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평가들이 디워(D-War)의 초기 흥행에다 대고 애국적 마케팅이니, 영화의 기본이 있니 없니 하면서 난도질하자, 심형래를 매질하는 것으로 비쳐졌고 본의 아닌 홍보로 영화는 더 잘나갔다. 급기야 디워 논쟁은 TV토론으로 이어졌고, 패널 중 진중권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튀는 싸움방식은 누리꾼에 이어 또다른 논객을 불러들임으로써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칼을 휘둘러 대니 점입가경이다. 그 바람에 정작 당사자인 심형래는 자기의 작품을 두고 벌이는 비장한 싸움을 구경해야 하는 희한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이와 관련,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힌 비평가들의 어리석음이다. 비록 드러내진 않았지만 저급하게 여기는 듯한 장르 출신 감독을 거부해서인지 그 작품의 ‘영상미학’은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영화예술적 권위로 그 저급성만 논하기에 급급했고, 심지어 고전 미학적 잣대로 태생적으로 비교 불가능한 대상을 비교하는 무모함까지 서슴지 않았다. “디워는 함량 미달의 저급한 작품이다. 아그들은 디워에 열광한다”고 했다. 결국 “아그들도 저급하다”는 생략 삼단논법으로 결론짓자, 아그들이 봉기했다.
만일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론을 했는데도 아그들이 그 난리를 쳤다면, 비평의 진정성을 이해 못한 무능아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디워 열풍의 그 수백만이 바보가 아니란 점은 ‘애국적 충정’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몰락한 천년학에서 드러났다. 심형래는 졸지에 피아를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분법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문화적 현실의 아이돌로 우뚝 섰다.
둘째, 국민 문화향수 1위가 영화이고 그 영화관객의 대다수를 점유하는 누리꾼 세대는 더 이상 비주류 하위문화가 아니며 정보사회의 주역으로 부상 중이다. 20세기와 다른 매체전달체제를 가진 그들은 특정한 충격이 없는 한 행동하지 않는 산업사회의 대중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의도적인 선동이나 선전에 감복하지 않으므로 그들 세계를 비판적 대중예술론만으로 평하기엔 한계가 있다. 또한 이들 나름의 의식 수급체계를 진단하는 데 과거의 문화패러다임은 적절치 않다. 네트워크 안에서 이들이 공유하는 문화는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전시대적 범주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로 열려 있다. 그들의 자유로운 취향과 문화는 일시적 컬트가 아니라 전환기의 문화적 트렌드이다.
800만의 디워 열풍은 이들의 감성에 공유하는 문화코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컴퓨터그래픽만 난무한다고 매도해선 읽어 낼 수 없는 부문이다. 불투명한 현실에서 세계로 뻗어 나갈 가능성을 보았거나, 거듭되는 실패와 온갖 박대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돈키호테 감독의 열정에 필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 경향은 이미 붉은 악마에서 맹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념적 투쟁에 투철했던 세대가 있었다면 자기 취향과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열광하는 세대가 이 아그들이다. ‘화려한 휴가’가 묻혀 있던 과거의 사실적 접근으로 역사적 의의를 새기는 것만큼 영화 디워의 현실적 의미를 찾아 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장섭 문화평론가
2007.09.07 (금) 19:02 - 세계일보 & Segye.com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