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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Vol.11

이명주 |2007.10.19 17:38
조회 97 |추천 2


그 남자

 

 

 

이번엔

뿌리는 모기약이네요.

군대도 안 가 봤을 텐데

어쩜 이렇게도

필요한 걸 잘 아는지.

 

겨울엔 입술 보호제를 보내고

봄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보내더니

이번엔 물파스며,

뿌리는 모기약.

 

그녀의 소포를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은

복잡해지곤 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꾸 뭘 받으면 안 되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기왕 보낸거니까

잘 쓰는 게 좋을 거야.'

 

글쎄요.

국민의 도리라 해서

별다른 불평도 없이

군대에 와 있는 나지만

그녀에 관한 한,

그 도리라는 말은

참 모호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가.

그 사람의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받아야 하는가.

마음까지 받을 생각이 없다면

다른 모든 것도 받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내 마음속 논쟁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답변은 따로 있겠죠.

 

많은 것을 주고,

내 외로움까지 달래 주는 그녀를

나는 얄팍한 정당화로

방치해 놓았다는 것.

 

마음이 가득한 물파스며 모기약

그리고 긴 편지를 읽으며

나는, 더 이상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 여자

 

 

 

그 사람은 무척이나 가기 싫어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입대한다고 했을 때 기뻤어요.

 

"지금 어디 있나요?"

궁금해도 차마 물어볼 수 없던 사람.

내가 붙잡지 못하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한 곳에 붙들어주니

나는 오히려 군대가 고마웠어요.

 

생일 선물, 기념일, 이유 없이 사 주고 싶던 선물들

모두 보낼 수 있으니 좋았어요.

 

일방적으로 줄 수 있어서

그리고 어쩌면, 내가 주는 것들이

반가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

그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전화를 받으니 가슴이 뛰었어요.

 

고맙다는 말을 하려나,

내 마음을 받아 준다 하려나,

언제 면회를 올 건지 물어 보려나..

 

그런데 이제 그만 하라네요.

내가 주는 모든 게 부담스럽다고.

 

그 곳에 있어도, 외로워도, 곁에 아무도 없어도,

나는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 나는 이제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대신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좀 더 울어야 겠습니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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