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간으로 지난 3일과 4일 새벽에 걸쳐 펼쳐진 유럽축구 별들의 전쟁,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2차전 경기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평균적으로 홈팀의 승률은 64%로 집계되어 있는데, 2차전 16경기 중 홈팀이 승리를 거둔 것은 4경기에 불과하다. 25%에 불과한 승률인 것. 원정팀들의 높은 승률 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승패가 갈린 14경기 가운데 팬들에게 익숙치 않은 이름의 팀들이 전통적인 강자들을 차례로 무너트렸다는 것이다.
광적인 홈 경기 분위기로 유명한 안 필드의 리버풀, 원정팀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터키의 베식타슈, 스페인의 발렌시아의 철옹성이 무너졌다.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의 터줏대감 리옹, 브레멘, 벤피카 등은 승리에 변방으로 취급되오던 팀들에게 안방에서 패배를 허용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변의 연속을 이끈 최고의 별들은 누구일까? 각 조별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8명의 스타들을 추려봤다.
[A조] 마티유 발부에나, MF (리버풀 0-1 마르세유)
사미르 나스리의 결장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잡은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발부에나는 이전까지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167cm의 단신에 왜소한 체구인 그는 2006년에 마르세유에 입단 15경기에 나서 1골을 넣은 기록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마르세유에 나스리가 나서지 않은 것에 집중했지만 골은 그의 빈자리를 차고 들어간 발부에나에게서 터졌다.
작지만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던 발부에나는 77분 젠덴과 2:1 패스를 주고 받으며 페널티 박스 후방에서 슈팅 공간을 확보했고, 과감하게 연결한 오른발 슛은 레이나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골문 우측 상단 구석으로 날아들며 크로스바를 때리고 골망으로 꽂히는 예술적인 궤적을 그렸다.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23살의 발부에나는 프랑스와 마르세유의 또다른 희망으로 떠올랐다.
[B조] 디디에 드로그바, FW (발렌시아 1-2 첼시)
주제 무리뉴가 떠난 이후 2부리그 팀과의 리그컵 경기 승리 외에 중심이 잡히지 않는 경기력을 보이던 첼시가 발렌시아 원정에서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드록신' 드로그바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동안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드로그바는 마침내 정상 컨디션을 되찾고 흔들리던 팀에 중심추가 됐다. 첼시는 경기 시작 9분 만에 선제골을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지만 드로그바는 분위기를 수습하며 반격을 주도했다.
예의 활발하고 날카로운 움직임과 힘 겨루기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발렌시아 수비진에 균열을 일으키던 드로그바는 예전부터 단짝으로 유명한 플로랑 말루다와 함께 조 콜의 동점골을 이끌어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상대 수비의 거친 견제와 부상 속에서도 강한 집념으로 팀을 규합시킨 드로그바는 71분 폭발적인 질주에 이어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침착한 마무리 슛으로 직접 역전골을 터트리며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C조] 다르코 코바세비치, FW (브레멘 1-3 올림피아코스)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거쳐 세르비아로 또한번의 독립이 이어진 혼란스러운 국적의 공격수 코바세비치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공격수다. 유럽 빅리그를 전전한 끝에 소리소문없이 그리스에 안착한 그는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져있었다.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그는 벤치 멤버로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교체 투입된 순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로 집중됐다.
전반전에 1골을 내주며 끌려가던 올림피아코스는 코바세비치가 투입됨과 동시에 73분 문전 좌측에서 연결한 벼락같은 하프 발리슛이 골키퍼를 맞고 흐른 것을 스톨티디스가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터트렸다. 82분에 파트사촐루의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승부를 뒤집은 올림피아코스는 87분에 역전극의 시발점이 된 코바세비치가 라울 브라보의 슛을 골키퍼가 막아낸 것을 끈질기게 따라붙은 뒤 밀어넣으며 쐐기골을 터트려 기적적인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코바세비치는 문전에서의 파괴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며, 3번째 골에서 골키퍼보다 공에서 멀리 있었음에도 먼저 볼을 밀어넣으며 보여준 집념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D조] 스티븐 맥마누스, DF (셀틱 2-1 AC밀란)
지난 시즌 16강전에서 밀란을 만나 끈질긴 모습을 보였던 셀틱은 올 시즌 조별리그에서의 재회에서 마침내 설욕에 성공했다. 열광적인 홈 팬들의 지지와 거센 빗줄기 속에 펼쳐진 경기는 팀의 주장 맥마누스가 뜻밖의 선제골을 터트리며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셀틱의 주장인 센터백 맥마누스는 팀이 키워낸 프랜차이즈 스타로 25세의 나이임에도 팀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지난 달 리투아니아와의 유로2008 예선전에서도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린 그는 '디펜딩 챔피언' 밀란과의 경기에서 영리한 움직임으로 기록한 선제골로 기적적인 승리의 시발점이 됐다.
맥마누스는 62분 코너킥 상황에서 볼의 궤적을 예측하고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 볼에 향하고 있는 와중에 밀란 수비수들의 뒤로 돌아들어가 정확히 낙하지점을 포착, 가볍게 볼을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후 카카의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내주긴 했으나 맥도날드가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터트리며 셀틱이 디펜딩 챔피언을 무너트렸다. 밀란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직접 선제골을 터트림과 동시에 선수들의 정신을 다잡은 주장 맥마누스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조] 다니얼 쿠잔, FW (리옹 0-3 레인저스)
프랑스 리그의 절대 강자 리옹을 원정에서 3-0 대파한 레인저스의 중심에는 축구계에선 낯선 나라 가봉의 국가대표 공격수 쿠잔의 활약이 있었다. 프랑스의 르망, 랑스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쿠잔은 올 시즌 레인저스에 입단한 30세의 베테랑으로 186cm의 장신에 탄탄한 체구, 흑인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출신 다운 탄력을 지닌 선수. 23분 매컬로크의 선제골로 앞서가던 레인저스는 이후 주니뉴를 중심으로 한 리옹의 파상공세를 허용했으나 후반 시작과 함께 48분 쿠잔이 터트린 쐐기골로 인해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쿠잔은 페널티 박스 우측에서 리옹 수비 두 명과의 힘겨루기에서 우위를 점했고, 간결한 동작에 깔끔한 마무리슛으로 스트라이커로서 교과서 적인 득점에 성공했다. 곧바로 53분에는 리옹이 총공세에 나서자 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적극 가담한 것에 이어 전방으로 빠져들어가던 비즐리를 향해 롱 패스를 배달하며 어시스트까지 기록해 승리에 리옹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무너트리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F조] 웨인 루니, FW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 AS로마)
6주 간의 부상으로 시즌 초반에 공백기를 가졌던 루니는 복귀 이후 가장 날카로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리고 로마라는 난적과의 홈 경기에서 팽팽하던 0-0의 균형을 깨트리는 결정적인 득점으로 시즌 첫 골을 신고할 수 있었다. 루니 본인이 말하듯 "무승부가 정당한 결과일만큼 팽팽한 승부"였고, "운이 따랐다"는 말로 겸손을 표할 만큼 로마 역시 좋은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그 운이 바로 해결사적 기질을 갖춘 루니의 천재성이었다.
루니는 폭넓은 움직임으로 로마 수비를 곤혹스럽게 했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 헌신적인 수비 가담으로 그의 또다른 장점인 무한한 체력을 경기에 녹여냈다. 대체로 소강상태이던 경기에서 루니의 움직임은 맨유 공격의 유일한 실마리였다. 몇차례 슈팅 시도가 골문을 외면했지만 결국 캐릭과 나니로 이어진 패스를 감각적인 논스톱 슛으로 연결, 이것이 골키퍼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골문 구석으로 흘러들어 골대를 때리며 골문 안으로 이어졌다. 루니의 이 완벽한 골로 맨유는 또한번 아슬아슬한 1-0 스코어의 연승 행진을 이어가게 됐다.
[G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FW (인터밀란 2-0 PSV 에인트호벤)
페네르바체 원정으로 치렀던 1차전에서 패배를 기록한 인터밀란은 PSV와의 홈 경기를 통해 첫 승을 신고했지만 수비수 키부와 공격수 수아소가 연달아 퇴장당하는 악재가 함께했다. 경기 기록에서도 점유율과 슈팅 수에서 원정팀 PSV가 우위를 점했다. 이런 가운데 2차례의 유효 슈팅을 모두 골로 연결시킨 스웨덴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개인 능력으로 팀에 승점 3점을 안겼다. 경기 시작 15분 만에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즐라탄은 곧바로 31분에 루이스 피구의 크로스를 마술 같인 헤딩 슛으로 골문 안으로 연결하며 최근 폭발적인 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세리에A 2연패에 빛나는 인터밀란은 올 시즌에도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경기력은 이전 시즌에 못미친다는게 중론이다. 뒤떨어진 경기력에도 인터밀란이 승점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순준히 즐라탄의 득점력 덕분이다. 즐라탄은 6라운드까지 진행된 세리에A에서 7골 2도움을 몰아쳤으며, 이탈리아 각종 언론에서 매기는 평균 평점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수위를 기록하며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장신임에도 기술적인 완숙된 즐라탄은 호나우두와 비에리 이후 인터밀란이 자랑하는 최고의 공격병기로 자리매김했다.
[H조] 콜로 투레, DF (슈테우아 0-1 아스널)
골을 기록한 공격수들이 최고 활약 선수 자리를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 아스널의 콜로 투레는 팀의 공식 경기 5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끌며 수비수로서 자리를 차지했다. 티에리 앙리가 떠난 이후 아스널에서 왕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는 유일한 남자 '킹 콜로'는 주장 윌리암 갈라스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가운데 어린 클리시와 센데로스, 신입생 사냐와 함께 구성된 포백 라인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쉽지 않았던 루마니아 원정에서 여전히 공격 성향이 짙은 아스널의 최후방 보루로 버티고 있던 투레는 언제나 수비진의 요충지를 선점하며 밸런스를 유지했다.
슈테우아의 역공을 제어하며 숨은 활약을 펼치던 투레가 돋보인 순간은 67분이었다. K리그에서 루마니아로 돌아간 네아가가 알무니아 골키퍼가 자리를 비우고 나온 것을 포착한 뒤 연결한 시원스런 중거리슛을 빠른 커버 플레이로 문전으로 달려들어가 처리해낸 것. 만약 이 골로 선제골을 내줬다면 정반대의 경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아스널은 투레가 득점과 다름 없는 위기 상황을 넘긴지 9분 만에 결승골을 넣고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