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오신 날 (석가탄신일) ♤♤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 초파일(初八日)이라고도 한다. BC 563년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 지방)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Maya)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한다. 국제연합은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회의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탄신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5년 1월 15일부터 '4월8일(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데 휴무일로 지키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석탄일이 휴무일이 아니던 당시 불교신자인 용태영 변호사는 1973년 3월 당시 총무처장관을 상대로 서울고법에 석가탄신일 공휴권 확인 등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제기사유인즉 기독교의 성탄일인 12월 25일이 공휴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인 4월 8일도 공휴권(公休權)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공휴일로 지정 공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부처님 오신 날(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할 수 없다면 성탄절의 공휴일 지정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은 1974년 10월 “원고는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됨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권리나 법률상 이익이 침해당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부적법하다고 판결 각하해버렸다. 그러나 용태영 변호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1975년 1월 15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부처님오신 날(석가탄신일, 음력 4월8일)'로 법정공휴일로 지정 공포하게 된 것이다.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은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러나 이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왔다. 대체로 이날은 연등행사와 관등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하여진다.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 거북등, 오리등, 일월등, 학등, 배등, 연화등, 잉어등, 항아리등, 누각등, 가마등, 마, 화분등, 방울등, 만세등, 태평등, 병등, 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누리를 연등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 하는데, 이 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 이리, 사슴,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의해서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춰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등달기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에도 고려시대에는 관민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어지고 있다.
재래의 사월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민속행사였다는 것은 그날이면 즐기는 여러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되어지는 것이다. 이날이면 온 장안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등을 달아놓은 광경을 구경하였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에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한편, 이날이면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 콩, 미나리나물을 벌려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했다가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때에는 이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이 어린이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 들고 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제등행렬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암흑기에 없어진 것을 광복 후에 새롭게 시작하게 된 행사이다. 사월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데에서 일차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