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담기를 꺼려하는 부끄러운 현대사...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그나마 원작 소설때문에 입소문에 올랐던 [오래된 정원]과 광주항쟁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어 버린 사내를 그린 [박하사탕], 광주항쟁 이후 미쳐버린 소녀를 그린 [꽃잎], 그리고 꽤 많은 수의 영화들이 한국 현대사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러 들었다. 한국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불과 몇십년전의 이야기를 공공연히 대중매체로 터뜨리기엔 아직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역사. 1980년 이후 역사는 멈춰있다라는 말이 영화속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이다.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어낸 세계 역사.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영화로 제작된 공통된 역사는 무엇일까. 누구나가 인정하듯이 2차세계대전을 배경을, 그중에서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주제이다. 600만명의 동일인종을 쓸어버린 희대의 학살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밝혀진 비극이다.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학살에 대한 사실은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에 "죄책감"으로 각인되었고, 역설적으로 당시를 영화(혹은 문화적 컨텐츠)로 재연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다. 집단 무의식에 자리잡힌 역사는 결국 우리 스스로 숨기지 못하고 발현되기 마련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참혹했던 순간. 1980년 5월 광주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민중들의 죄책감에 기반을 둔 일종의 금기시된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시민이었다.
현대사를 그린 영화는 위에서 말했든 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혹은 [오래된 정원]에서 처럼 원작소설의 명확한 주제를 비껴나간 졸작이 되었다. 어떠한 정치적 부담감, 혹은 감히 밝히지 못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영화에서 가까운 역사를 그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커다란 "폭로"일수 있기에 (그만큼 아직도 우리사회는 폐쇄적, 반 민주적이다) [화려한휴가]라는 영화에 커다란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현대사(혹은 정치와 관련된)를 그린 영화는 주제를 비껴나가거나 극단적으로 비꼰 비정상적인 영화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내 생각과는 반대로 역사를 매우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금남로에서의 발포장면은 충격 그 이상이다.
영화는 형재와 한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들이 주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조적인 자세로 당시 광주의 모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나 우리가 제도권교육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들, 예를 들어 부산항에 들어오는 미군 항공모함이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 계엄군이 일반 시민들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폭력과 학살을 자행하는 장면, 폭력에 물들며 광기를 발하는 계엄군의 모습은 당시의 기록화면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그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파격적인 "폭로"다. 관객은 영화의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중반, 계엄군의 발포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당시 광주의 모습. 영화는 매우 뛰어난 고증을 통해 당시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이 영화가 시작이 될수 있을까?
한국만큼 현대사를 숨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작년 광주 망월동에 갔을 때, 나는 매우 불편한 자리라는 것을 느꼈다. 진범은 알지만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있지만 밝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파악하려는 의지도 없는 이 나라,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하고 "이정도로 했으니 이제 군말 말아라"라는 식의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 그나마 광주항쟁은 나은 편이다. 경산 코발트 학살과 노근리 학살, 부마항쟁과 제주 4.3항쟁 등의 피해자 가족들을 아직도 "빨갱이"라는 구시대적 올가미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비극들. [화려한휴가]에서 폭로된 광주항쟁은 야만스러운 한국 현대사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화려한휴가], 이것이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영화의 후반부는 영화적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들이 약간은 작위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당시 시민군들의 죽음을 통해 감동을 주려는 의도인것 같지만, 그 부분들이 없더라도 영화는 좋다. 역사를 가장 사실적으로 밝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그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만들어질 한국영화에서 [화려한휴가]를 뛰어넘는 "폭로"적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한다. 물론 당시보단 좋아졌을 거다. 하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아직 세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국경제를 말아먹을 수 밖에 없는 FTA를 강행하고 있고, 이랜드 노동자들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한달이 넘도록 싸우고 있다. 20년 동안 일한 곳에서 비정규직 "보호"법 덕분에 하루아침에 쫓겨나가고, 서민 경제는 더욱 어려워 지고 있다. 국민총생산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빈민층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대학생은 졸업하고 갈 곳이 없어 자살하는 세상이다. 좋아진 것이 무엇인가. 나라를 위한다는 그들은 80년 총칼에서 07년는 좀더 영악해진 방법으로 민중들을 학살하고 있다.
80년 시민군이 계엄군과 싸웠듯이, 07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들을 대상으로 싸워야 한다. 그들이 영악해진 만큼 우리는 똑똑하게 싸워야 한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만큼 무식한 것은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좋은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이제는 "해결해야 될 부끄러운 역사"로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