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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수선하다

박용민 |2007.06.06 16:43
조회 34 |추천 0

세상이 어수선하다.


우리역사는 오래된 왕조시대가 백성의 힘에 의해 무너지거나, 혹은 수용되지 않고, 외세의 힘으로 붕괴된 탓에 당연히 거쳤어야 할 민주주의의 초기 실험과정을 겪지 못했다. 더구나 왕권을 대체한 식민통치와 다시 외세에 의해 되찾은 독립은, 새로운 독재권력의 탄생을 불러왔고, 그것은 다시 억압으로, 저항으로, 그리고 붕괴로 이어졌다.


그것은 한참을 늦은 실험이었다.


수천년, 그리고, 다시 수십년을 억눌린 백성의 저항은 끝까지 눌러진 스프링이 튀어 오르는듯 격렬했고, 그 과정은 지난 십여년간의 체제 민주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분출한 늦은 출발은 오버페이스와 시행착오로 얼룩지고 공중에 날아오른 몸뚱이는 착지점을 찾지 못해 기우뚱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반동현상..


진보를 표방한 민주세력은 FTA 로 보수세력의 박수를 받고, 수구라 불리던 개발세력은 그들이 빨갱이라 부르던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고 재원없는 노인연금제를 들고 나왔다. 이 나라의 주류는 단체로 무리를 지어 언론에 FTA 지지 성명을 내고, 청와대는 치적을 홍보하느라 그것을 부추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5000 가지가 넘는 항목중에 불과 50개도 제대로 알지 못한채, 이것을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가 얼치기 좌파로 매도를 당할 판이다.

 

그와중에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보수세력의 재집권이 유력해지자, 이번에는 3 불 정책이 무대에 오른다. 대통령은 특별인터뷰를 하면서까지 입에 거품을 물고, 주류언론은 3불 정책의 폐기논리를 전파한다. 그 와중에도 모든 대선주자들은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나서고, 진보세력은 3불이 존재하는한 양극화 해소는 없다고 맞짱을 뜬다.


지금은 좌,우의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주류와 비주류의 시대다.


이나라에 비주류였던 정권도 사안에 따라 주류가 되고, 과거의 주류는 고토수복을 부르짖으며 절치부심한다, 이나라의 주류는 여전히 정치세력, 자본세력 이다. 정치세력도 그들의 정강정책이 어디를 행하던 그 자체로 주류이고, 자본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주류세력이다.

 

언론과 학자는 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광고주인 기업이나, 언론인이 귀를 기울일만한(광고주의 입맛에 맞을만한) 아류 지성인들의 목소리만 언론에 투영되고, 대중은 단지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대중 역시 과거의 대중이 아니다.


그들은 주류에 복무하는 아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

 

아류는 주류논리가 전파하는 논리에 자신들의 호불호의 감정을 실어 편을 가르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들역시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주류 역시 다르지 않다, 이땅의 비주류는 자신들의 논리가 없다. 그래서 억울하고, 힘들고, 절망적이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눈여겨 봐주지 않는다,

 

지금 이순간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분신을 하고, 누군가는 단식을 한다, 언제 어디선가 많이 보아오던 모습들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아류들이 넥타이를 매고 거리로 나오지도,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는다, 아류들이 비주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과거와 다를 뿐이다.


3불 불가의 논리는 거대한 교육시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비교우위를 점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학원재단과, 아이들을 그곳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욕망이 어울려 교육시장은 거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한다, 학원은 재벌화하고, 사교육 시장은 국세청조차 짐작 할 수 없다, 그것은 사채시장을 능가하는 지하경제의 온실이고, 자본은 호시탐탐 그곳을 노린다. 그리고 그것은 ‘인재양성’, ‘국가 경쟁력’이라는 논리에 점점 통제력을 벗어나려고 한다,


자본이 교육을 장악하고, 그나마 공정경쟁의 마지막 보루마져 무너지면, 결국 희망을 잃은 아이들이 가슴에 칼을 품게된다. 그들이 품은 칼은 10년 20년 후 우리 아이들이 밤길을 걷지 못하게 할 것이고, 안락한 노후를 누리려는 나의 전원생활을 성채속의 감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사실 경제적 양극화는 도리가 없다


누군가 애써 주장하고 싶지만 못하는 말,, ‘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다’ 라는 말은 사실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마지막 불꽃이고, 언젠가는 남은 재마져 태워버린 채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인류는 자연을 대상으로 부가가치를 늘려왔고, 인간은 단위 인간당 분명히 먹고남는 잉여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살아왔다,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어났지만, 늘어난 인구 보다 생산량은 늘 많았다, 멜더스의 인구론이 모자란 소리라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남은 잉여는 새로운 생산도구와 교환되고, 그것은 2차 산업의 발달을 부추겼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했고, 그 결과 역시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몰고 왔다, 농경시대보다 더 많은 잉여를 한 사람의 노동력이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잉여는 점점 늘어나고, 인구 역시 같이 증가했다, 하지만 2차 산업의 잉여물이 이제 넘치게 되고, 재료로 쓰일 원자재들이 점점 고갈되며, 그과정에 축척된 쓰레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2 차 산업에서 노동력에 지불된 임금이, 그들의 생산성을 넘지 않았지만,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하고 잉여가 쌓이는 세상에서는 임금이 생산성을 위협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결국 생산 시설은 노동력을 버리고 기술을 택했고, 기술은 매장량이 정해진 원자재의 가격상승이라는 불가피한 부분을 대체했다, 물론 그만큼 노동력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기술의 발달은 노동력의 필요성을 떨어뜨리고, 인구는 더 늘어나기에 한계에 다다르면, 인간은 노동의 기회를 잃게 된다.

 

생산성을 위해서는 설비와 기술의 무한발전이 필요 할 뿐. 제한된 생산성을 가진 노동력은 불필요 해지는 것이다. 이제 사람도 고도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통제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의 노동력은 점점 양극화하고, 그 대우도 달라지며, 대상도 축소된다,


하지만 도태된 사람들에게 아직은 상당크기의 잉여가 존재한다, 과거 그들이 모아둔 자산이 아직 여분으로 남아있는 동안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생존하고, 서로의 잉여를 빼앗는 합법적인 전쟁, 혹은 도박이 펼쳐진다, 그렇게 잉여자본이 지속적으로 쟁탈전을 벌이고, 결국 어느 누군가에게로 재배분이 이루어지고 나면, 다음은 무엇인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붕괴가 이어질 것이다.


그 다음은 ?


아무도 모른다.

 

또 다른 제 3의 체제와 질서가 세상을 지배 할 것이지만, 아직 자본주의는 찬란하게 불꽃을 발하고 있다. 다만 그 불꽃의 여명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일인다.. 우리는 지금 이런 잉여쟁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사람이다. 사람이 가진 잉여를 사람이 중개하고 사람이 개입해서 나누고 배분한다, 과거에는 없던 손톱,발톱 마사지에, 이용 오락이 성행하고, 사람들은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 다닌다, 향기를 맡고 와인을 마시고, 마약에 취한다,


과거라면 어디선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 하나의 생산단위로 존재했을 사람들에게 파라다이스가 열린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과거의 잉여를 소모하는 중이다. 그것이 모두 소모가 되고, 100명의 잉여가 10명의 손에 들어가서 90명의 손에 빵이 쥐어지지 않을 때, 그때가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3차 산업이라고 부른다.


3차 산업의 부가가치는 허공에 소멸하는 것들이다. 과거 기업은 부지를 사고 공장을 짓는데 가장 많은 돈이 들었지만, 지금의 기업들은 사무실 하나에 컴퓨터 몇 대면 그만이다, 그들은 포스코의 거대한 고로에서 수만명이 쏟아내는 쇳물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단지 백만원짜리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로 생산한다, 그리고 기업의 투자는 그들에 대한 투자로 전환된다.

 

그뿐아니다 법률가는 이들의 싸움을 중재하고, 결혼과 이혼을 부추기고, 정치인은 선동과 책략으로 잉여를 취하고, 의사는 주름을 펴고, 눈에 레이져 칼을 대면서 잉여를 가져간다,


하지만 이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모두 시베리아로 가는 기차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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