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진님이 올리신 전자팔찌 찬성글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명분이라는 한경진님의 의견을 따른다 하더라도 전자팔찌 사용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전자팔찌의 사용을 반대하는 입장이 유효합니다.
법을 일종의 보복수단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경진님도 그런 전제를 미리 깔고 계십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범죄를 양산하는 사회의 틀 자체는 건드리지 못하고 피상적 대처만 하게 될 소지가 큽니다.
우연적으로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된 사람들은 범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사회가 일정 양의 범죄를 만들어낼 불합리를 지니고 있다면, 그런 불합리의 영향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모순의 구조적 인식이나 개선책 없이 그들에게만 범죄를 전가시키는 것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런 사회의 모순을 지속시키는 것 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불합리한 사회를 유지시키고, 그런 사회의 모순을 재생산하는 우리들 역시 공범일 수밖에 없지만, 그런 제물의 희생을 통해 실질적으로 공범인 우리들의 책임을 은폐합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누구도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자팔찌가 사건 자체를 막아주지는 못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보다 보호감호제도가 사건의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또 필요하다면 형량을 늘리는 것도 당연히 추진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전자팔찌는 출소한 전과자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거대한 속박이 됩니다. 한경진님은 재범의 가능성이라는 근거로 말씀하시는데 다른 많은 범죄들 역시 재범의 가능성이 낮지는 않습니다.
또 이에 한경진님은 성범죄의 낮은 신고율과 정신적 피해를 제기하시는데, 이것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강하게 요구되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같은 문제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순결 이데올로기의 극복은 성범죄 신고율과 성범죄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에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이며, 일상의 문화에서도 여성에게 더 자율적인 윤리관을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성범죄에 대해 전자팔찌를 채우면 재범률 높은 다른 범죄들 역시 그런 비슷한 제재를 하게 될 겁니다. 가중처벌을 너머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는 법집행은 통제사회와 공포정치의 전조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범죄자를 잡기위해 수 십 명의 피의자를 괴롭히고, 한 사건을 막기위해 국민들의 생활이 억압 된다면 그것은 작은 범죄를 막기위해 공공연한 큰 범죄를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한 사건에 집중하는 것보다, 마초적이고 폭력적 사고방식을 생산하는 사회 양극화, 무한 경쟁 그리고 그런 것들로 부터 비롯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심과 소외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 순결 이데올로기와 보수적 성의식과 같은 거대 산업과 위압적 타율성에 의해 왜곡된 성의식, 타인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써 만나게 이끄는 사회 시스템 등에 대한 장기적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 단기적으로도 전자팔찌가 아니더라도 보호감호제도나 형량의 증가 등으로 성범죄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굳이 소우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고도 성범죄에 대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누구든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여 악플을 달 수도 있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정책의 결정에 있어 감정에 휩싸이는 실수는 안됩니다.
또 어떤 분은 범죄를 유전자의 우열과 연관지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이런 사고방식에는 우생학의 영향과 기업(자본)이나 정부(권력)와 긴밀히 연결된 일부 실험실 과학자들의 선정성이 크리라 봅니다. 비교적 최근에 가장 유명하다는 두 명의 생물학자, 즉 스티브 제이 굴드나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이들부터 다수의 학자들은 오히려 환경에 손을 들어주더군요. 그리고 이것은 생물학을 떠나 통계적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선천적 제약보다 후천적 발현이 훨씬 중요합니다. 부처도 늑대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