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것은 잔인하지만 덤덤한 영화이다. 딱히 관객과의 거리두기도 감정이입에도 관심없는 듯 그저 사실적일뿐이다. 감독이 묻는 것은 결국'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인 것 같다. 주제를 용서, 종교, 신, 운명등등으로 좀 더 좁혀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가다보면 결국엔 저 질문으로 끝난다.
이야기의 구조는 여자가 자신의 삶을 되찾는 과정이다. 영화 초중반부까지 주인공 신애의 인생은 가식적인 자기기만의 연속이다. 죽은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사는 과부라는, 청승맞지만 왠지 고상한 역할에서 원수를 용서하는 성녀까지. 그녀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안달난 사람이다. 아니 안달났다기보다는 그렇게만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남편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남편을 그렇게 그리워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위한 성녀의 역할을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상대(신)에게 빼앗긴 뒤 그토록 사랑하던 신을 부정해버리고 삶을 놓아버린다. 미쳐간다. 하지만 사실 여기부터 그녀는 삶을 붙잡기 시작한다. 마음에는 가짜 슬픔, 가짜 행복대신 진짜 분노가 넘쳐흐른다. 자신을 속이면서만 살아온 사람은 생생한 삶의 감각앞에 연약하게 무너진다. 신애는 신을 부정하고 남자를 유혹하고 절규하고 얼음을 얼굴에 갖다대고 무심하게 사과를 깎다가 손목을 긋는다. 그 것은 생의 감각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죽음의 두려움으로인해 살기위한 몸부림이다. 손목을 그은 직후 그녀는 뛰쳐나가서 살려달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녀는 살게 된다. 아니, 아마도 살 것이다. 맨 마지막 씬의 버려진 마당 구석처럼, 아무렇지 않게, 보잘 것 없이, 누구나 흔히 지나칠만하게. 누구나 흔히 지나칠만한 도시 밀양에서.
영화는 답을 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에서 이창동 감독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관객을 감동시켜 마음을 사로잡지'않는'용기를 위해서 말이다. 그는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할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미용실 장면에서 용서와 희망의 끝을 내릴 기회를 지나쳐버린다.(사실, 한순간 그렇게 끝나는 줄 알고 다정한 카메라에 속을뻔 했다.) 만일 영화가 '그래도 아직 삶에는 희망이 남아있어'라고 했다해도 이 영화는 수작으로 평가됬을 것이다. 하지만 신애는 결국 분노를 용서로 승화시킬 수 없다. 그녀는 성녀도 뭣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늘에 대고 원망의 절규를 내뱉는다. 사람이라면, 그럴만하다. 감독은 그 것을 알고 있었고 원칙대로 정직하게 나아간다.
그치만 굳이 영화에서 답을 찾자면 그 것은 바로 송강호가 맡은 카센터 김사장(이름까먹엇다)이다. 그는 속물적이고 생각없어보이지만 순수하다. 신애가 밀양의 뜻은 비밀스런 햇볕이라고 말하며 또 한번 삶을 포장할 때 그는 "사람사는데가 다 똑같지예- 밀양도 똑-같아예-"라고 명랑하게 내뱉을 뿐이다. 그는 교회에 계속 다니냐는 질문에도 안나가면 허전해서 나가게 된다고 (역시나)명랑하게 대답한다. 이 것들은 평범하고 흔한 대답들이지만, 실은 누구나 숨기려하는 초라한 진실들이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이 것이 옳은 인생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것이 인생이라고, 영화는 건조하게 하지만 어딘가 명랑하게 얘기하는 듯 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밀양에서 밀양(비밀스런 빛)의 역할이다. 끝에서 두번째 장면, 김사장은 신애가 거울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잡아준다. 이 장면이 암시하듯 그는 그녀가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줄곧 맴돌며 걱정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녀가 (줄곧 무시해온)생활로써의 삶을 보게해주는 빛이다. 이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김사장이 어디에 맴돌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엄청나게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송강호의 이 물흐르는 듯한 연기에 전도연보다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는 본능적인 배우인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영화 밀양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열려있는 영화였다. 장면장면은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써내릴 수 있을 법하고 이야기의 전개는 굵직하고 익숙한 두 배우에 의해서 이끌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그 두 배우에게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다.(잔인하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또한 너무나 큰 주제를 다룬탓에 볼 수 있는 각도의 폭도 넓다. 가능성이 많은 예술은 훌륭한 예술이다. 밀양은 걸작이다. 천재적인 재능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삶에 대한 치밀하고 정직하고 원칙있는 고민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보고나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살아가는 것 외에 더 할 수있는 일도 없겠지만, 왠지 모두에게 봐야한다고 하고싶다. 삶에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삶이 어떤 것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삶의 의미와 정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해주삼ㅋ)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는, 삶에 희망이 가득하다고 말하지 않는 대신, 삶이 비극적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사실 자체가 희망인 것 아닐까. 싶다. 숨겨져있던 빛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