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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바티스 투타는 나의 뿌리를 너무나 잘

오재희 |2007.06.12 18:44
조회 33 |추천 0


 

" 나 바티스 투타는 나의 뿌리를 너무나 잘 안다. 귀화 하기에는 나의 조국 아르헨티나를 너무나 사랑한다. "
 
 바티스투타 그의 별명은 바티골이다. 해설자가 그의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골을 넣어버린다는 뜻에서 바티골이 되어버린 것. 그는 이 별명답게 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써 그의 족적을 남겼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트라이커 중에 하나로 남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신화가 되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많지만 그의 또다른 별명인 '최후의 로맨티스트'의 계기가 된 일화가 그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69년 2월 1일생으로 처음에는 야구를 했다. 17세가 되어서야 축구 선수가 되었으며 그의 재능이 꽃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1년 브라질과의 친선전으로 A매치에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해에 열린 코파아메리카 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최다골의 주인공도 바로 바티골 바티스투타였다. 그 활약을 계기로 그는 피렌체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의 이 이적으로 인해서는 그는 '최후의 로맨티스트'가 된다. 그가 이적하고 피오렌티나는 2부리그로 강등을 하게 되는데 수많은 빅리그 팀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는 잔류를 선택한다.

 그의 잔류의 이유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는데 피렌체의 시민들 곁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바로 다음 시즌 팀을 다시 1부리그로 복귀 시켰으며 바로 그 시즌에 세리에 A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피렌체에서 여러 시즌을 보낸 그였지만 그가 평소에 말해오던 '스쿠데토'에 한번만 이라도 키스를 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AS로마로의 이적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이적은 그동안 그를 열성적으로 믿었던 피렌체의 팬들에게는 배신과 다름없는 행위였기에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적을 위해서 고민해오던 그가 무려 15kg에 달하는 몸무게가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눈물끼 가득한 눈으로 AS로마로의 이적은 자신의 오랜 꿈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말하며 피렌체의 시민들을 사랑하지만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자 피오렌티나의 서포터즈들은 더이상의 비난을 멈췄다고 한다.

 2000년 5월 그의 이적이 확정되고 그는 당시 사상 2번째로 높은 이적료인 2,200만 프랑에 이적을 하게 된다. AS로마로 이적한 그해에 피오렌티나로의 원정경기가 있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피오렌티나를 적으로 두고 경기에 임하고 싶지 않으며 차라리 자신이 부상당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신은 그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다.

 AS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피오렌티나 원정경기에 오른 그는 결국 그의 슛으로 피오렌티나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2:1의 결승골, 그것도 오랫 동안 동료로 지냈던 톨도에게서 골을 뺐으면서... 그러나 바티스투타는 어떤 세레모니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눈물을 흘린다. 그제서야 피렌체의 수많은 서포터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치며 바티스투타의 골에 환호했으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런 그이기에 피렌체에는 그의 실물크기의 동상이 있으며 '최후의 로맨티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2002년월드컵때는 너무 안타까웠다. 
어려운 조국에 희망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자비로 왔던그들...
죽음의 조에 편성되어 결국 탈락하고 말고..

크레스포를 비롯 다른선수들의 눈물도 안타까웠지만 바티스투타의 눈물은 정말 안타까워보였다. 

비록 지금은 은퇴하였지만 언제나 영원한 스타중 한사람으로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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