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록키산맥만 넘으면 평지이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이 수월해 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너무 믿었나 보다. 평야에도 있을 언덕은 다 있었다. 단지 그 경사가 좀 완만하고 길이가 무척 길어졌다는 것이다. BC주에서 볼 수 없었던 주변의 새로운 경치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다. 평야는 대부분 hay를 경작하거나 소와 말을 기르는 뜰이었다. 내가 먹던 스테이크들은 다 이 곳에서 왔는가 보다.
현우
여행하기 전 다쳤던 무릎에 어제부터 슬슬 이상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오르막길에서 도저히 올라 갈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정우에게 다음 큰 마을까지 히치하이크를 해서 가자고 하였다. 태양을 피할 나무 한그루조차 있지 않은 허허 벌판이었다.
정우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빛. 한동안 우리는 여유롭게 달렸다. 달리다 잠깐 쉬면서 사진도 찍고, 다시 달리고.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정 또한 중요하다고 했건만, 황량하기만 한 이곳은 지나쳐가는 곳에 불과하나고 느껴졌다. 어쩌면 이곳은 여정이란 개념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자전거, 풍경,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 시간의 흐름, 그리고 나.
현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인디언 보호 구역 옆이었다. 인디언들이 이곳에 거주할 경우 여러 가지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말이 좋아 보호 구역이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공의 질서를 흩Em리는 인디언들을 사회와 격리 시키려는 정책처럼 보인다. 목장처럼 경계선에는 철망이 둘러져 있었다.
정우
열심히 히치하이크를 하고 있는데 데프콘 그 강도의 위기를 맡게 되었다. 어쩌면 여태까지의 여행 중 가장 큰 난관일지도...
내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위에는 남들의 시야로부터 날 가려줄만한 나무 한그루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나 실례할 뻔뻔함도 없었다. 현우가 눈만 가리고 있으면 모자이크 처리도 되고 나 또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윈윈 시추에이션이라고 한다. 터질 것 같은 고통에 잠시 솔깃하였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니 멀찌감치 농장으로 보이는 가정집이 있었다. 나는 아픈 배를 안고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그 쪽으로 향했다. 그 곳에 화장실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있어도 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배 아픔의 강도로 볼 때 그 곳으로 출발하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올인 하기로 하였다.
현우
난 정우가 휴지를 가져다 달라고 할까 무전기를 꺼버렸다. 어차피 차를 잡아도 정우가 없으니 난 이어폰으로 내 귀를 틀어막고 노래를 들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멀리서 “현우~현우~” 나의 이름을 부르며 정우는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다.
바보 여행기 - 23. 이상한 가족
SPONSO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