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소설의 원작을 보지 못했다.
다만, 소설의 내용이 운동권의 후일담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다.
80년대를 살아본, 아는 청춘들이나 40대는 충분히 공감이 갈 만한 소재인지라,
원작자나 이 원작을 영화로 만든 임상수나 모두 운동권의 정서를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 우울하고 무력한 영화이다.
80년대 운동권을 대표하는 한 인물인 현우(지진희)는 도망자이다.
수배자이다. 그 때는 흔한 상황이였다.
운동하고 도망치고, 어그제 나도 대학생 수배자와 술 한잔을 했다.
이건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를 숨겨주며 돌봐준 여선생 윤희(염정아). 이 두사람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80년대 후반 혹은 90년대 초반의 운동권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동정적인 시선으로 때로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어쨌든 결과는 지치고 패배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우울하고 무력하다.
문제는 현실이다.
많은 젊은 청춘을 분노하게 만들고, 분신하게 만드는 이 현실이 문제다. 영화에서 보여준 충춘들이 모두 그 현실 속에서 얽혀 애환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나 풍요, 자유로움은 일정 부분 386의 운동권 세력에게 빚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학생 자신들의 부모님 세대임을 상기시키며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낮은 곳에서 저항한다.
누군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침을 부르짓다가 스러진다.
누군가는 스러진 그들을 붙잡고 울어주고 묻어준다.
누군가는 소리없이 숨죽여 소주잔을 들고 울어준다.
내가 삶이라는 것에 치이고 나의 안위만을 생각할 때,
그 누군가들은 언제나 내 주변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현우가 딸을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근덴, 난 왜인지 이 장면에서 울컥 하고 눈물을 쏟았고,
죽은 윤희가 그들 주변을 배회하는 연출은 야릇한 여운감을 주었다.
이 영화 재미없는 영화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임상수 영화가 위기, 절정의 심각한 갈등 구조나, 위기의식을 담아내지 않고 다소 느릿한 병렬형식으로 플롯을 배치하다 보니,
전체적인 영화 인상이 자극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대중영화식 선입견을 버리고 영화를 드려다 보면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듯 자연스럽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슴이 젖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