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 대회에서 흔히 논해지는 "생명의 중요성"은
어찌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논리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논리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거의 대부분의 글은 이러한 결론으로 끝이 납니다.
"모든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생명을 존중하자"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한, 이러한 결론은
영원토록 진리로 인간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요즘의 사람들이
생명을 정말 중요시 여기는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7년 7월 20일 한국 시간 기준 밤 11시 경,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선교를 나가게 된
18명의 한국인(현재는 23명으로 밝혀짐) 들이
무장테러단체인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혀있다는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매우 잦은 일이었으며,
김선일씨의 일을 한번 겪었던 한국인으로써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지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엔 샘물교회라는 기독교가 연관되어 있으니
사람들의 뒷다마의 재미가 한층 배가되어진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600억 이라는, 거금의 돈 문제까지도 겹쳐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선일씨 처럼 인질들을 지켜달라는 여론보다는
오히려 제발 죽어달라는 식의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세상, 아니 한국 참 사람들이 살기 힘든가 봅니다.
이제는 자기들이 피땀 흘려가며 나라에 꼬박꼬박 바친 돈이
아까워 졌으니까, 몇사람 죽어도 자기들과는 상관없고
오히려 유족들한테 마저 정말 잘됐다고 비아냥 대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
(네이버 댓글 기준입니다. 찌질이가 많다고 하지만 무시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니까요)
이제, 우리는 글짓기를 쓸 때 조금은 다르게 써야 하는걸까요?
"생명은 소중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밥벌레 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숫자가 적어질 수록 개개인에게 낭비되는 자본도 줄어들며,
잉여노동력은 존재만으로도 부담이 되니까 해고시켜버리거나
죽여버리는 방안으로 이끄는 것이 이 사회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내용이 글짓기에서, 혁신적이고 참신하다면서
상을 받아도 지극히 정상일 나날이 올것만 같은 느낌에
너무나 두렵습니다. 근 미래로 다가올 것만 같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있습니다.
제가 17살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중에 크게 되면 저런 아버지가 되어야 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에게는 기준이었고 지침이었으며 목표였던 분이셨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때 가슴 깊이 느꼈던 아픔도 개인적인 일이니까,
슬픈 일일 지언정, 동정표로 쓰여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잃었을 때 느꼈던 것은, 그리고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생명은 다른 사물과 다르게 그 존재가 한번 없어지면
다시 찾거나 얻어낼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시 획득하는 것이 매우 힘든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불가능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아니 모든 동물과 생명을 지닌 것들은
생명을 단순히 "있다"는 것에 지나치지 아니하고
그 생명에 "존재감"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버지라는 자랑스런 이름도 있고
어머니라는 사랑의 이름, 형제자매라는 따듯한 이름
든든한 친구의 이름, 애틋한 연인의 이름 등
수많은 호칭으로서 그 존재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있기에 기쁘고 그들을 잃으면 슬픈것입니다.
그들만의 고유의 "존재감"은 재활용 할수도 없고
버려진 것을 다시 주워올 수도 없지요.
그것은 한번 잃으면 영원히 잃은 것입니다.
있을때 잘하라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할 때, 옆에 있을때 소중하게 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생명이 소중한 것입니다.
촛불 시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때부터 정착된 비폭력 시위 운동으로
대한민국이 자랑할 수 있는 시위의 형태 중 하나죠.
그곳에서는 무사 석방을 요구하며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촛농을 떨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자신들에게 손해만 불러올 것만 같은
피랍된 한국인의 석방을 왜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인을 석방해주는 댓가로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들로 하여금
야기될 더 큰 문제를 이들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에게는 이미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적어도, 잃어버리면 다시 찾지 못할 것들을 위해
하늘을 향해, 시민을 향해, 세상을 향해 플래카드를 들고 있으니까요.
또한, 비난 여론이 심각한 가운데에서도
아무도 피랍된 한국인을 그대로 방치하자며 시위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경시하자며 시위하는 단체같은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문제요, 도덕의 문제에서든 어디서나 생명이 우선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돌 맞을 각오를 하면서 굳이 피랍 한국인 석방을 반대하겠다면
그 사람도 틀렸다고 말 할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믿는 바는, 다수가 가진 양심은
결코 그 사람에게 그러한 시위 행위를 허락하진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23명의 피랍된 한국인들을, "한민족"이라고 지칭하여
그들에게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조금은 큰 범위일까요?
하지만 적어도, 피랍된 한국인들의 가족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심정을 한번은 이해해 봤으면 합니다.
유서를 쓰고 갔다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유서랑 조금 다른 문제니까요.
유서 쓰고 죽은 사람 목숨도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종교적 사명이 헛되었다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역시 다른 문제입니다.
종교에 의해 순교하든 헛된 죽음을 당하든 그 죽음엔 의미가 있으니까요.
국가에서 돌아오라고 하는데도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그래도 그 소중한 생명 바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을테지
피서지로 아프가니스탄을 선택할 정도의 바보들은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요.
물론 생명의 소중함은 잃기 전에는 모른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 해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을 살인귀라고 할 수 도 없고
오히려 적절한 생각이라며 옹호자가 속출하게 되는
이 한국의 여론이고, 한국의 인식이고, 한국의 생각이지만
(물론, 모두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에
계속해서 두각되는 주장이라면 결코 무시할 정도가 아니니까
어느정도의 일반화의 오류는 읽어주는 사람이 관대하게 대해줄것을 믿습니다)
그래도 좀더 생명의 본질에 대해 순수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고지식하고 지극히 교과서적이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600억원이나 한국파병군 철수에서의 손해와 외교적 관계와
그들을 저울질 하지 않고선, 순수하게 피랍인들의 입장과
그들의 가족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비록 그것이 정부에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고
무장세력의 마음을 흔들지도 못하고
결국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피랍인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지언정
나 자신부터 생명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 다음에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해
좀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선진국민의 발걸음으로 인도하지 않을까 합니다.
18명 살려줬다고 선진국이 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나라들 중에서
그 나라 국민들이 생명을 경시하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