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 1889
캔버스에 유채, 57.5 x 74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Vincent Van Gogh, La Chambre de Van Gogh à Arles, H/T, 57.5 x 74cm
ⓒ Photo RMN-Hervé Lewandowski / GNC media, Seoul, 2007
폴 고갱, , 1890-91
캔버스에 유채, 38 x 46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Paul Gauguin, Portrait de l’artiste au Christ jaune, H/T, 38 x 46 cm
ⓒ Photo RMN-René-Gabriel Ojéda / GNC media, Seoul, 2007
고갱Gauguin과 반 고흐Van Gogh가 아를에서 두 달간 함께 살면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고갱과 고흐가 꿈꾸는 화가 공동체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고흐는 시골에서 정직하고 소박하게 일하는 화가 공동체를 꿈 꾼 반면에, 고갱은 도회적이고 미술시장과 연결된 금전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고흐는 고갱을 광적으로 기다리며, 고갱이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자신의 노란 집에 매료되기를, 아를의 풍경을 사랑해주기를 바랬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고갱이 고흐와 함께 살기 위해 아를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었습니다. 테오Théo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고흐를 찾아온 고갱은 고흐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타락한 인물로 묘사했고, 고흐는 이런 고갱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고갱이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애써 이해하고자 했고 실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갱은 계속해서 고흐를 모욕하였고, 심지어 그림 속의 인물이 모델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항의라도 하듯, 고흐는 자화상과 자신이 닮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귀를 잘랐습니다. 나중에 레이Ray박사가 고흐가 귀를 자를 만큼 격렬하게 흥분한 이유를 묻자, 고갱은 ‘그림에 대한 의견 차이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자신은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갱의 그림이 잘 팔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