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거칠고 공격적인 언사가 많이 눈에 띄는 군요.
그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난은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합니다.
처음에는 비난을 받는 당사자가 아프겠지요.
또한 그렇게 비난을 받고 있는 당사자와 가깝거나 비슷한 입장에 있는 이들이 아플 것이고 또한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며 결국에는 본인 자신의 마음도 아프게 될 것입니다.
비난은 비난을 낳으며 누구를 공격하든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남을 치고 있는 사람은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비난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비난의 논리가 날카롭고 옳고 정확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자신을 변호하며 마음을 닫습니다.
그리고 매를 맞으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반발할 것이며 그들을 변호함과 함께 그들을 공격한 이들을 향한 대응의 공격을 시도할 것입니다.
결국 상처와 갈등은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으로 비난하지만 점차 상대방 자체를 싫어하게 되고 상대방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이들도 싫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상대방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하여 정이 떨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리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그를 더 불쌍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하여 더 싫어하게 되지요. 그것보라고, 그 사람이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는 성향이 있습니다.
진리라서 믿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무엇이 옳은가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는 것일 것입니다.
자기 변호는 공격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공격자는 자신의 조준이 상대방을 파괴하지 못했을 때 좀 더 날카로운 무기를 준비하게 되겠지요. 또한 상대방은 자신의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좀 더 강퍅해지고 무감각해지게 될 것입니다.
자기 변호란 별로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변호로 인하여 우리를 더욱 더 싫어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변호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호란 그리 가치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공격자가 상대방에 대해서 마음이 누그러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과를 하거나 반성을 하거나 하였을 때일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의 옳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겸손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이 이야기한 내용을 하나 하나 분석하면서 상대방의 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분석해서 걸리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 식의 분석은 모든 이들을 위축시키게 합니다.
대체로 다른 이들을 공격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막상 자신이 공격을 받을 때는 아주 사소한 비난도 잘 견뎌내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을 치는 이들은 자신을 치지 않으며 자기를 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치지 않습니다. 펀치가 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약한 맷집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너를 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온갖 아픈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은 영혼에 고통이 될 뿐 성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맞아서 성장하는 이들은 드물며 아플 때 더 때려주기를 원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심장에 비수가 꽂힐 때 그것을 즐겁게 느끼는 이들은 없습니다.
무슨 말이든 다 해보라고, 괜찮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카로운 말을 견디지 못합니다. 찔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픈 일입니다.
아무리 안 아픈 척 해도 속에는 대미지가 쌓이게 됩니다.
비난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별로 상처 받지 않으며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민하여 고통을 쉽게 느끼는 사람과 둔감하여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둔감한 것은 감각이 마비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많이 찔리고 아프게 될수록 사람은 마비되고 둔해집니다.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에는 갖은 고통과 상함으로 가득합니다. 강퍅하고 사납다는 것은 사실은 속에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더 이상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닫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감각을 죽여버리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면 상처를 받아도 그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감각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어버리겠지요. 어린 아이들의 아름다움, 노을의 아름다움, 사랑과 우정을 즐길 수 있는 감각과 같은 것을 말입니다.
인생의 많은 풍요로움과 행복도 역시 많이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저 날카롭고 냉정하고 냉철하고 .. 그런 사람이 되겠지요. 항상 경직된 얼굴을 하고 있으며 날카롭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비록 상처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다보면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남들이 자기에게 한 독한 말을 기억하고 남들이 자기에게 입힌 상처만을 기억할 뿐 자신이 남들에게 준 상처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모든 것을 쉽게 잊지만 피해자는 아주 오랫동안 아픔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성장할수록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상처보다 다른 이들의 마음이나 입장, 상처에 예민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서 너그러워지게 됩니다.
사람의 기호는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좋아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는 즐거움이 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고통이 되는 것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옳더라도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한 한 두 문장에서도 수 백 가지의 약점과 모순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성향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강아지는 강아지의 먹이가 있고 고양이는 강아지가 먹는 음식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와 성향이 다른 이들을 비난합니다.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 때문에, 또는 여러 가지 사안의 다른 기호 때문에 서로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피곤한 삶을 살게 되겠지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며 다른 이들을 적으로 여기고 싸울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설득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러므로 어린 영혼의 애정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음식이 좋은 것이라고, 이것이 너에게 좋은 것이라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애정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나 필요에 민감한 것이며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성장한 이들의 주변에는 항상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저는 십여년 동안 고통을 겪고 있는 수 천명의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상담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자살을 기도했거나 하려는 사람, 자식을 사고로 잃은 사람, 딸이 알콜중독이거나 아들이 군대에서 죽었거나 사업이 망가졌거나 자녀가 마약을 하거나 정신이 이상해졌거나 배우자의 불륜, 성폭행의 후유증 등.. 인생의 벼랑에서 절망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상대했었지요.
그러한 경우에 그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예리하고 날카롭게 분석하고 진리를 제시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수술해주기를 원하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모두들 다만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필요로 했을 뿐이지요. 단순하게 격려하고 함께 울어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힘을 얻고 회복되어 갔습니다. 옳고 그른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저는 느끼게 되었습니다.
논리는 온전한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더 좋은 논리로 인하여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자세와 입장에 따라서 바뀌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누구를 좋아하게 되면 그는 많은 이유를 들어서 그 사람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 그는 더 많은 이유를 들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논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수시로 바뀝니다. 한 때는 이것이 옳다고 여기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옳지 않음을 느끼고 바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많이 강조하던 것을 세월이 흐른 후에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발전하는 것이므로 입장의 변화가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성은 필요할 것입니다. 한쪽의 입장에 처하여 반대쪽을 비난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음을 바꾸어서 다시 반대편을 비난하고.. 만약 이런 식으로 한다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저는 절대적으로 악해서 비난을 받아도 괜찮은 그러한 사람들이 과연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입니다. 사람이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얼마간은 선하고 얼마간은 못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러워서 누군가 다른 이들을 비난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든 불의와 같이 보이는 것에 대해서 그냥 좋게, 좋게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주장함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감사함과 존중이 포함되지 않고 비난이 중심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칼로 찌른다면 상대방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우리의 주장을 펼 때 우리의 주장은 곧 바로 전투가 되고 처음의 본질은 곧 사라지게 되며 엉뚱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오해를 받을 때도 할 수 있는 한 겸손한 자세로 오해를 푸는 것이 좋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삼으려 한다면 거기서부터 정말 피곤한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비난은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당사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국외자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숨어있고 싶어합니다. 비난이 계속될 때 아주 강인한 사람들 약간 외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여리고 쉽게 상처를 받는 이들은 좀 더 빨리 사라지게 되겠지요.
비난을 하고 공격을 할 때 점점 더 지치고 피곤한 이들은 본인 자신입니다. 그는 점점 더 허무해지게 됩니다. 자신은 옳은 입장에 서 있고 자신은 옳은 말을 한 것 같은에 이상하게 점점 더 기쁨이 사라지고 평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쁨과 평화를 잃어버린 이유가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의 마음 자세로 인한 것입니다.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을 돌로 치면서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하게 띠고 비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게 됩니다. 빈정거리거나 비아냥의 웃음을 띠면서 억지로 웃어도 마음 속의 깊은 부분은 망가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마음에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는 용서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사는 사람이지만 글을 잘 쓰지는 못합니다. 그저 단순하고 쉬운 글을 쓰기 때문에 책은 많이 팔리는 편이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곳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글, 아름다운 글, 멋진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좋은 글들에 대해서 회원님들의 평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쓰기의 수고에 대해서 인색하지 않은가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오래 동안 글을 쓰신 분들에 대해서도 쉽게 비난을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글장이들은 의욕을 잃게 되겠지요.
혹자는 말합니다. 소수의 비난하는 이들보다 좋아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좋아하는 많은 이들은 대체로 침묵을 지킵니다. 그리고 소수의 비난도 가슴이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은 많은 양의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할지라도 아주 적은 소량의 독약을 먹으면 죽을 수 있습니다. 많은 양의 좋은 음식이 소량의 독약을 저절로 치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을 때 서로에 대해서 감사하고 격려하기보다 공격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 실수에 대해서 예리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모습들을 보면서 속이 답답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상대방들을 축복해주고 격려해줄 수는 없을까요.
이곳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곳에서 놀던 분들은 다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가실지,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다면, 남아있을 수 있다면.. 그동안만이라도 비난을 멈추고 서로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해할 수는 없을 까요..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들.. 삶에 얽힌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이나 생각들을 나누면서.. 벗들에 대한 격려나 그리움을 나누면서 이 공간을 따뜻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 공간에 있는 많은 분들이 서로 입장도 다르고 견해도 다르고 성향도 정치관도, 나이도 성별도 모든 것이 다르지만.. 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공감하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들은 다 동지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러한 동지애를 편안하게,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요..
별 의도 없이, 내용 없이 긴 글을 썼습니다.
혹시라도 제 이야기가 설교조로 보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군요.
하지만 그 어떤 분이라도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공간의 모든 분들에게 아름답고 복된 나날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정원목사님의 글입니다..
읽으시고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으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