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굉장하다고 여긴 것은 니시에 교수님의 강의 내용만이 아니였습니다.
강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길 만큼, 교수님의 온몸에서는 강렬한 파동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상대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파동이라는 점입니다.
파동만 전할 수 있으면 이야기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와 반대로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내가 가지고 있는 파동을 전하지 못하면 그 이야기는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강의는 라이브(live)이며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그때 그순간에 들을 수 있는 강의는 평생 한 번뿐입니다.
그때 그 순간을 놓치면 다음에도 똑같은 강의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때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이 누군가, 그때 내 기분이 어떠한가,
그때 강의실 분위기가 어떠한가에 대해서 강의 내용과 교수님의 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때와 장소, 강의를 듣는 사람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구태여 비유하자면, 강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교수님이 학생들의 웃음을 얻기 위해 퍼포먼스를 해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니시에 교수님의 강의는 나에게 있어서 지성(知性)의 곡예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차라리 지성의 격투기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내 눈앞에서 최첨단 컴퓨터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교수님들이 지난 10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선배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가르쳤고, 후배에게도 똑같은 내용을 가르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강의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1 더하기 1이 2가 되듯, 원론적인 부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답인`2'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은 그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을 가르치는 쪽에서 보면 "아아, 오늘은 설명을 잘했다!"라는 날과 "오늘은 왜 이렇게 설명이 이상하지?"라는 날이 있습니다.
즉 똑같은 강의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더 쉽고 ,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므로, 강의 내용은 항상 신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강의 내용이 시시하다면, 교수님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설명할지 연구하지 않았던 탓이겠지요.
똑같은 주제로 가의하는데도, 몇번을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런 교수님은 강단 위에서,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진검승부를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도 그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장기부(將棋部)였습니다.
장기를 두는 분은 아시겠지만, TV에서 장기 해설하는 것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해설자가 자기 세계에 빠진 것입니다.
'아아, 저게 저렇게 되다니! 아아, 어떻하죠? 정말 괴로운 상대입니다!"
해설자가 이렇게 말해도, 정작 시청자들은 무엇이 어떻게 괴로운지 이해하지 힘듭니다.
하지만 그 순간, 장기 팬들의 머리에는 강렬한 긴장감이 스칩니다.
`뭔가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 굉장한 일이 일어나려는 것 같군!'
해설자의 말투에서 이런 느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천재기사 가토 히후미씨의 열렬한 팬으로, 그는 해설하는 도중에 종종 자기 세계로 들어가곤 합니다.
해설은 거의 하지 않지만, 그의 온몸에서는 해설하는 것 이상의 무거운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수업도 장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교수님이 한 수를 두었다고 합시다.
가러면 당신이 앞을 내다보고 "으음, 졌습니다."하고 항복을 선언합니다.
마치 콩트 같지만 이것은 장기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그 정도로 진지하게 교수님의 기백을 느껴야 합니다.
진검승부를 하는 천재로부터 파동을 받는 것입니다.
당신은 교수님에게서 강렬한 파동을 받고 있습니까?
멋진 대학생활을 위한 행동 포인트 3
파동을 받을 수 있는 강의를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