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시가 다 되어 갑니다.
아직 퇴근을 못 했습니다.
추억이라 할까요?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퇴직후 아버지는 홀로 타지에서 직장생활하는 딸한테 소일삼아
오시곤 하셨죠.
가을이면 청도 소싸움, 지리산등으로 여행을 다니시다가
겨울이면 저한테 오셔서 한달씩 겨울을 나시고 가셨죠.
왜 그땐 그리 그게 싫었었는지.....
아파트 불이 켜져 있으면 올라오기전에 집에 먼저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화부터 내곤 했죠.
뭐하러 아버지 올라오게 했는냐..
아버지 오시면 밥도 신경써야 하고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 등등
엄마에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올라오면 아버지는 그런딸의
속도 모른채 고구마도 쪄 놓으시고 감자튀김도 해 놓으시곤 하셨죠.
평생 엄하시고 강직한 모습으로 사시다가 딸자식에게만
오시면 자상한 아버지가 되시는 그 모습을 가족들조차
믿지 못했었죠.
어느날 아버지가 저한테 푸념섞인 걱정을 하십니다.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많이 빠지냐..
-아침에 너 출근시키고 목욕탕에서 니 머리카락 건져내고 집안
곳곳 머리카락만 줍는데 두시간이 걸린다면서.....
탈모에 좋은 반찬을 해주시고 침도 놓아 주시고..
아침이면 아버지는 따뜻한 국과 밥을 해 주시고 서른다된 딸래미
속옷까지 손수 빨아주시고 걸레까지 삶아놓으시고 비로소
인터넷으로 바둑한판 두시면 오전의 일과가 끝나신답니다.
오후에는 나가셔서 저녁간식과 다음날 아침 국거리 장을 보시고
서점에 가셔서 책도 구경하시고 오신답니다.
집에 오셔서 저녁준비하시고 간식 준비하고 빨래 걷어다 정리하고
식사하시고 바둑 한판 두시고 뉴스시청을 하시고 늦게 제가
들어오면 간식을 챙겨주셨죠.
주말이면 부녀는 다정하게 전철을 타고 인사동에 가서 아버지
붓글씨 쓰시는 한지도 사고 엿도 사먹고 종로에 가서 초밥을 먹고
전철안에서 둘이 엿을 오물거리며 돌아오곤 했죠.
그러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계시면 몸은 편했지만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했는지...
엄마에게 하루한번 전화를 해서 아버지좀 내려오시라고 하라고...
그리 닥달을 했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아버지는 한달씩 겨울을 나시고 가셨죠.
언젠가였습니다.
아버지가 또 올라오신다고 하길래.....
아버지가 올라오셔도 밥한번 안 해주는 딸래미년은 엄마에게 또
화를냈죠.
아버지 올라오시면 밥때문에 신경쓰여 죽겠다고.....
집에 안 들어간다고.....
아빠 한끼 드시고 나면 밥남은거랑 반찬이랑 다 버린다고..
집에서 밥도 안 먹는데
한끼 드시자고 밥 해놓고 다 쓰레기 만든다고...
각종 유치짬뽕 투덜세트였죠.
하지만 퇴근후 분명히 집에는 불이 켜져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올라오신거였죠.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아버지가 저를 보시더니 반기시고
내려가신다고 채비를 챙기셨죠.
그런데....정말 아찔한건 설거지통에서 무언가 가방에 챙기시는
아버지의 모습..
그건 말이죠......
도시락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도시락을 싸서 가져오셔서 그걸 드시고 씻어놓으셨다가
제가 오는걸 보시고 내려가시겠다는 거였습니다.
주무시고 가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내려가셨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물론 어제까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엄마와 그때 아버지가 그랬는데.....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아버지의 추억일뿐이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지금 눈물이 펑펑나게 그 아버지가 그리워 죽겠습니다.
아직 다른 동료들이 있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쏟아져 죽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나서 이 못난딸래미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있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2년넘게 식물인간처럼 누워계실때도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지내시다 돌아가셨을때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며 아버지의 평안을 위해 잘된건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서 보고파서 죽겠습니다.
창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눈보라보더 더 세차게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딸래미한테 도시락을 싸면서까지 오시고 싶으셨던 그 심정을
이제야 알아차린 못난딸을 아버지는 용서하실까요?
비로소 아버지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이 되었는지
못난딸년은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 너무 그립습니다.
2006. 03.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