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걸터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널 보며
난 조심스레 회상이라는 앨범을 열어본다.
13일..
짧았던 길었던, 내가 펼친 이 앨범은 너무나도 두껍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저녁이 되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붓, 그리고 좋이.
또 연필과 지우개와 항상 싸워왔다.
그 답답하고 화가 치미는 내 자신을 다시한번 이겨내고서
집에 들어와 사무실 컴퓨터에 앉으면
그나마 편하게 웃으며 대화할수 있는 네가 좋았다.
그때.
네가 슬그머니 이별이란 단어를 꺼내던 전날,
그 이혼이라는게 뭔지..
끊임없이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던 부모님들과
화가 치밀어 붉게 칠해버린 한캔의 포카리스웨트가 그려진 B4가
날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그리고 난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순간부터 조여오는 내 가슴,
숨쉬기마저 불편해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너에게 오는 전화를 받지 못해 막 화를 내며 울던 네 모습을 꿈꿨다.
왜그랬을까.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피곤해 하시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학원에서 미술관 가야된다고,.. 오창까지 가야 하니
율량동까지만 좀 데려다 달라고..
평소같으면 내 머리를 쥐어박고 투덜대셨을 아버지가
오창까지 데려다 주신다는 소리에,
난 그냥,...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
걷고, 걸어서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는
30분째 713번을 보내주지 않았다.
하는수 없이 타게 된 713-1번 버스 안.
수많은 잡생각에 들어 버스를 타고 어머니의 작은 우산을 챙겼다.
난 생 혼자 처음가는 오창 과학단지,
예전에 713번 버스를 타고 갔던 경로와는 달리
이상한 작은동네를 거쳐 너의 아파트까지 가는동안
이 버스가 방향이 안틀리길 간절히 바랬다. 아니 기도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9시 20분에 출발한다던 널 기다리기 위해
20분 일찍 도착한 나는 6월 초지만 쌀쌀한 아침 바람속에서
널 기다렸다.
하지만 너는 얘기했던것과는 달리 나오지 않았다.
[아, 얘가 아프구나.]
[어제 꿈자리가 그거였나..]
그렇게 생각하며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 넘긴 10시 30분까지
그냥 널 기다렸다.
그냥 갈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네가 아파트에서 나왔고,
날 보고 토끼처럼 놀란눈을 떴지.
난 아직 그 표정을 잊지 못해, 큭큭..
늦잠을 자서 알바에 늦었다며 바로 다음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동안, 난 네가 눌렸다며 애교스럽게
자꾸 만지는 머리를 보며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열번도 더 했지.
네가 들어준다던 우산.
난 괸찮다고 하며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아무리 가벼워도 너한테 힘들게 하고싶지 않아.]
너의 따듯한 마음에 고맙게 여기며
[다행이다, 다혜 괸찮구나.]
[오늘은 알바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널 따라 내린 버스 정류장부터 그곳까지
너와 손을 잡고 걸었지.
11시, 내 시간이 멈춘 그 거리.
그리고 난 아직 잊지 못했다.
"영식아, 저.. 진짜 미안한데.."
[어? 얘가 무슨 부탁이라도 하려나?]
[뭐든 해줄수 있어, 얘기만 해!]
아니나 다를까,
그 꿈.. 너의 한마디는 내 멍든 가슴을 찢고 심장속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린 가시나무가 되었다.
"우리,.. 예전처럼 친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
그 말에 대답할 시간. 짧은 1.5초
난 아무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엔 그저 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소리만 속삭이고 있었지.
그리고 넌 아르바이트에 늦은시각이었고..
붙잡기엔 내가 너무 못된것 같았다.
"아,. 괸찮아. 그럴수도 있지, 뭘 그래.."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사라져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난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널 붙잡지 못했어.
혼란속에 로데오거리까지 걸어온 나는
무의식중에 컵라면 하나를 사들고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원 문이 2시에 연다는걸 잊은채로 학원문고리를 당겼지만,
들려오는건 절걱거리는 소리뿐...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제가 오늘 일이 없어서 일찍 왔으니, 학원문 제가 열게요.
원장님의 허락을 받고 비밀의 공간에서 열쇠를 꺼낸 나는
학원문을 열었고, 키를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컵라면에 스프를 넣고, 뜨거운물을 담고,
뚜껑을 꼭 닫은채로 3분이 흘렀다.
그리고 뚜겅을 여는 순간,
희뿌연 습기가 얼굴에 닿았고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앞으로 평생을 안울며 지낼것 같았던 내가.
정말 남은 평생 웃기만 하며 살것 같았던 내가
눈물을 펑펑 쏟아보냈다.
라면을 먹으면서..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앞에 있는 흰 대리석 벽을 멍 하게 보고 있었다.
약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새하얗게 웃는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 벽따위가 널 생각하게 만드는거지?
쿵!
쿵!
쿵.
쿵...
있는힘껏 후려친 벽은
마치 날 비웃듯이 살짝 금이 가 있었다.
난 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며 쉰 웃음을 토했고,
다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스한 물에
눈물을 같이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27일이 흘렀다.
난 아직도
너의 새하얗고 때타지 않은 미소를 보면서
아려오는 심장을 달래고 있다.
나도 정말 미안하다,
너한테 못해준게 너무나 많은데..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억지스럽고, 못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나 정말..
너무나 답답해서 이곳에 내 속마음을 다 훌훌 털어놓는다.
나 아직 너 좋아한다
그마음 아직 하나도 사그라들지 않았어.
네가 가고나서 나 정말 병든것 같아
시간이 갈수록 초췌해지고 몸무게도 줄고 입맛도 떨어져간다.
내 삶의 한줄기 빛이었던 네가 날 떠나고
난 지금 상자속에 들어있는 선인장이네.
네가 없이는 지금의 내 마음을 유지하기 너무나 힘들어..
정말 이러다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네가 이걸 안봐도 좋아.
날 외면해도 좋아.
하지만
이 내 답답한 마음만..
이거 하나만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