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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했다 아자

한영란 |2007.07.02 19:12
조회 25 |추천 0

나는 취업자리가 생겼다. 결혼.....

일자리가 없어서 가족이 하라고 해서

또는

사랑할 사람이 딱히 없어서..

아기 한명이라도 낳아서 잘 키우고 싶어보고 싶어서....

결혼한 이유였다.

 

 

1985년 2월까지도 나는 결혼도 공부도 다 미루다가...

 결국은 밀어제끼시는데

올해 아니면 너에게 결혼지원금을 대주기 어렵다

올해 지나면 지원금이 없다고 하셨다.

"아기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돈이 필요하니까 부주금을 받기

힘들어." 그때 무슨 말이지 그랬다.

 

"부주금도 퍼주어야 주고 받는 건데 내년부터는 받아내기도 어렵고 그러니

올해 처음 본 사람이면 바로 결혼에 골인해라"

고 하셨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초등학교 출신이란다.

아악~~~

그래 내가 공부하는 것을 고교출신의 선본 사람이 대학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혼퇴짜의 원인을 삼았었는데.

초등학교라면 내가 책을 아예 드는 것을 실어할 것 아닌가

딱 잘라서 초등학교라서 싫어요

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자존심이 상했는지

두고 두고 그 말씀을 내게 해주셨었다.

내 말이 너무 단호했나 보다

말을 설명할 줄 모르는 내 성미라서 내게 호의를 베풀던 오빠였는데

내가 왜 말을 못하는 걸까

아직도 나는 말 주변이 없어 사람을 사근 사근하게 녹이는 것을

요령이 없어서 고쳐져야 하는데

2007년 2월경 때부터는 이제는

가끔 숨이 차서 말을 못할 때도 더러는 있따.

그래서 아예 글만 쓰려고 집중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고는

얼마되지 않아 오빠는 그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곳에서 사장으로 써주겠다면서

뽑혀서 옮기셨다고 했는데.지금은 .... 한다.

 

그 해 여름에 내가 구두수선을 하러 갔을 때에 멋진 아들의 사진을 걸어다가

아마 일미터 20cm정도의 크기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가을에 아버지께서 제 모습을 보아두었다면서 3년간 얘기를 꺼내신 분이 있었다면서

들려주었다... 면서 겨울에 전화가 와서 부모님이랑 함께 선보러갈 때에.

그 가문을 두고 얘기를 하셨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으셨었다고...

그런데, 내 생각은 아마도 직업때문이 아닐까 가난때문은 아닐까?

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했다.

구두수선...

알고보니  구두수선할아버지는 독립군 후손이었다.

...........시아버지되실 분은 듬직하고 말이 없고 정이많으신

분이셨다.

시어머니는 16살 차이나는 분이셨는데 둘째 부인이셨다.

둘째 부인이란게 그 때 사회에서도 좀 창피를 사셨다 했다.

6.25때에 다치고 일제때에 헤어져 있어 그럴수도 있는건데 왜 그리

말이 많았는지...

아무튼 호적에서조차 감추기 위해서 첫 아들의 이름은 있지만. 첫 딸의 이름을 호적에 넣지 않았었다.

나는 아무도 그걸 말해주지 않아서 두째부인을 갖게 할 아들이란 것도 몰랐었다.

그렇게도 부모님은 두째이상의 아들을 사위로 바랬었는데...

첫째라면 여러가지로 부담이 많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10년간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처음 시부모를 만나러 가계에 들렸을 때 부터

 아들과 시어머니는 돈관계로 불평이 많다고 온 동네레 소문을 내어 두째 부인을

받아 돈을 벌려던 것인데 그 원인은 첫 아들이 불쌍해서 누구에게도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던 것이기에 재산에 대해 40년간 ....벼르고 벼렀던 재산싸움인데

그걸 어찌 알겠는가?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친정에 가서 사글세방값을 타오라고 했다.

반지를 맡겼다고 했다

소위때에 그동안 모은 돈은 부모님께 적금넣어 모두 드렸다고 했는데 모르지

어디다 썼는지. 음식에 많이 쓰긴 했다. 매일 오후마다 음식상을 타로 먹던

버릇을 ....길러주셨던 시어머니셨다고...

큰 아들이 전처 아들이기에 언제나 미워했었단다.

큰 아들이 밖에 나가면. 작은 아들인 (시어머니의 큰 아들) 남편에게는 큰 상을 차려주어서

잘 크라고 한 상을 다시 차려주었던 것이라서....

그런데 돈을 쓰느라고 썼던 것인데....

여자까지 퍼주면.... 1987년 1월 10일 때에도 월급의 85%가 나가버렸던 것이란다.

  1989년 2월 10일에 3년동안 넣었던 적금이 435만원의 목돈이 나와야 했었는데

내게 12만원을 내놓으면서 빛갚았다고 말하면서 ....

15만원에서 매달 8만원씩 넣었던 돈인데...

그리고 1989년 4월에는 먹을 돈도 사먹을 것도 없고 사람들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한명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몰랐었다. 유선까지 빼빼 말라서 매일 추워서

거의 밖을 다나니지 못했었다.

이런 얘기는 홰 하느냐고

죽음을 내건

 

내 목숨을 내건 협상이니까 창피하다구?

우린 살았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죽인 사람도 있는데

 

나는 살아있다는게 은총이라는 것

모두에게 감사한다.

그 분들에게는 당연히 가난해서 남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약소국이라는 설움이라면 모두 핑계거리가 되는 것일 뿐

죄가 아닌 전설일 뿐이다.

다만 내가 왜 지금 추운가 그 얘기와 내가 왜 지금 머리를 다쳐야 했는지도

알고 싶기도 하고

알고 싶은 사람들이 하도 묻길래

나도 그 대답을 해주는 것일 뿐이다.

 

 

 

 

 

1986월 5월경에 13만원 받을 때에 뻥튀겨서 100만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들었단다..

보너스달은 26만원이었는데 200만원버는데 혼자쓴다고 그랬단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서 고향에서 돌아오자 돈을 다 서랍에 넣고 그 사람이 맘대로 쓰라고 넣어두었었다.

 

 

그러고보니 24만원을 받을 때에 200만원을 받는다고

방송에서 김대중을 시켜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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