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문-시공을 초월한 것들-
그러한 것들(세상을 살아가는 당위성들)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허구를 쫓으며 허구를 숭상하며 허구를 신념하고 허구를 탐닉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시간과 공간 현생을 거쳐 내세로 뻗어나가기 위해선 이점을 자각해야 하지 아니할까.
인간은 백사장의 모래알과 같고 현세는 수면에 비추어진 달그림자 같은 것 위대한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우리를 현혹한다. 점점 알수없는 그림자 속으로 우리를 빨려 들어가게 한다. 태양 같은 비로자나가 현생을 거쳐 우리에게 물위에 비추어진 달그림자로 오롯이 나타나듯 그렇게..... 인간은 그렇듯 본질이라는 알맹이에 현세라는 허구의 껍데기를 두 른체 이 세상에 나타난 존재라는 것을 .......
-위대한 가상현실의 의탁- 철학에서의 언어의 당위성 합목적성
허구 같은 세상 속 에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철학의 당위성을 세우고 철학이 가진 궁극적인 목표가 허구의 언어를 보다 본질 (신 혹은 우주??)에 가깝게 접근시키기 위한,,, 언어구조의 논리적인 분석에 그 당위성과 합목적성을 지니게 된다고 할 때 우린 언어가 가지는 허구성을 세삼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허구의 언어 또한 그 특성은 본질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본질을 투영한 언어위에 또 다른 인간에 의한 인위의 언어가 정립 된다는 것 은 다시금 허구를 낮게 되며 도그마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가 위대한 가상현실에 의탁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위대한 가상현실은 이미 내세의 구현이다. 단지 우리의 입맛에 들지 아니 할뿐이지.
인위적 언어의 새로운 구성을 단념하고 우리를 둘러싼 위대한 가상현실에 입각하여 본질을 파악하고 일상의 위대한 본질을 파악함이 우리가 선결해야 할 과제이다.
[PS]
법과 과학이 인위적 언어의 새로운 구성이라 한다면 현실적 문제의 해결방안은 일상 언어에 입각한 본질 찾기의 과정이다 볼 수 있겠다. 우리의 세상은 그렇듯 모순되고 불합리 같아도 제각각 순리와 조화의 법칙을 벗어나지 아니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불안과 인간의 굴래
(위대한 가상현실 속을 해쳐온 릴케[Rainer Maria Rilke]와 키에르 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키에르 케고르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둘 다 동시대의 세기말적 불안을 동시에 떠안은 사람들이었다. 릴케의 불안조차도 사실 (시인의 시적환각이 만들어낸 불안)시인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이 자신을 성숙의 길로 이끄는 길이라 본다면 (한 개인의 인생사에 아픔과 고통이 클수록 성숙 할수 있다 우리가 본다면)그렇듯 인간은 익어가는 탁주이고 겨울 내 혹한을 견디고 싹을 틔우는 나무이고 가을에 익어가는 벼이삭과 같은 심산유곡의 열매와도 같은 존재이다.
키에르 케고르가 불안과 근심의 궁극적 대상은 허구이자無라고 규정했지만 실상 이 말은 다시 생각하면 이렇다. 허구 같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이 이로 인하여 느끼는 모든 불안과 근심은 실상 허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인간은 끊임없이 수레바퀴를 뫼비우스의 고리를 달려 가야하는 굴려하는 숙명의 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고통과 번뇌와 허구 같은 우리의 세상이 주는 허구의 감각은 그것을 깨닫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성숙된 자아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신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억겁의 세월을 현세와 내세를 거쳐 이 굴레를 굴릴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자아 신과 가까운 존재가 된다 생각한다면 이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허구의 표상을 만들고 그를 숭배하는 것이다. 보다 완벽한 존재로 나아가기위해 ......
만약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 상태로 단순히 허구虛構의 표상表象에 아무런 깨달음이나 본질의 존재에 대한 파악 없이 성급히 자신을 의탁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맹목임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세상은 그토록 경계되어져야만 하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위대한 가상현실의 장場인것이다.
표상[表象, representation]
마음 또는 의식(意識)에 현전(現前)하는 것을 뜻하는 철학 ·심리학용어.관념 일반을 나타내는 idea(영), idée(프)의 역어(譯語)로 사용되는 수도 있으나 대개는 representation(영), représentation(프), Vorstellung(독)의 역어로 사용된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어원(語源)인 라틴어 repraesentatio는 ‘다시(re) 현전케 하는 것(praesentatio)’을 의미하고, 독일어의 Vorstellung은 ‘앞에(vor) 세우는 것(stellung)’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표상이란 말은 적어도 근세 이후의 용법에서는 인간의식의 대상정립작용(對象定立作用) ·반성작용과 관계가 있는 대상의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일체를 인간의식 안에 가두어 생각하려고 하는 근세 R.데카르트 이후의 의식내재주의적(意識內在主義的) ·주체주의적(主體主義的) 철학은 I.칸트를 이어받아 세계의 일체를 인간의식의 표상으로 해소시키는 A.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철학에서 하나의 정점(頂點)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근세의 인간중심적 주체주의철학 또는 형이상학은 바로 근세 서유럽의 합리주의적 기술문명을 낳게 한 근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체의 사물을 인간의식에의 반사(反射)나 반성(反省)의 양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기본적 약점과 문제성에 대한 반성이 현대철학의 최대 문제의 하나로서 다각도로 다루어진다.
두산백과사전 발췌[拔萃]
-추신-
모든 광대무변 한 걱정과 불안은 우리를 긍정적인 역사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밑거름이 되었다.
2007.09 18. 16:44 WRITTEN BY K.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