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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2)

김충현 |2007.09.28 15:06
조회 18 |추천 0

2.

 

 또 다시 날이 밝았다. 그렇다. 또 새로운 하루가 열린 것이다. 태양은 어제 뜨던 그 태양이고 내 방도 변한 것이 없다. 그렇다. 하나도 변한 것은 없다. 나 자신만 제외하고는 그냥 그 상황 그 자리일 뿐이다.

 “아들! 일어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빨리 일어나서 씻고 밥 먹어라.”

 “일어났어요.”

 어머니는 항상 이름 대신 ‘아들’이라고 부르신다. 마치 한이 맺힌 사람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먼저 씻었다. 식탁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께서 앉아계셨고 어머니는 분주하게 반찬과 찌개를 나르고 계셨다. 전형적인 한국형 인간인 아버지는 자리보전하고 계셨다. 언젠가 저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즘 세상에 저러면 나중에 밥 얻어먹기 힘들다’고 이것저것 시키시는 편이었고 난 별 군소리 없이 시키는 것을 해내고 있었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먹자.”

 짧은 한 마디에 우리의 식사는 시작되었다. 수저 움직이는 소리만 가끔 ‘깔짝깔짝’소리를 낼 뿐 고요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시끌한 식사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는 내 생활에 대해 묻는 일이 없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 서로 믿음이 강해서 그런 것인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식사시간의 정숙함은 생활이 되어있었다. 가끔 이 부담스러운 적막을 깨는 소리는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오늘도 술 드시고 오셔?”

 역시 적막을 깨버린 사람은 어머니셨다.

 “오늘은 사진 찍으러 서울 가요.”

 포트폴리오 제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벌써 제출일이라니……. 한 번을 미리 끝내본 기억이 없는 듯 했다. 그나마 이번에는 미리 건물주인을 섭외하고 허락까지 받아온 상태라 안심이었다.

 얼마 전 제출한 일출 사진이 깐깐한 교수의 눈에 들은 이후 태양과 관련된 사진 몇 장을 더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단 일출과 일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셔터를 눌러대었다. 동해부터 서해의 왜목마을까지 가지 않은 곳이 없이 바다를 풍경으로 하는 태양사진을 찍어댔다. 식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사람이 없었다. 나도 사람이고 이 사진을 감상할 사람도 사람인데 사람이 없다니. 그런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이 떠올랐다. 움직이는 지하철, 생동감 넘친다. 해가 뜨는 시간을 맞추어 운행하는 지하철을 찾기 시작했다.

 1호선의 지상역들, 당산역, 동작역등 각각 노선의 지상역들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사람을 담자, 사람을…….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기위해 노력했고 몇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해보였다. 마지막으로 생각이 미친 것이 바로 건물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빌딩숲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그리고 그 아래를 바쁜 듯 활보하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런 건물이 필요했다. 무작정 종로로 나갔다. 종로부터 을지로를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 종로3가에서 적당한 건물을 발견했다. 건물주 수배는 의외로 간단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화재회사에 다니는 녀석에게 부탁했더니 바로 연락을 주었고 건물주도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미리 건물을 관리하는 분에게 술도 한 잔 사다드렸고 선결작업은 깔끔했다. 오늘 밤에 먹을 야식과 MP-3 Player, 그리고 카메라, 삼각대, 여분의 베터리를 챙겨 넣었다. 어두워질 때 까지 경복궁과 쌈지길, 인사동 같은 곳에서 사진이나 찍을 생각이었다.

 지하철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지하철의 사진은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사진이 나타난다. 이런 사진 좋았다. 자연스럽게 흔들린 사진들. 마치 나와 같았다. 연약한 그런 시각. 쉽게 흔들리는 사람. 쉽게 흔들리는 사진.

 갑자기 뷰파인더가 어두워졌다. 놀라서 눈을 떼어 앞을 보니 왠 여고생 하나가 앞에 서있었다.

 “뭐에요? 왜 날 찍어요?”

 양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에 깔끔한 블라우스와 잘 다려진 치마를 입은 이 아이는 당돌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응?”

 “지금 나 찍었잖아요? 뭐냐구요.”

 살짝 당황한 나는 뭐라 설명하기도 전에 그 아이는 카메라를 채어 갔다. 멀뚱멀뚱 그 아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넘겨보던 그 아이는 베시시 웃으며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카메라를 받아들고서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파악하기에 내 순발력은 느렸다.

 “미안해요. 헤헤, 제가 요즘 시달리는 일이 있어서요.”

 너무 맑게 웃는 그 아이의 얼굴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미안하니까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학교에 있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내 행선지를 밝히자,

 “잘 됐네, 나도 오랜만에 종로가서 구경이나 하면 되겠네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별 대꾸를 하지 않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난 가방 속에서 MP-3 Player를 꺼내어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레이 찰스의 ‘Sorry seems to be hardest’가 흘러나왔다.

 레이 찰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앞을 보지 못했던 그의 삶을 동경했다. 신은 그에게 시력을 앗아간 대신 목소리를 주어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였다. 비록 말년이 좋지는 않았지만, 삶을 살아간다면 레이처럼 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 한 쪽 이어폰을 빼서 자기 귀로 가져갔다.

 “누구에요? 목소리가 굉장히 좋네?”

 난 짧게 대답했다.

 “레이 찰스”

 아이는 모르겠다는듯 눈만 깜빡였다. 난 레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부 출신의 흑인이고 그의 인생의 굴곡 등에 대해서. 그처럼 살고싶은 내 생각은 말 하진 않았다.

 “근데, 아저씨는 사진이 전공이라면서 이런 것도 알아요? 신기하다.”

 그 아이는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보았다. 그리곤 바로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 플레이어에는 레이 찰스의 노래로 가득해 있었다. 촬영을 할 때 버릇이 바로 레이의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이내 내 플레이어에 한 사람의 노래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저씨 이 사람 진짜 좋아하나보네. 어쩜, 다른 사람 노래는 안들어요? 다른 사람 것도 들어야 그 사람들이 먹고 살죠.”

 굳이 대꾸해줄 필요가 없을듯 싶어 조용히 내 귀를 떠났던 이어폰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노래는 어느새 ‘What's I say'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리듬에 맞추어 고개와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리듬에 맞추어 전동차는 빠르게 레일 위를 미끄러져 달려나가고 있었다. 마치 레이의 외침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덜컹덜컹 코러스를 넣어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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