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의 소식에 오열하는 리진에게 서씨는 ‘너와의 인연이 죄다’라고 얘기한다..
가슴 찡하고 눈시울을 적셔 가며 읽는 내 모습에 반해 글 자체는 너무나 담담하게 채워져 간다..
오랜만에 읽는 신경숙 님의 소설이라서 좋았다..
참 세련된 작가란 느낌에서 역사 소설은 잘 매치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읽어 내려가면서 그녀다운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들은 조선 말 프랑스인과 사랑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
100년도 더 전에 개방도 되지 않은 나라 조선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지도 못하던 여자가 서양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낭만적이라고 말하기 전에 '얼마나 힘들었을까'란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
'아! 리진이 이렇게 살았겠구나' 공감하게 한다..
1권에서는 아기 나인으로 들어간 리진이 명성황후를 만나고 궁중 무희가 되어 조선의 첫 프랑스 공사인 콜랭을 만나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잠시도 책을 놓고 싶지 않을 만큼 뒷얘기가 궁금하였다..
콜랭의 순수하면서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사랑이 부러우면서도 어릴 때부터 오누이처럼 자란 강연의 믿음직하고 아픈 사랑에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왜일까?
조선말이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상이 리진의 순탄치 않은 인생과 사랑 같다..
조선에서 처음 프랑스어를 구사한 여인..
하지만 조선은 왕의 여자인 궁녀를 쉽게 다른 남자에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처럼 딸처럼 귀히 여기는 명성황후이기에 리진은 콜랭과 함께 프랑스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리진을 향한 왕의 시선에서 그녀를 놓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리진은 조선 최초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신여성으로 파리로 가게 된다..
2권은 리진의 파리에서의 생활이 펼쳐진다..
왈츠가 유행하던 파리의 사교계에서 호흡이 느린 춘앵무를 추는 동양의 가녀린 여인은 어디에서나 시선을 끄는 존재가 된다..
그녀가 놓는 동양의 신비로운 자수는 귀부인들에게 소장하고 싶은 물품이 되고..
서툰 발음으로 읽어 내려가는 글은 노란 머리 파란 눈의 그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또한 2권의 재미는 파리 여기저기를 리진의 시선으로 묘사해 놓아서 여행을 하는 듯한 기쁨을 주는 것이며, 모파상과 에펠 등을 등장시켜서 리진과 관계 지어 놓는 작가의 싱싱한 상상력을 엿보는 것이다..
하지만 향수병에 걸린 리진은 몽유병에 시달리다 콜랭과 함께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리진에게 조선은 냉혹하기만 하다..
콜랭은 외교관의 역할을 핑계 삼아 그 긴 사랑의 끈은 놓아 버린다..
그리고 조선을 떠난다.. 기다리기만 하던 강연은 아픈 작은 새를 받아준다..
리진에 대한 강연의 사랑의 댓가는 가혹한 벌을 받고 떠나는 것이다..
홀로 남은 리진은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을 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자살을 한다..
그렇게 한 많은 한 여인의 일생이 끝나 버린다.. 마치 조선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듯..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여서 눈물을 지으며 읽었으면서도 책장을 덮고 난 후에 느껴지는 이 시원한 마음은 무얼까?
그 시절에 리진과 같은 운명의 여인이 얼마나 더 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절절해진다..
하여튼 로맨스와 역사를 적절히 조합하여 감동과 재미를 엮어낸 작가의 상상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