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어떻게 보면 우리 문학의 주류라고 있었을 리얼리즘 문학과 민족문학은 이제 그 종말을 맞이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흔히들 주류 문학 출판사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그리고 민음사와 문학동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출판사들의 출판물에서 불과 이십여년 전 우리 소설계에 드리워져 있던 분위기를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그 시기 노동문학 진영을 대표하던 작가 중의 한 명인 김영현의 소설을 읽는 일은 그런 면에서 설레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범죄 추리물과 종교물이 혼합되어 있는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나를 사로잡은 것은 난감함과 착잡함이었을 뿐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보내던 치열한 고민이 사라진 자리를 어중간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이 대신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어색하고 미숙하다. 대중적인 소설 기법인 추리 소설의 기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난무하는 대중소설들의 한 지류를 얼핏 짜깁기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
소설은 소도시 마을금고의 이사장인 최문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으며 자신의 잇속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인물이며, 재혼을 하고 자기집에서 기숙하던 식모 아이를 건드리고 끊임없이 바람을 피운 인물이었고, 자식들과의 관계에서도 원활하지 못했던 한 인물의 죽음을 그의 처가 발견하고 곧이어 살인자로 그의 큰 아들인 최동연이 잡히게 된다.
새엄마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집을 떠나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어 살고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던 외삼촌 황규관과 함께 살며 사춘기를 보냈던 최동연은 이제 마흔 살이 넘었지만 변변한 직장도 없고 벌어놓은 돈도 없었고,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아버지에게 돈을 얻어내기 위해 도시에 내려와 있던 탓에 범인으로 몰렸다. 게다가 그는 스스로 자신이 범인임을 실토한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형의 범죄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동생 최성연이 나서면서 차차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들 최씨 일가의 진흙탕 가족사가 드러난다. ‘창조주에겐 오류가 없는 법’이라는 이종사촌 요한 신부의 말을 되새기며 현재는 신부가 되기 위해 공부중인 성연은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결국 자신의 아비를 죽인 이 패륜 범죄의 실상을 파헤친다. 하지만...
사변적이고 궤변적인 무수한 말의 성찬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적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하지만 그 과정이 자세하게 다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수전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최문술의 모습을 직시하자는 것일까, 아니면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는 이 자본주의 말종에 가까운 패륜 범죄들에 대한 분석일까, 이것도 아니라면 우리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종교적 시각의 필요성일까, 아니 설마 스스로의 필력을 믿고 있는 작가가 추리 소설 한 편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추가하고자 한 것은 아니겠지...
(지나간 세월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그의 소설을 읽으며 사회 변혁에 대한 꿈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던 혹은 그런 꿈과 용기에 대한 오기를 발동시킬 수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소설은 작은 이야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고 이제는 여기게 되었지만 때때로 우리들의 가슴에 큰 이야기를 던져 주었던 그때 그 시절의 소설이 그립기도 하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