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만약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은 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하여 주는 것이다"
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난 뒤에도 아마 그는 그가 바라던 행복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깊은 허무감과 상실감 속에서 방향을 잃은채 몇년을 헤매일 거고
가닥을 잡았다 싶을때는 이미 너무 많이 나아간 후일 테니까.
여기 출중한 재능과 아름다움으로 신의 사랑과 악마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비운의 천재가 있다.
신의 사랑으로 그는 예술적 재능과 매력을 부여받았고
신의 사랑을 받는자에게는 따르는 악마의 질투로
그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자신의 몸을 맡겨 버렸다.
이미 젊은 시절 남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얻어버린 남자
바라는 것에 대한 좌절이 때로는 신의 견고하고 신중한 선물일 수도 있다는 것은 몇일의 성취감 후의 공허함보다는 그걸 구하기 위해 쉼없이 달려온 순간이 더 아름다웠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알테지..
그런 의미에서
로체스터 백작은 어쩌면 너무 가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리버틴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신을 떠나 악마의 화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을 조롱하는 어릿광대로서의 삶을 택한
로체스터 백작이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재능있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난봉꾼이라 욕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다.
왕마저도 사로잡은 매력
죠니뎁이 그 역할을 맡아서인지
나조차도..
저 사람은 옳지는 않지만 아름답다.
누가 미워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인생자체만으로도 많은 감흥을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로체스터 백작의 삶이 타인의 애정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에 있지 않다.
본인은...... 과연 그 애정속에서 행복했는가?
그는 진실된 삶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느끼며 만족했는가?
그러한 것을 내던지면서 타인의 애정을 받은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아마 로체스터 백작은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진실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진실된 것일지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진실을 느끼지도 못할 상태였지만..
로체스터 백작이 왜 그런 삶을 택하게 되었는지
예술가로서의 사명감때문이었는지
삶의 허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주체할 수 없는 육신의 욕망 탓이었는지
술로 인해 자신의 제어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인지..
의회에서 왕권을 옹호하기 위해 일장연설을 하는 로체스터 백작을 보면서
어쩌면 그가 위선적인 당대의 귀족들을 고발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내가 처음에 알았던 너무나 영특하고 멋있었던 남자
신을 찾고 부르짖지만 뒤로는 남자라면 여자와 술 시는 기본이라고 말하며 온갖 허랑방탕한 짓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너무나 소년같은 영혼의 로체스터 백작이 보였다.
아마 그는 그에 대한 반발심 내지는 도전심으로 그의 인생 자체를 던져서 그들이 말하는 그 삶을 구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가 그들에게 지는 일인지도 모른채..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고 그로 인해 두려움조차 없었기에 자신의 삶 자체를 던져서 진실을 보여주고 싶은 교만함과 호기를 부린 것이다.
자.... 너희들이 말하는 이 난봉꾼 적인 삶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한번 보아라~!!
이렇게 가벼운 삶..
진정성은 악세사리에 불과한 삶...
그가 연극을 사랑하는 것은 연극안에서는 진지함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
리지에게 말하는 이 난봉꾼의 내밀한 고백속에서
그가 왜 그렇게 무질서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엿 볼 수 있었다.
진정성 때문에 연극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삶을 연극화해버린
똘똘하지만 어리석은 이 사내..
어찌하면 좋을꼬.
왜 이 가볍고 미친듯 모순적이라 여겨지는 세상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두려움 없는 사내는 그러나 너무 많이 나갔다..
브레이크를 상실할때까지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을 때까지
삶에 애착을 느꼈지만
거짓된 그의 삶에서 그 애착을 진심으로 보아줄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까.
리지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리지를 손가락질 할 수는 없었다.
리지는 그녀의 삶속에서 남자에 대한 의심을 먼저 배웠고
그 경계심을 풀어주기에 로체스터 백작은 신뢰가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인간적 면모를 더 많이 보았던 그의 아내가
그의 얼굴이 문드러지고 다리를 절게 되어 사람구실 못할 때까지도
끝까지 그의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은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어떤 모습을 각인시켜 주는 지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까지 했다.
마지막까지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며 신을 조롱하는 로체스터 백작..
신이 없다고 믿는다면 조롱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왜 그토록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까지 무언가를 보여주려 했는지
그가 조롱하고자 하는 자들은 위선자들이었는데
그는 그 겨냥하고자 하는 그 조준점을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좋아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그 말이 왜 오히려 나를 구원해달라는 말처럼 느껴졌을까.
아마 그는 정말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간절하게 바랬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남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자신은 생각했겠지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타인이 자신을 좋아해주길 갈망하는 모순된 심정속에서 길을 헤매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마 이세상 모든 이가 그를 추앙한다고 해도
그는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어긋난 방식으로 그것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안타깝다...
...
너무 퇴폐적이어서 아름답지만 가까이 할수는 없는 사람.
로체스터 백작..
좀더.. 좀 더.. 삶의 기회를 주었다면 달라졌을까?
딸에 대한 애착이 이리살아도 저리살아도 한 세상인 인생을 조금은
제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주었을까 아니면
달라지지 않음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일탈의 환희를 온몸을 불살라 보여주는 삶을 또 다시 선택했을까..
사람들이 그에 대해 쏟는 사랑이 그의 재능에 대한 애정 뿐만 아니라 그의 일탈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충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나의 과민반응인걸까?
삶의 애착을 느끼는 순간이 왔을때 삶을 쓸쓸하게 등져야 하는 이 사내의 마지막 호언장담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나의 이런 태도가 빈정상하면서
너나 잘하라고 쏘아붙이겠지만..
나는 그가 가엽다..
하긴 내가 누굴 가엽다고 할 처지는 안되지만.. ^^;;
어쩌면 이 모든게 오직 나의 잣대로 그를 가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유속에서 온전히 즐거워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간단히 뛰어넘는 인간이라면 말이다.
단지 어쩌면 그러한 것이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