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Episode2. 'Summer' - 미니선풍기 (그들만의 여름나기)
지리한 장마가 자취를 감추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살인적인 뙤앙볕에 후끈 달아오른 사랑의 열기까지 더해져 부채질을 하는 우리 두사람의 손이 바빠졌다. 인간 선풍기를 자처하며 누린내가 진동하는 줄노트를 부채삼아 바람을 일으키던 그 이의 이마는 언제나 한강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간 팔이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두 손을 등 뒤로 감춘채 싱글벙글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온 그 이가 뜬금없이 눈을 감아보란다. 감으라니 감긴 감았지만 머릿속에 어설픈 달력을 그려보아도 별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그 이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기대에도 한계가 있었다.
속으로 셋까지 세라는 그 이... 하나, 둘, 셋... 정확히 말하자면 둘 반만에 슬며시 눈을 떴다. 어, 미니 선풍기다. 시원한 하늘색 겉면에 엄지 손톱만한 날개는 유난히 앙증맞았다. 한참을 돌렸던지 선풍기가 뜨끈뜨끈해 물었더니 어제 이 놈을 사서는 밤새 손에 꽉 쥐고 잤단다. 그것도 모자라 나를 만나러 오는 내내 녀석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기뻐할 내 모습을 떠올려다니 분홍빛 온기가 떠날새가 없었던 것이다.
힘차게 스위치를 재꼈다. 기다렸다는듯 빙글빙글 춤을 추며 주인과의 첫대면에 환호하는 모습이 제법 들뜬 모양이다. 한가득 그늘이 드리운 벤치에 다소곳이 앉아 콩알만한 녀석이 땀한방울 흘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에 취하노라면 부잣집 거실 한 귀퉁이에 위풍당당하게 버티고선 에어컨의 우아함이 부럽지 않았다. 가슴까지 시원한 그 바람을 따라 솔솔 풍기는 사랑의 향기는 세상 어떤 여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만의 특권이었다. 그렇게 그 이의 이마위에 흐르던 홍수 직전의 한강은 서늘한 산골자기 아담한 시내로 탈바꿈했다.
여름내 녀석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맴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의 장단에 맞춰 돌고 또 도는 녀석 덕분에 후덥지근한 독서실은 어느새 안락한 개인 서재가 되있었고, 늦은밤 등줄기가 흥건하게 젖은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는 그 이의 피로를 훌훌 날려버리는데도 녀석의 작은 희생이 안성맞춤이었다.
헌데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희미한 가을 향기가 징그럽게 자라던 풀들의 광합성에 태클을 걸자 선풍기도 날갯짓을 멈추고 말았다. 하긴, 밤낮으로 그렇게 혹사를 시켰으니 놈도 쉴 떄가 되었다.
그렇게 귀여운 바람돌이는 내 곁을 떠났다. 건전지는 지겹다며 반찬투정을 늘어놓던 녀석은 결국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희뿌연 먼지들을 벗삼아 점점 내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Written by. J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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