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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부정론에 대하여

정재훈 |2007.09.09 22:17
조회 79 |추천 4

무릇 유해한 것은 없는 것이 낫다. 그러나 문제는 [유해]에 대한 정확한 가치 판단이다. [유해]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오직 부정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모름지기 법전이 없는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세상의 질서, 인간의 정의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취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의 필요성이 전제되어 있다.
한 잔의 녹차를 앞에 두고서도 그 필요성은 천차만별이다. 한 잔의 녹차는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건강의 필요성에 의해 정의되기도 하고, 향기의 필요성에 의해 정의되기도 하며, 분위기의 필요성에 의해 정의되기도 한다.
우리가 쓸모없는 찌꺼기로 배설해 내는 대소변도 마찬가지이다. 농부에겐 더 없이 좋은 유기농 거름의 필요성을 지니며, 제약사에게는 건강을 위한 성분 추출의 필요성을 지니게 된다.
물론 이러한 필요성은 저울질되기도 하고, 걸러지기도 한다. 적은 양이라면 무시되고, 찌꺼기라면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한순간부터 [담배]에 대한 지독스런 경계를 갖게 되었다. 자연스러웠던 오랜 습관성 행위가 어느 한 기점으로부터 갑자기 마약 같은 적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백해무익하다는 의학적 연구로 그 필요성이 완전히 무시된 결과이며, 더불어 그를 받아들인 정부의 적극적인 금연홍보로 인한 국민의 세뇌 결과라 여겨진다.
그 중 정부의 도가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금연홍보의 저의는 세금각출의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육체적 건강상의 이유로 흡연자의 거취가 갑자기 비참해져 버린 것만큼은 사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옳은 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육체적으로 보자면, 또는 꽁초문제, 대기오염문제, 실내공기문제 등의 부차적인 사실들만으로 보자면, 실제로 어떤 필요성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오직 흡연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할 뿐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당장에 오직 자연의 일부인 원시시대의 동물적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 공기, 음식물 등 우리 시대의 환경의 거의 모든 것이 날이 갈수록 각 종 유해 물질에 오염되는 상태에서, 방법은 오직 그 방법 밖에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야말로 육체만을 앞세우고 살 수는 없고, 일신의 유익만을 챙기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존재란 어쩔 수 없이 육체와 정신의 공존을 포함시키고 있으며, 사회의 존재 역시 어쩔 수 없이 유익과 유해의 공존을 포함시키고 있다. 어느 한 쪽의 편향은 필경 보다 더 큰 파괴를 낳는다.
물론 그 어느 측면을 보아도 인간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명백하다면, 무시하고 버림이 마땅하다.
그러나 흡연에서 명백히 정해진 바는 없다. 비록 육체적인 측면에서는 그 유해성이 비중 높게 드러났으나, 그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유기적 조화 속에 놓여 있으며, 그에 따라 담배의 성분 또한 타 매체와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체질만 하여도 그렇다. 열 명의 사람에게 같은 양의 술을 음주시키면 그 효과는 열 사람 모두 다르게 마련이다. 곧 저마다 다르게 지닌 체질 때문이다.
또한 구로공단에서 섭취한 담배의 영향과 지리산 천황봉에서 피운 담배의 영향이 같은지도 의문이고, 강바람 부는 옥외에서 피운 담배와 공기가 막힌 PC방 같은 실내에서 피운 담배의 영향도 의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피운 담배의 영향과 녹차를 마시면서 피운 담배의 영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담배와 육체적 상관관계도 명백한 것이 아닌데다가, 우리에게는 특히 육체와 버금가는 정신적 매체가 있다.
정신적 매체! 이에 대해 글을 쓰자면 한없이 길어져 이런 게시판에서는 감당키 어렵다. 그래서 권하자면, 중국의 석학 의 [생활의 발견] 중에서 ‘담배와 향에 관하여’라는 대목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담배와 정신적 상관관계를 매우 적절히 드러낸 글이다.

금연에 관한 한 대목이 유쾌하여, 한 대목만 옮겨 보겠다.
"상상력을 수반하지 않은 사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상상력이 무미건조한 금연의 찢어진 날개를 타고 어떤 힘으로 하늘 높이 솟아오를 수 있단 말인가?"


흡연을 하는 필자는 흡연자임에도 불구하고 흡연옹호론자는 아니다. 당연히 금연옹호론자도 아니다. 흡연이나 금연이나 이리저리 따져보면 둘 다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으며, 그 명분에 준하여 적절한 형평성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담배의 전적인 부정론은 그 형평성에 있어서 매우 편향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흡연과 육체적 관계만을 중시한 나머지 흡연과 정신적인 관계를 무시하는 것도 그렇고, 비흡연자를 위한 정책에는 관대하면서 흡연자를 위한 정책은 거의 무시하는 것도 그렇다. 그야말로 흡연에 대한 이해와 정책이 죄다 형평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세금 확보! 반드시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러면서도 정부의 담배에 준한 현실의 태도는, 그 의심의 여지를 충분히 만들고 있다. 개신교나 술과 같은 중독성 깊은 다른 위해요소는 죄다 젖혀두고 오로지 흡연에 관하여서만은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기름값과 담배값이 가장 수월한 세수라는 필자의 인식이 잘못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정부의 태도가 어쨌건, 과도한 흡연과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흡연 태도는 삼가자. 그러나 술잔은 챙겨두면서 재떨이 하나 챙겨두지 않은 집안은 어쩐지 냉랭하다. 즐겁게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이 죄다 사라져 버린 채, 얼른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육체는 아무리 건강하여도 일정한 시간 속에 소멸되고 말지만, 정신은 찰나의 여유만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힘을 모을 수가 있다. 따라서 필자라면 물 한잔 믿고 마실 수 없는 긴장속의 육체적 건강에 대한 애착보다도, 보다 여유로운 정신적 건강에 대한 자유를 위해 좀 더 신경을 쓰고 싶은 생각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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