다뤄진 문제 들 중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문제도 있었고, 진보와 보수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는 점에서 유력 대선주자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보다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좋았을, 그리고 앞으로라도 더 고민해야 할 과제들임을 자각했으면 한다. 캠프나 지지자 등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러한 의식있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함께 고민하면서 멋진 대통령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