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한 정부. 31일 새벽 외신을 타고 전해진 두번째 인질 살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정부의 대응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납치단체의 요구에 현실적으로 직접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질 살해를 막을 방책은 과연 없었느냐는 의문에서다. 특히 두번째 인질 살해 상황이 첫번째 희생자와 거의 비슷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다.
1. 아프간 정부를 지나치게 신뢰했다=납치단체는 30일 오후 8시30분 “협상 시한을 여러번 제시했으나 아프간 정부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인질을 추가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 협상단의 미라주딘 파탄 가즈니주 주지사는 “납치단체와 협상 시한을 이틀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긴장 속에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정부는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아프간 정부관계자의 말에 무게를 두고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철야근무를 이어오던 청와대와 외교부는 아프간 정부의 말을 믿고 자정을 전후해 철수했다.
결과적으로 파탄 주지사의 말은 허언이 됐고 납치단체는 심씨를 살해했다. 협상시한 ‘이틀 연장’을 확인했던 청와대는 31일 “가즈니 주지사 등의 기대사항으로 탈레반이 직접 확인한 사항은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무장단체의 핵심 요구사항인 탈레반 포로 석방에 부정적인 데다 상황 판단마저 부정확한 아프간 정부를 너무 신뢰했다는 지적이다.
2. 무장단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정부는 그동안 “무장단체와 여러 경로를 통해 직간접으로 접촉하고 있으며 안정적으로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정부는 이 채널을 통해 인질 일부 석방이나 시한 연장에 합의한 것으로 이해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인질이 살해되는 상황을 두번씩이나 맞았다. 정부가 소통하고 있는 채널이 과연 무장단체 전체를 대표하는 협상 전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정부는 협상의지를 보여온 온건파를 무장단체의 주도세력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온건파의 입지는 정부의 판단보다 좁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유수프 아마디는 31일 협상 시한을 이틀 연장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으며 협상 시한은 뮬라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지도자위원회가 결정한다고 밝혔다.
오마르는 탈레반 정권을 이끌고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탈레반 최고 지도자다. 무장단체 내부의 주도권과 협상권을 강경파인 탈레반 지도부가 접수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는 탈레반 내부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온건파와의 협상채널을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3. 간접 협상의 한계를 드러냈다=정부는 외교부 문하영 본부대사를 현지에 보내 아프간 정부 대책회의에 참석케 하고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지만 협상권은 아프간 정부가 쥐고 있다. 정부와 테러단체간 직접 협상은 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납치단체의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경직된 자세를 보여 납치단체와 신뢰구축에 실패했다.
외교부 차관을 현지에 보내고 대통령 특사까지 파견했지만 이같은 협상 구조로는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제 정부가 직접 나서 무장단체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유신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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