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LLO STRANER
감독 : 임권택
출연 : 오정해( 松花)
김규철( 동호)
김명곤( 유봉)
신새길( 금산댁 - 동호어머니)
안병경( 낙산거사)
# 한, 恨의 민족
한 [恨] [명사]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예부터 우리 조상을 가리켜 흔히들 '恨의 민족' 이라 하였다
' 저 어린 것이, 恨 이 뭔지나 알고 저렇게 서럽게 부르는가? '
판소리에 문외한인 우리가 듣기엔 그저, 소름돋을 정도로 신기할
따름인 그녀의 소리. . .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희망 이기에,
그 어린 딸 에게, 소리에 恨 을 실으라는 아버지. . .
이런 상상을 해 본다
'恨' 이란 것이 우리 고유의 정서라 한다면,
현재 '세계화' 의 미명하에 논의중인 한미 FTA 협상이
이제는 우리가 '한 국가의 정신' 이라고 일컫는
'문화' '교육' 부문에 까지, 점차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국경없는 사회
그렇다면 머지않아 훗날,
이 '恨' 이란 정서를, '한국인' 이 아닌 '외국인' 도,
우리와 같이,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 땅, 우리의 후손에게,
이 '恨' 이란 정서가 여전히, 그대로 전해질 것인가?
사실 나도, 나 자신도, 누군가 '恨' 이 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문학'을 왜 배우는가?
'한글' 을 갓 익힐 무렵 부터 우리는, '한국인' 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의 정신'이 깃든, '한국의 역사' 그리고, ' 한국의 문학' 을 배워왔다
그러면서 그 '恨' 이란 정서를, 간접, 체험해 왔기에, 명절이면 간간히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그 뜻 모르는 판소리에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였고,
늦은 밤 조수미의 OST와 함께, 이미연이 나오는 <명성황후> 를 볼 때면
괜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여기서, '한국인' 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철 없던 시절( 아! 지금도 철은 덜 들었지만 +_+), 왠지 어두침침한 배경에,
알 수 없는 '소리' 만 연신 해대는, 어린 눈에는 지루함이라 외면했던,
2007년 지금에 와,
강산이 한번 반, 정도 변했을 14년, 이란 세월의 벽을 타고,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라는 작품 앞에서,
'恨의 민족' 의 후예 답게, 절로, 숙연해진다
아비는 기운 빠진 자식, 힘내어 소리하라고 그렇게 남의 닭을
도둑질해 먹입니다 송화, 그녀가 恨 을 넘어, 득도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는, 더 한 것도 할 수 있다는게 아비의 마음입니다
한에 묻히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는 소리를 하라 는 아버지
그녀는 오늘도, 산 속에서 그렇게 피를 토해냅니다
# 이쯤에서, 네이버 찬스!
역사적으로 판소리는 한국의 남서부 지역 민중들에 의해 만들
어지고 사랑받아왔다. 이 지역 사람들이 경험했던 집단적인
슬픔이 음악의 형태로 승화된 것이 판소리.
이 영화속에서는 그 몰락해가는 대중 예술의 역사가 떠돌이
예술가들인 주인공들의 삶속에 표현된다. 소리꾼 부녀와 의붓
남매의 기막힌 삶, 소리를 통해 자식을 낳고, 그 여식의 아비
와 소리를 떠날까봐 눈에 청강수를 부어 장님으로 만들면서까
지 소리를 붙잤아두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영화는 판소리가 현대 한국의 문화사 속에서 그것이 차지해온
위상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서편제'는 전라도 지역을 나눠
서 부르는 이름으로 '동편제'라 하면 주로 임실, 구례, 남원,
운봉쪽을 말하고 서편제는 보성, 곡성, 해남쪽을 말한다.
또한 지역적 의미 외에 음악적 구분이 더 많은데, 동편제는
우조라고 해서 소리까 씩씩하고 사내답고 우렁찬 반면, 서편
제는 계면조로 슬픈 감정에 기교가 있는 여성적인 느낌의 소
리다.
원작자가 굳이 제목을 서편제로 한 이유도 서편제가 한국 사
람의 한을 표출시키는 데 더 가깝게 느꼈기 때문 이라는 임감
독의 설명.
# <천년학> VS <서편제> - '고려청자' 와 '조선백자' 의 모습
분명, '칼라' 를 보았는데, '흑백영화' 를 본 것 같은 착각
<천년학> 이, '칼라' 의 느낌이라면, <서편제> 는 '흑백' 으로
다가왔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긴 했지만 그건, 영화의 화질
의 문제가 아니었다
( 수고하신 제이 엠, 그 분께 아낌없는 박수를 짝짝짝
)
극의 핵심인 여 주인공, 송화 만 보더라도, <천년학> 에서는
곱게 빗어 올린 머리, 그렇게 색감 고은 한복에 단아한 한국
여성상을 표현하였다면 ( 그녀는 잠시나마 그 좋은 분 곁에서
호강도 누려보았고, 고운 머리핀도 선물받지 않았던가 ) ,
<서편제> 에서 그녀는, 제대로 빗지 않아 늘, 헝클어진 머리에,
못 먹어 쏙 들어간 볼, 또렷한 눈빛보다는, 꽹 한, 눈 이었고,
손님을 맞을 적 그 주황 저고리, 동호와의 마지막 밤 보라빛 저고리를
제외하고는, 영화 두 시간 내내 오직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를 두른,
마치 '백의 민족' 을 대표하듯, 그렇게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모습 이었다
비단, 겉모습의 문제가 아니다
<천년학> 에서의 송화, 그녀 또한, 소리를 해서 하루하루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경제적인 어려움,
순전히 아버지의 욕심으로 한순간 그 멀쩡한 두 눈을 잃은 서러움,
은 매한가지일 터 
이렇게, 가세가 기우는 상황 에서도, 빛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두 여인은, 비슷한 상황에서도 분명, 다른 모습이다
<천년학> 에서의 송화는 언제나 조용하지만, '당당함' 을 지니고 있었고,
동생 동호를 대하는 마음, 태도에 있어서도 '의젓한' 누이의 모습 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미, 그녀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 의 마음을 가진, 여인 이었다
한마디로 그녀의 삶은 결코, 궁핍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쓰러질 듯한 집, 그런 집은 아무리 영화 속 이라도
태어나 정말 내 눈으로는 처음, 대면한 순간! +_+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 하지만 결국, 동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집을 뛰쳐 나가고, 누이는 저 나무 아래에서, 그런
동생을 기다립니다
반면 <서편제> 에서의 송화는 보다, '수동'적인 여인상 이다
그녀는 여느 사람과 같이, 앞이 보이지 않음에 '절망' 하고 '두려워'했으며,
( 왜 유독 나는 그녀가 새끼줄을 잡고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그 뒷모습이,
'의지' 하는 것 처럼 보였을까. . . )
동호와의 관계 에서도, 보다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눈을 잃고, 절망에 빠진 그녀, 이제 더 이상 해가 뜨는 것도,
달이 별이 뜨는 것도, 단풍 든 모습도, 눈이 내리는 설경도,
그녀에겐 다른 세상 일 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이 굳듯이
그녀는 자신의 이름 '松花' 를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웁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두 영화의 차이점은
<천년학> 의 영상미와 <서편제> 의 영상미
전자가 잘 다듬어진 세련미 라면, 후자는 지금에 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잘 반영된 소박미 라고 표현한다면,
본인이 하고 싶었던 그 말이, 음, 잘 전달된 건가? 낄낄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 그들도, 행복했다
나에게 <서편제> 의 명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음, 일단 '1960 년대 한국의 四季' 를 '그대로' 재현했다고 할 만한
그 '흑백' 영화 같은 영상들 모두! ( 하나라도 빼놓으면 섭하다 ㅠ)
그리고,
꼬불꼬불 길을 따라 유봉, 송화, 동호 이렇게 세 가족이 함께
춤을 추며, 북을 치며, 소리를 하며 걸었던, 진도 아리랑
유독, 그 대목에선 도무지 끝이 없는 길, 마냥 그렇게 긴, 시간
( 어느 센스 넘치시는 분 께선, 저 분들 아리랑 10절 까지 하냐고,
상콤한 멘트도 날리셨다죠 오호호 ) 이어지던 진도 아리랑
마치 앞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험난한 여정, 불행을 암시하듯,
그 순간 만큼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던 가족의 모습. . .
그래서 전, 그 대목이,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카메라조차도
미처 발길을 떼지 못, 했던 그 길이, ( 분명, 그들은 지금 웃고 있는데
행복해 보이는데,) 그래서 더, 구슬프게 들렸던 진도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