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책 표지부터가 조금 심상치 않았다.
아마도 라오스 또는 캄보디아(이 두나라는 아시아의 여러국가 가운데에서 GDP가 가장 낮은 나라들 중 하나이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진인 것 같았는데 어쩌면 책 표지에 등장한 이 그림 한 장이 아시아의 과거와 오늘날의 울분이랄까 여튼 어려움을 저자의 눈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재현의 언더로드'가 시리즈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꽤 대단한 사람일까? 라는 기대에 첫 표지를 넘겼지만 그리 대단한(?) 사람으로 소개가 되어 있진 않았다. 그러나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나중에 책을 덮고 나서야 '아.. 역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말해주는 척도가 되는구나..' 라는 다소 막연하고도 오류투성이인 생각을 갖게 했다. (솔직히 책을 펴서 얼굴을 접하는 순간.. 왠지 이 사람이 운동권 또는 386세대라는 것을 짐작했는데 내 짐작이 맞았다.)
미래학자들은 아시아가 21세기에 다시 일어선다고 말한다.
이 책에 조금 더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아시아"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동아시아" 의 근대화와 현대에 관한 기억을 저자 특유의 친사회주의적 관점에서 풀어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는 내 기억이 맞다면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이렇게 동남아시아의 5개국과 뒷편의 대만과 일본의 이야기등 총 7개국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야 안나온다손 치더라도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비슷한 식민지에서독립국으로 다시 근대화과정을 거쳐 민주주의의 시련과 성취 등을 이루어가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으니 동아시아 몇 나라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여기면 딱 맞을 듯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관되게 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소개하고 있는 나라들의 서구열강에 대한 저항과 그로 인해 얻은 경제성장, 공산화, 단결의 과정등 좌향좌의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그리고 열심히 전달하고 있다. 아마 보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이 어쩌면 폐를 끼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중도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데 책을 읽는 내내 캥기는 것이 많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시아 각국의 투쟁과 고난 그리고 민중들의 어려움 등의 사실과 역사를 저자가 밀도있게 조사하고 분석해서 비록 친사회주의적 관점이긴 하지만 실감나게 역사를 묘사해주고 있는 점이다. 태국이 왜 그리도 섹스관광의 천국이 되었는지(여기서 저자는 한국인들의 태국으로의 섹스관광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나는 그 점을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작은 사원에 어쩜 그리도 많은 의미와 애환이 담겨져 있는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베트남.. 그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도 소개되어 있으며 프랑스와 미국을 연달아 물리쳤던(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의 투쟁도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다. 대만에 들어온 국민당 정부가 왜 대만의 불청객이 되었는지, 그리고 조금 다른 시각이긴 하지만 일본의 공산당세력 가운데 하나인 적군파에 대한 내용도 충실히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국가를 나는 모두 다녀왔다. 그것도 일본의 경우 규슈(九州)에서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수 회를 다녀왔고 베트남과 대만은 각각 세 번, 두 번씩을 다녀갔으니 여행을 하기 전에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어쩌면 역사를 되짚어갈 수 있는 테마여행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등장하는 사진들을 보며 여행의 추억까지 사릴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나의 또다른 선물이 된 것 같다.
386 세대인 소설가 유재현씨
앞서 밝혔듯이 이 책은 좌향좌를 지향하는 책이라고까지 말한다면 매우 이념적인 책으로 낙인해버리는 셈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나는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막연하고 단순하게 좌파라고 이상하게 호칭되는 세력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써내려간 역사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자의 전체적인 시각과 글을 통해 표현한 역사의 내용의 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와 그의 이름을 따서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게 된 점과 짧은 지식으로 알고 있었던 일본의 적군파에 대해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부분은 앎의 즐거움까지 가져다 주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알고 짐작하듯이 필리핀에 만족하지 못하고인도차이나 반도에 유독 집착했던 미국의 新제국주의와 태국의 오래된 국왕 푸미폰의 어두운 그림자와 그의 초상에 손가락질을 해서는 왜 안되는지, 지나치게 왜곡된 킬링필드의 진실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주도했던 호치민에서 보트피플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슬픈 역사 등 많은 부분들이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 자리하며 아시아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해 줄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대여하고 연장을 두 번까지 해가면서 읽었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현재 내가 이런 교양을 넓혀주는 좋은 책 한 권을 여유있게 붙들고 있는 처지가 못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날씨 좋고 하늘 맑은 이 가을에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다녀왔던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의 역사와 근대화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알게 해준 이 책이 왜 그리도 고마운지..
아시아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꽤나 짧았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나서 내린 결론이다. 시각을 떠나서 입체적으로 아시아의 역사를 보여준 책. 정말 미래학자들의 예측대로 아시아가 21세기에 기회의 땅으로 재편되어 간다면 이 책에 등장한 역사의 일면일면들이 더 연구가 되고 세계인의 폭넓은 관심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은 적어도 내겐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 처지가 처지인만큼 섣불리 책에 손을 대기도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저자인 유재현의 언더로드2를 골라서 읽어보고 싶다. 쿠바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쿠바가 저자에게는 또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