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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타이야기...변진섭

안지현 |2007.10.12 16:37
조회 485 |추천 1


1989년 처음 진섭오빠를 실제로 보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십수년간 오빠를 연모하고 오빠의 행복은  곧 나의 기쁨이요 오빠가 마음 아프면 내마음은 찢어지고 오빠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팠음 좋겠고 오빠가 비맞으면 내우산 던져주고 내가 비를 맞고싶고 ..감히 내삶의 여러가지이유중 하나라고 해도 될만큼 오빠는 저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진섭오빠는 늘 제게는 감동이였는데 몇몇 일화들로  저의 마음을 더 훈훈하게 적셔주었습니다.


이얘기를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91년도에서 있었던 목포콘서트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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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그러니까 변집섭이 가요계를 평정하던 시절에, 그에 관한 기억이 하나 있다. 내 고향의 목포대학교에서 변진섭을 초청해서 콘서트를 열었다. 지방 소도시 출신 사람이라면 다 아는 얘기지만, 그런 소도시들의 문화적 토양이란 참 척박하기 그지없다. 전국노래자랑이 시민적 행사가 되는 웃지못할 일도 왕왕 있었으니까. 행사를 주관했던 대학생들은 대학 강당에 콘서트장을 마련하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고3이 될 때까지 콘서트 한 번 못가본 촌뜨기였던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해서 그때 돈으로 2만원인가 했던 비싼 티켓료를 지불하면서, 나는 변진섭의 콘서트에 갔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행사를 준비한 대학생들의 입장이 난감하게도, 그 콘서트에 온 인원은 30명이 채 안 되었었다. 대학생들은 91년 5월 강경대 열사의 죽음 이후 이어지던, 김지하의 표현을 빌자면 '죽음의 굿판'을 벌이느라 길거리에 나가 있었고, 고등학생들은 입시에 치여 올 엄두도 못냈으며, 아줌마 아저씨들은 발라드보다는 트로트를 사랑했던 것이다. 행사를 책임졌던 한 대학생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목포의 문화적 척박함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 시대 최고의 가수가 먼 길을 왔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란 말인가란 말이냐. 그러면서 변진섭에게 연신 죄송하다 말하며 콘서트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때 변진섭이 보여준 태도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무대에서 내려오더니, 30명 가량 되는 청중을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게 했다. 그리고는 자기도 자리에 앉아서 통기타 반주 하나로 노래를 시작하던 것이었다. "저는 이렇게 적은 사람들 모여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 데, 오랜만에 이렇게 노래하니 참 좋네요."라고 그는 말했다. 한 곡이 끝나면 이 사람 저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또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아서 부르기도 하고, 나중에는 다 같이 변진섭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합창도 하고, 그렇게 그 조촐한 콘서트 아닌 콘서트는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김광석의 대학로 콘서트에 찾아가서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아 참 저런게 정말 노래하는 사람의 자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하나, 동전 한 닢, 그리고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몇 사람만 있으면,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르는 것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와 동그렇게 둘러앉아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니. 요즘처럼 대중문화가 문화산업에 전면적으로 흡수된 시대에는 불가능한, 발라드 세대에나 가능한 가슴 훈훈한 추억이 아닐까.


출처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ontheroad56/140024613012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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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오빠도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저와 비슷한 연배의 이분에게는 십수년이 흘러서 이런글을 쓸만큼 오빠와의 아름다운 기억을 평생가지고 갈겁니다.


그리고 초창기 캠프때 일화입니다.그때가 영동이였는지 오대산인지  갈기산이였는지는 정확히 생각나지않지만 깜깜한 시골에 푸세식화장실에 밤에 화장실가기란 쉬운일이 아니였는데 그것을 본 진섭오빠 여자애들화장실갈때마다 후레쉬들고 밖에서 서계셧습니다.


지금도 이모습을 상상해보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올것같습니다.


그리고 또 그해엿는지 그이듬해엿던지 비가 오고 길이안좋아 차가 흙탕물에 빠져서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때 진섭오빠께서 손수 삽인가를 들고 내리셔서 비맞으며 흙퍼내고 했던 모습들...


지방공연왔을때 공항에서 울면서 매달리는 팬에게 따뜻하게 손잡아주시며 해주시던 그말씀들....


지방팬들이 올라와 밤늦게 집앞에서 기다리면 가족들 다있는 오빠자택에서 재워주신일화들하며...


그리도 작년캠프때 팬의 아기가 새벽이 되어도 자지않자 삼십여분을 포근히 앉아서 리듬을 타며 토닥이면서 재워주던 모습...


문득문득 떠오를때마다 저를 눈물나도록 감동에 젖어들게 합니다.


그런  진섭오빠입니다.


늘 자기보다 팬들을 더 깊이 배려해주시는 진섭오빠


저는 이런생각을 해봅니다.오빠와 얘기해보면 저는 오빠입장에서 생각해보지않고 늘 내입장만 내가 아쉬운것만 말씀드리는구나 하구요.


그런데 진섭오빠는 늘 자신보다 팬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더 걱정하시더군요.


그걸 예전에 제가 철없어 느끼지못했는데 이제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더 느껴져요.


우리 오빠마음 아프게 해드리지말아요.


언제나 진섭오빠를 믿어요.


늘 우리곁에 오빠가 계신다는것도 잊지말아요.


사는게 바쁘다보면  오빠생각하지않을때도 있지만  돌아보면 늘  그자리에 계시다는걸....


늘 잔잔한 미소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슴적시는 노래로 늘 우리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계신 그런 진섭오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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