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생(生)에 대한 고찰
이기와
잡념같은 별들이 수북히 내려앉은 밤 골목
주소 잃은 사내 하나가 오착(誤着)된 우편물처럼
남의 집 대문 앞에 떨어져 있다
풀어헤쳐진 넥타이
헐렁해진 사내의 몸을 벗어 던지고
사색의 문턱에 홀가분히 나앉은 구두 한 짝
사내의 입에선 채 곯아떨어지지 않은 독백이
타액에 섞여 흘러나오고
양복바지처럼 구겨진 그의 그림자가 몇 차례나
제 주인을 일으켜 세우려다 도로 주저앉고 만다
얼마나 고단한 삶을 이고 다녀야지만 저리 한순간
가차없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을까?
한사코 직립을 고집해 오던 생의 척추를
깔판도 없는 맨땅에 사정없이 주저앉히고
초인종 없는 아득한 꿈의 저택으로 귀가하기까지
얼마나 자주 환멸의 뒷골목을 순례하며
단단한 정신을 분질러 왔을까
그후 몇차례나 더 잠꼬대의 들을 게워내기 위해
거리의 냉담한 쓰레기더미와 마주했을까
감춰진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까지
편집없는 적나라한 삶을 생방송하기까지
제 영혼을 망각의 대문 앞에 샘플로 내다걸고
얼마나 자주 관객들을 불러모아 왔을까
내가 고탄력 이성의 스타킹을 배꼽까지 두르고
금속 브래지어로 가슴 두 쪽을 바짝 동여매고
하루하루 철저하게 방어하는 내 집 앞 홈그라운드에
오늘은 강력한 라이벌이 먼저와 몸을 풀고 있다
바퀴의 근성
이기와
간혹 길이 아닌 길을 침범하고 싶다
누런 오줌발이 갈겨진 담벼락이나
길의 내장 속 같은 시궁창에 머리를 들이박고 싶다
제 무게에 눌려 끝내 균열되거나
부식된 속 여기저기 땜질한
일상의 전용도로를 벗어나
이정표 없는 노천으로
통행료 없는 다리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싶다
간혹, 건물과 건물의 가랑이 사이
매연으로 포장된 질(膣)속
그 침침한 내부에서 활보하는 폭주족들과
돌연 충돌하고 싶다
유턴할 수 없는 삶의 일방도로 복판에서
전복된 채, 몇 날 며칠 정신의 시동을 끄고 쉬고 싶다
쉴새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철근의 희망 밖으로
견일될 때까지, 폐차장이나 고물상에 안전하게 처박혀
허방에 두 다리 뻗고 체류할 때까지
연거푸 돌발사고를 유도하고 싶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 초고속의 날들과 절교하고 싶은
몇 번이나 수리했어도 여전히 삐딱하게 굴러가는
개 같은 이 천성
*시인 이기와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 '지하역'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첫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냈다.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대
학원을 졸업했다. 어렸을 때는 봉제인형공장, 거울공장, 가방공장,
식모살이, 신문배달, 중국집 서빙, 등을 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파
출부, 미장원, 함바집, 포장마차, 단란주점, 1급 유흥업소 마담직 등
을 했다. 이런 밑바닥 삶의 경험이 토대가 되어 쓰인 그녀의 자전적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고통스런 삶의 기억을 특유의 치열한 언어로 묘파해 냄으로써 문단
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녀는, TV 프로그램 KBS ‘이것이 인생이다’
화곡동 황진이 편에 출연하는 등 질곡의 세월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인생 경력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도시 생활을 접고 김포의 한적한 전원마을에서 텃밭을 가꾸
며 자연을 벗 삼아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시집으로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가 ,
산문집『시가 있는 풍경』과 『비구니 산사 가는 길』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