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대한민국 인터넷 사용자 중에 악플을 적는 사람이 많아도, 스스로가 악플적 자세를 버리고 선플적 자세로 인터넷을 하면 그런 사람의 눈에 자주 보이는 것은 악플이 아닌 선플이다. 최근 인터넷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선플'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중 혼자보기 아까운 최고의 선플 하나를 묵상해 본다. 이 사람의 선플이 선플일 수 있는 핵심을 배워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이 모순적일수록 다른 사람의 글에서 모순을 잘 보고, 자신의 가치관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올바른 것일수록 다른 사람의 글에서도 공감을 잘한다. 이 선플을 내가 높이 평가하는 그 핵심은 ‘진정한 공감’ 이다.
'지가 쓴 글이 좋은 글이라 그러면 다 선플이냐 기분 좋으니까 오바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가치관에 스스로 고립돼서 기분 좋은 것 이상의 더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좋은 글'이라고 말해주는 '칭찬'도 분명 이 글이 선플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고, 글쓴이가 기분 좋게 볼 만한 글인 것도 사실이다. 비방은 우매한 자의 것이고 칭찬은 지혜로운 자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제시한 선플에서는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공감’이란 바로 ‘회개’를 뜻한다.
회개가 이 선플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선하다는 것이 뭔가.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인가. 물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선한 것이다. 그런데 착하다는 기준은 뭔가. 착한 것이 뭔지를 알아야 착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이 착하다고 하는 것이 꼭 착한 것이던가?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착한 것이었나? 진정한 의미의 착하다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마음 깊이 인정하고 다시는 잘못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노력을 말한다. 자기잘못은 그대로 둔 채 세상적으로 인정받는 선행을 한다고 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교회만 자주 나간다고 해서 착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동시에 잘못을 계속 행하고 있으면, 잘못은 그대로 잘못으로 남아있다. 컵에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동시에 부으면 더러운 물이 담겨있을 뿐이다.
부자에게서 돈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사람의 도둑질은 도둑질일 뿐이지, 도둑질이 아닌 것으로 미화될 수 없고 정당화되지 않는다. 나눠주고 싶으면 정당히 돈을 벌어서 나눠주고, 능력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돈 말고도 얼마든지 선행을 베풀 일들은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 류의 공산주의적 영웅주의는, 자기 자신이 신이라도 된다는 교만한 착각에서 비롯된다. 김정일이 그 좋은 예다. 교만은 절대 착할 수 없다. 교만은 바로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남한은 23명 포로로 잡힌 것이 큰일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비방하지 않고 노무현은 입버릇처럼 비방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단체로 간첩에게 세뇌당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데스노트 작가는, 라이토는 정의로운 자가 아닌 살인범이라고 분명히 결론짓고 있다. 살인범을 죽인다면 죽인 사람도 살인범이 된다. 사형제도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개인의 정의적 살인충동에 관한 얘기다. 법의 권위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지만, 개인의 정의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 물론 하나님의 공의가 개인의 정의처럼 역사하는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 중의 극소수의 경우고 자기정의가 없을 때나 가능한 특수한 일이다. 자칫 자신의 정의를 하나님의 공의로 잘못 해석하다간, 한동안 뉴스거리였던 살인범처럼 학교에서 총기난사하고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가 어쩌고 하는 꼴 나는 수가 있으므로, 이 ‘자기정의’라는 것은 영웅심리가 투철한 사람들은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착하게 사는 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회개다. 착하다는 것이 곧 회개한다는 의미다. 회개란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자기잘못 뿐 아니라, 자기만 알고 있는 자기잘못도 시인하는 것이고, 자기도 모르고 있는 자기잘못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즉 회개란 내가 이전에 잘못한 것들이 산더미같이 많으며, 지금도 내가 모르고 있는 내 잘못이 수없이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이 곧 죄라는 개념에서, 내가 죄인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더러운 줄을 알아야 씻고 깨끗해질 수 있다. 스스로가 잘못하는 줄을 알아야 자신을 고치고 잘할 수 있다. 스스로가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고치고 선하게 살 수 있다. 그 고치는 행위, 즉 회개란 선행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기 때문이다.
ps.
그 댓글의 회개가 진정한 공감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문에서 쉽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겠지만, 저자 역시 회개의 마음을 통해 그 글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댓글을 적은 사람이 그런 저자의 마음까지 읽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회개의 마음으로 적은 원문 아래 달린 회개의 댓글이야말로 공감 중에 진정한 공감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선플의 본을 보여준 김용록님에게 기다림을 기뻐하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