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하진이 대학을 졸업하고 연락하는 친구는 효선뿐이었다. 효선은 하진에 비해 아니, 다른사람들에 비해 말이 많은 편이었다. 하진이 말이 적은 부분을 효선이 채우는듯 둘은 안어울리게 어우러졌다.
그 해에 월드컵이 끝나버렸는데도 열기는 식지 않고 떠들썩하던 여름. 효선이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교 졸업후 과에서 연락이 오면 받지도 않았고 참석하라는것도 모두 다 빠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효선이 바다를 가자는 제의를 한다. 같은 과 사람들 모두가 가는 것은 아니고 잘 어울리던 친했던 사람들끼리만. 효선은 집에서 하는일도 없으니 잠깐 바닷바람이나 쐬자는 것이다. 하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효선이 너무 조르는 탓에 알겠다고 해버렸다.
8월 3일 서울역에서 모두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다들 반가움이 얼굴에 훤히 나타났다. 갑자기 효선이 손을 흔들며 외친다.
"엇, 혁준이형! 빨리와~ 형이 꼴찌야."
효선이 반가운티를 한껏 내며 불러제낀 혁준이라는 이는 2살 많은 복학생이었다. 같은해에 졸업을 한 선배이다. 모두들 모이고 기차에 올라탔다. 다들 바다로 가는 길은 기차여행을 즐기며 가야한다면서 만장일치로 기차표를 끊었다. 한창 휴가 시즌이라 그런지 기차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 아빠, 아이들. 다정스러워 보이는 가족들도 많고 연인들이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효선은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에 하진의 귀에 연인들을 흉보는 말을 속닥거렸다. 그럴때마다 하진은 그러는 효선이 귀여운지 귀찮아 하지 않았다. 하진의 일행은 모두 8명. 선배 3명과 동갑내기 5명. 선배중에는 여자가 한명이었고, 동기중에는 남자가 두명이었다. 자리를 넷넷으로 옆자리에 앉아 의자를 마주보게해 8명이서 함께 즐기고 놀았다. 오후에 출발해서 그런지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하진은 여러게임에도 다 참석하고 수다도 떨고 해서 그런지 피곤해진 눈을 감았다. 일행은 무서운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두들 꺽어진 40의 중후반들이었지만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처럼 윷한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하면서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하진이 잠을 자고 있는데 일행중 한명이 무서운 얘기를 듣다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자고 있던 하진은 깜짝놀라며 잠을 깼다.
"하진아, 놀랬구나. 많이 놀랬니?"
하진의 맞은편 옆자리에 있던 혁준은 지나쳐보이게 하진을 걱정해주었다. 하진은 고개만 끄덕여 보이며 혁준을 쳐다 보았다. 기차가 도착할때쯤 다들 자신의 짐을 챙겼다. 여름이라 챙긴 옷들이 얇고 작지만 4박 5일의 일정이라 짐들이 만만치 않은 무게들이었다. 무게뿐아니라 짐가방의 수도 꽤 됫다. 좌석위에 있는 짐칸에서 하진이 가방을 내리는데 혁준이 내리는것을 도와주며 씽긋 웃어보인다. 하진은 같이 웃으며 고맙다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번 여행 이후 또 언제 이런식의 여행을 할수있을지 모르기때문에 하진일행은 민박을 하지 않고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결하자 하였다. 놀러간곳은 연곡해수욕장. 해수욕장 입구쪽으로 숲이 넓게 펼쳐져 있어 텐트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밤이 다되어서야 도착했기 때문에 그들은 텐트를 치고 푹 잔후 내일부터 실컷 놀기로 했다.
하진에겐 4일동안의 여행이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다. 캠프에 온것처럼 숙식이고 빨래고 뭐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여느때보다 뜻깊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여행이 되는 일이 있었다. 그담음 날이면 출발하는 날이었다. 다음날 출발해야 하기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이렇게 볼수있는 날은 마지막일것이다 생각하고 하루종일 지치도록 바다에서 물장난을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다른날과는 다르게 밤새 놀아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모래사장으로가 마른나뭇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지폈다. 이런저런이야기가 오가면서 여행의 마지막날 밤을 다지고 있었다. 혁준은 잠시 텐트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혁준이 자리를 비운지 얼마되지 않아 하진의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가 떴다.
-다른사람들한테는 핑계대고 모르고 입구로 잠시만 와줄래
혁준이었다. 하진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쪽으로 향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궁금하기도하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해수욕장 입구로 가니 혁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혁준은 무언가 할말이 있는데 망설이고 있는듯 해보였고 입만 벙긋벙긋 거리지 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빠 왜요? 왜 따로 부르셨어요?"
"저, 하진아 그러니까,,,"
계속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밖으로 꺼내들었다. 그의 손에는 반짝이는 목걸이가 쥐어져 있었다. 여름이어도 밤인지라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는데도 혁준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하진아, 사실 복학하고 학교를 다시 다닐때부터 널 좋아했어. 졸업하기전에 꼭 고백하고 싶었지만 못했었다.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이번기회에 고백해보려는거야."
사실 이번여행에 혁준은 참석하지 못했을뻔 했지만 하진도 온다는 얘기를 듣고 스케쥴을 비워내서 참석했다. 평소 효선은 혁준에 대해서는 칭찬만을 해왔다. 하진도 혁준에게 안 좋은 감정은 없기에 고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2002년 여름은 하진에게 있어서는 월드컵이 아니라 그 고백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남겨져 있었다.
혁준에게서 목걸이를 받아 든 그해 여름이었다. 하진은 그해 여름이, 그 일이, 그 선택이 후회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