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서두르다 문득 창 밖을 보니 붉은 노을이 구름과 어우러져 한바탕 난장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단지와 월드컵공원으로 변한 난지도 쪽의 모습입니다.
하늘의 붉은 기운이 어찌 고운지 두손으로 쥐고 비틀면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생뚱맞게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 납니다.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이런 저런 기억들이 조합되어 "아버지"라는 단어가 울컥 목 메이게 합니다.
문병란선생님의 "아버지의 귀로"라는 시를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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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귀로
-문병란
서천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부드러운 노을이 물들면
하루의 난간에
목마른 입술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
무너져가는 노을 같은 가슴을 안고
그 어느 귀로에 서는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그 아들딸 앞에 돌아오는
초라한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딸 앞에선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위대하다!
아부도 아첨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왕국
주류와 비주류
여당과 야당도 없이
아들은 아버지의 발가락을 닮았다.
한줄기 주름살마저
보랏빛 미소로 바뀌는 시간,
수염 까칠한 볼을 하고
그 어느 차창에 흔들리면
시장기처럼 밀려오는 저녁 노을!
무너져가는 가슴을 안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어느 아버지의 가슴 속엔
시방
따뜻한 핏줄기가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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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회에서 홀대 받고 무시 당해도 너무나 가난해서 가족마저 버거운 아버지는
그러나 언제나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애정에 충만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퇴근길을 묘사한 시 같습니다.
"아버지" 와 "사람" 다른가 봅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을 통해 그 존재를 인정 받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가족 속에서만 살아 있고 또 기억됩니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 미안함에 절절해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채이고 밟혀 깨지고 무너져가는 가슴을 쓸어안고 집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에게도 뜨거운 피는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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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주머니속 카메라 pentax optimo-x 군이 수고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