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꾸미 조각공원이 엮는 그로테스크한 순간
다음 행선지는 모도. 섬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띄엄으로 통하는 모도는 섬의 생긴 모양이 배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신시도공영버스를 이용해도 좋고,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맛도 일품이다. 가다 보면 배미꾸미라는 지명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지역이 배로 치면 밑창쯤 되는 위치려니 생각해본다.
△ 물이 차오르면 반쯤 잠기는 조각상
하여간 그곳에 가면 '배미꾸미 조각공원'이 있다. 조각가 이일호씨가 빚은 작품들이 어지러이 정돈돼 있는 이곳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왼편으로는 빛깔고운 백사장이 눈부신 감골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시간이 빚은 조각 작품인 기암괴석들이 마주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예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도드라지지 않는 조각상들이 그로테스크한 순간을 묶어내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층계참을 따라 오르다보면 아기자기한 조각들이 조화와 공동체를 엮는 법을 말하고 있다. 해변 가에 우뚝 솟은 거대한 조각상은 밀물이 차오르면 반쯤 물에 잠기는 묘미가 있다.
공원 중심에 자리한 카페나루에 인골모양의 탁자가 놓여있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 탁자를 지나 카페에 들어서면 강아지 두 마리가 졸린 눈을 부비며 손님을 반긴다. 상큼한 해초비빔밥에 유기농 우리차를 더해 허기를 달래며 보는 해변 가 풍경이 이국적이다. 하루쯤 묵어갈 생각이라면 같은 곳에 위치한 펜션에서 낙조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하루밖에 없다면 갈대밭이 어여쁜 모도 쉼터를 지나 시도로 바삐 움직여야 한다.
△ 살 섬 해안에 정박한 통통배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세트장이 3곳이나 조성된 시도의 원래 제 이름은 살 섬이다. 마니산에서 시도를 과녁으로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옛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마을에 신석기 시대 석촉을 기념한 화살탑이 세워진 것도 구전에 따라 유물을 발견한 성과라 한다.
살 섬에도 우체국이 있다. 북도우체국이다. 국장을 포함해 총 5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자그마한 우체국이지만, 관할구역 면에서는 연도교로 연결된 신도, 시도, 모도를 비롯해 인근 장봉도까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규모다. 25세 최연소 국장이라는 특출한 이력을 지닌 조국장은 그 섬에 4대째 살고 있는 말 그대로의 토박이다.
그 자체가 섬의 산 역사이다 보니 알려진 관광지는 물론, 곳곳에 서린 숨은 얘기를 들춰내는 품이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그러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금언을 믿는다면, 그의 휴식을 몇 시간만 뻔뻔하게 훔쳐도 좋으리라. 그와 함께 우체국을 나서 랜드로버에 올라 시도 일주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의 여행은 알차게 영글어질 것이다. 이래저래 여의치 않다면 시도 농협 앞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수기해변의 고라니
드라마 '풀하우스'와 '슬픈 연가' 세트장은 자전거 대여소로부터 약 1.5㎞ 거리에 있다. 각각 300~4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한창 북새통을 이뤘던 일본 아주머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요사이 주로 동남아와 중국인 관광객이 주를 이룬다는 ‘풀하우스’ 세트장은 수기해변에 세워져있다. 사실 이들 같은 열성 팬이 아니라면, 허름하고 불친절한 매표소에 굳이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집안 내부를 샅샅이 둘러볼 필요까진 없다. 오히려 건물 앞에서 모래사장 쪽으로 길게 늘어선 목교와 별장 주변 풍경이 알짜배기 관광코스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보드랍게 퍼지는 모래의 감촉을 맘껏 희롱하며 해변을 거닐다 보니 낯선 곳에서의 오후가 더없이 아까워진다. 운이 좋으면, 멀찌감치 펼쳐진 수평선 너머 피어오른 물안개를 잡으려는 듯 힘차게 달리는 야생 고라니 한 쌍을 볼 수도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해수욕을 즐겨도 된다. 수기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가족여행을 위한 피서지로 좋은 곳이다.
△ 오리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백로 이 모든 곳을 둘러보고도 아직 배 떠나는 시간이 남았다면, 신도로 가는 연도교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다. 그곳은 일몰 후 불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에 젖은 야경이 눈부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밤풍경이 내 것이 될 수 없다 해도 그리 실망할 건 없다. 해안선이 아름다운 다리를 따라 거닐다 고고히 노니는 백로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자연의 평화로움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도심의 콘크리트 벽 사이로 돌아가는 마음이 무거워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