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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 부산의 금강산 - 2

부산광역시... |2007.05.21 18:16
조회 102 |추천 0

 

  망미루에서 길을 따라 금강공원으로 올라가 봅시다. 지금은 공원 앞으로 난 큰 길을 건너야 공원으로 들어설 수가 있네요.

  예전에 이 길 양편으로 각종 오락시설들이 들어서서 아이들의 혼을 빼놓던 길이었답니다. 공 던지기, 인형 맞추기, 공기총 쏘기, 탁구 시설, 뽑기, 상점과 음식점도 많았고요.

  공원 출입문을 들어서면 우선 네 갈래 길이 나오는데 가장 왼편의 길을 따라 올라봅시다. ‘이주홍 문학의 길’이라는 팻말이 나올 겁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몇 있지요. 그 중에서 여기 금강공원에 세워진 시비나 작가비는 셋입니다. 물론 독진대아문 뒤편이 동래부사 정현덕의 ‘금강공원시비’가 하나 더 있지만 현대작가들로서는 이주홍, 최계락, 이영도 세 분의 비가 있네요.

  이주홍 문학의 길에 있는 선생의 시를 한 편 살펴봅시다.

- 해같이 달같이만  -

                        

이주홍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하고
불러 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하고
불러 보면
오오―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 밖에 없는
이름들
바위도 오래되면
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만 오랠
엄마 아빠의
이름

   바위도 깎여지지만 어머니, 아버지란 이름은 영원히 자신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지요.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저는 이 시비 앞에만 서면 가슴이 뭉클해져서 새겨진 글씨에 가만가만 마음을 대어본답니다. 그래요.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 손이라도 따스하게 잡아드립시다.


  선생은 1906년 5월 23일 경남 합천에서 출생하여 고학으로 어렵게 공부하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단에 계시면서 후학들을 열심히 지도해주셨고, 600여 편에 이르는 시, 소설, 수필, 아동문학, 번역문학 작품 발표하신 부산의 대표적인 작가시랍니다.

  선생이 쓰신 작품 중에는 ‘어머니’라는 작품과 ‘아버지’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런 작품들을 통해서 보자면 선생은 효자였던 것 같습니다. 가슴 속에 늘 부모님이 존재하셨으니 이런 멋진 시도 쓰셨겠지요.

  돌아가시고 난 후에 길 이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죽어서도 사람들 가슴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건 그분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우장춘로’가 공원 앞의 큰 길 이름이 되었으니 씨 없는 수박의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도 최선을 다하여 사셨던 분이지요. 우 박사님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판 우물이 있는데 지금의 우장춘 기념관 앞에 있는 우물이지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그 우물을 마시지 않았을까요? 선생도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은 ‘어머니’ ‘아버지’랍니다.


  이주홍 문학의 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거북 바위가 나오지요. 여기가 문인들이 모여서 작품 낭송도 하면서 소회하던 장소였답니다. 시원한 공원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자신의 글도 발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런 정도로 낭만있는 도시라면 부산도 살만한 곳이네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길을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나머지 두 분의 시도 살펴볼까요.  이영도 시인의 시조 세 수 입니다.

- 단란 -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으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간듯 둘렀다.

 

- 석류 -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히 터지는 추정(秋睛)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 모란 -

여미어 도사릴 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우네 옷자락을 흩는다

  이 시인의 시조를 읽자면 그 당시의 시대상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사물에 빗댄 자신의 심정을 잘 표현한 것에서 아련한 추억에 젖게 만들지요.

  이영도 시인은 청마 유치환 선생과의 오랜 교분으로 소문이 나신 분이랍니다. 청마 선생이 이영도 시인을 위하여 쓴 시 ‘행복’은 지금도 사람들 가슴에 오랫동안 음유되고 있지요.

  청마 선생이 통영의 중앙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한번 음미해볼까요.

-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선생이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간 보낸 5,000통의 편지가 청마의 시를 더욱 살지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요?

  청마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이영도 시인이 선생의 시와 편지를 모은 서간시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발간하여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었지요. 저승에서는 두 분이 행복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최계락 시인의 꽃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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