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9월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이었습니다.
레알 소시에다드서 누만시아로 임대된 이천수(26)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했죠. 컨디션이 좋았던 터라 그는 내심 '오른발의 달인' 데이비드 베컴(현 LA 갤럭시)과의 프리킥 대결을 별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베컴은 전반 17분 오른발 프리킥골을 작렬시켰습니다. 후반 28분 이천수는 중앙을 돌파하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형 미드필더 엘게라로부터 프리킥을 얻어냈습니다. 평소 '이천수 존'으로 불리던 아크 왼쪽이었습니다.
그는 벤치를 향해 오른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자신이 차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벤치는 테네베트에게 차게했고 그의 오른발 프리킥은 수비수 몸맞고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처했던 이천수의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알 소시에다드와 누만시아에서 그의 역할은 극히 적었고, 당돌하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자존심 강하던 이천수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사실 자신감을 잃은 이천수는 이빨빠진 호랑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그는 스페인 스포츠전문지인 엘문도 데포르티보와의 인터뷰에서 뜻깊은 말을 남깁니다.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더 진지한 자세로 경기에 임해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겠다. 천둥이 치고나면 고요한 시기가 오는 법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의 의욕마저 상실하며 방황하다 눈물을 머금고 한국으로 복귀해야 했습니다.
2007년 8월 31일 마침내 그는 2년 6개월만에 유럽에 재진출했습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의 3대 명문으로 꼽히는 페예노르트입니다. 비록 사우스햄턴 포츠머스 위건 풀럼 등 그동안 거론되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에게는 생애 마지막 유럽 도전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화끈한 지원군들
내년이면 페예노르트는 창단 100주년을 맞습니다. 더이상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에 밀릴 수는 없다며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송종국이 뛰던 시절 감독이었던 베르트 판 말베이크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고 로이 마카이(바이에른 뮌헨) 케빈 호플란트(볼프스부르크) 판 브롱크호르스트(바르셀로나) 등 오렌지 군단의 베테랑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이천수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로이스톤 드렌테의 공백을 메워야 합니다. 그와 함께 측면을 담당할 선수는 안트빌레 슬로리입니다. 슬로리는 지난 6월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네덜란드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신예입니다. 당시 가공할만한 스피드로 한국 수비라인을 농락하던 그의 플레이가 떠오릅니다.
판 브롱크호르스트는 이천수의 영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사실 한국-네덜란드전 당시 한국이 비록 0-2로 패했지만 이천수만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뽐냈습니다. 한국을 상대한 감독들에게 빠지지 않고 내놓는 질문이 "한국 선수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가 누구였느냐"입니다.
2002년 5월 잉글랜드대표팀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현 맨체스터시티 감독)을 비롯한 숱한 감독들은 이천수를 꼽았습니다. 경기장 밖에서는 말많고 탈많은 악동일지 몰라도 경기장 안에서 만큼은 충분한 기량을 지닌 선수가 바로 이천수입니다.
이미 한국을 다녀갔었고 한국축구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말베이크 감독은 "이천수는 국가대표팀과 K리그에서 이미 몸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측면 공격수로 바로 투입할 수 있을 듯 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천수, 황제 플레이를 벗어나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
"나는 이미 송종국을 경험했고 피터 보스츠 기술이사와 함께 예전부터 이천수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원점에서 시작하는 데 익숙지 않던 이천수에게는 스페인에서 겪은 불안요소 없이 힘차게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천수의 재진출에는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감독의 측면 지원이 있었습니다.
울산의 임대제안 거부로 사실상 포기 상태에 있던 이천수의 영입에 막대한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그를 붙잡은 데는 전임 감독들의 힘이 컸습니다. 사실 히딩크를 비롯한 아드보카트, 베어벡 모두 이천수를 무척이나 아꼈던 감독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천수가 외롭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든든한 기둥입니다.
▲황제 플레이를 벗어던져라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게 있습니다. 미하엘 발라크가 지난 시즌 첼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던 그 문제와 비슷한 우려입니다. 발라크나 이천수 모두 대표팀이나 소속팀에서 자기 중심의 플레이에 익숙해진 선수들입니다. 볼은 그의 주변에서 맴돌며 그 패턴을 좌지우지하며 경기를 펼치는 '황제 플레이'에만 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천수가 스페인에서 실패한 절대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스페인에 있을 당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황제같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죠.
네덜란드 선수들은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도 지극히 이기주의적입니다. 박지성도 아인트호벤 시절 판 보멀에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천수로서는 자기 위주의 플레이가 아닌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헌신이야 말로 동료들로부터 신임을 얻을 지름길이며 적응의 첫 단추입니다.
지난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이천수의 플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축들이 대거 빠진 B팀 속에서 이천수는 결코 어슬렁거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8월 중순 세계배드민턴선수권을 취재하기 위해 아시안컵을 벌였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찾았을 때 한국 교민들은 여전히 이천수의 열정을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매서워진 오른발 프리킥
자! 이제 이천수의 최고 무기인 프리킥을 얘기해보려 합니다. 이천수는 K리그 통산 36골 중 8골을 프리킥으로 성공시켰습니다. 스페인에 가기 전에는 1골에 불과했지만 실패를 경험한 후 복귀해서 7골을 작렬시켰습니다.
그의 프리킥은 더욱 농익었고 누가 뭐래도 현재 한국 최고의 프리키커입니다.(왼발의 고종수도 부활하기를 기대합니다) 단지 감아차는 능력 뿐 아니라 골문 근처에서 볼을 뚝 떨어뜨리는 킥의 방법을 완벽하게 터득했고 심리싸움도 노련해졌습니다.
A대표팀에서 뽑아낸 10골 중 3골이 프리킥이죠. 2004년 9월 8일 베트남 호치민서 열린 독일월드컵 2차 예선 베트남전서 한국은 후반 4분 박재홍의 자책골로 선제골을 내줍니다. 만일 이날 경기서 비기기만 했더라도 한국은 월드컵 본선은 고사하고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천수는 후반 18분 이동국의 골을 어시스트한 데 이어 후반 30분 오른발 프리킥골로 역전시킵니다.
그야말로 이천수의 독무대였죠. 한국 축구를 먹구름에서 벗겨낸 승부사 이천수를 어느 감독이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2006독일월드컵 토고와의 첫 경기서도 동점골은 이천수의 오른발 프리킥이었습니다. 또 지난 2월 영국 런던 크레이븐코티지서 열린 그리스전의 결승골 역시 이천수의 오른발 프리킥이었죠.
이천수의 프리킥은 EPL에서도 충분히 통할 위력을 지녔다.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
당시 영국 기자들은 "프리미어리그서도 충분히 통할 위력적인 프리킥이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습니다. 또한 이천수는 스페인에 떠나기 전만해도 오른발에만 의존하던 득점 루트가 왼발 헤딩까지 넓히는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2003년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이천수라는 것입니다.
▲판 호이동크의 후계자로 불릴 수 있다면
지난 시즌을 끝으로 페예노르트의 전설이 은퇴의 뒷길을 걸어갔습니다. 피에르 판 호이동크(38)입니다.
98프랑스월드컵 한국-네덜란드전서 후반 34분 오베르마스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시키며 한국 골문에 네번째 비수를 꽂았던 장본인이며, 송종국의 네덜란드리그 데뷔전이었던 지난 2002년 9월 15일 트벤테전서 송종국의 왼발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지으며 송종국에게 공격포인트를 선사한 바로 그 선수입니다.
그는 1989년 로젠달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19년간 셀틱(스코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잉글랜드) 벤피카(포르투갈) 페네르바체(터키) 등에서 활약했고 특히 페예노르트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뛰었고 그의 마지막이었던 2006-2007시즌을 페예노르트에서 마감한 스타플레이어입니다. 19년간 551경기서 무려 335골을 뽑아냈습니다. 하도 많은 팀을 돌아다녀 '축구 유목민(Football Nomad)'라고도 불리지만 그에게 페예노르트는 각별한 팀입니다.
이제 현역을 떠난 그에게 '최고의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라는 칭호를 주는 데는 아깝지 않습니다. 지난 2002년 5월 9일 페예노르트는 독일의 도르트문트를 3-2로 꺾고 28년만에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되찾아옵니다. 1974년 토트넘 홋스퍼를 누르고 첫 UE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페예노르트의 승리를 이끈 것은 판 호이동크의 오른발 프리킥이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슈퍼컵서도 그의 예리한 프리킥은 어김없이 골로 연결됩니다. 그는 데이비드 베컴, 사니사 미하일로비치 등과 더불어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만큼 그의 프리킥은 '절반의 골'을 뛰어넘는 적중율을 과시했었죠.
2004년 12월 19일 스페인 마르베야시립경기장에서는 '프리킥 마스터 2004'라는 특이한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프리킥의 최강자를 뽑는 대회였습니다. 판 호이동크는 지네딘 지단, 호베르투 카를로스, 사니사 미하일로비치, 에스테야 소르프레사, 줄리우 밥티스타, 바실리 차르타스, 루이스 에르난데스 등과 함께 이 대회에 초청받았었죠.
페예노르트의 홈구장인 데 카윕에서는 판 호이동크가 프리킥을 차려할 때마다 저마다의 함성으로 기대감을 높입니다. 판 호이동크 출현 이전만 해도 네덜란드 축구는 전문적인 프리키커의 부재로 시름했었죠. 판 호이동크는 역사에 남을 프리킥의 달인이었으며 '슈퍼 서브(후반 교체 멤버)'였습니다.
이천수의 오른발 프리킥이 판 호이동크의 대를 이어 로테르담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번의 시련을 겪은 그에게 골은 빠를 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마수걸이 골이 프리킥에서 터져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죠.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