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이번엔
뿌리는 모기약이네요.
군대도 안 가 봤을 텐데
어쩜 이렇게도
필요한 걸 잘 아는지.
겨울엔 입술 보호제를 보내고
봄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보내더니
이번엔 물파스며,
뿌리는 모기약.
그녀의 소포를 받을 때마다
내 마음은
복잡해지곤 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꾸 뭘 받으면 안 되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기왕 보낸거니까
잘 쓰는 게 좋을 거야.'
글쎄요.
국민의 도리라 해서
별다른 불평도 없이
군대에 와 있는 나지만
그녀에 관한 한,
그 도리라는 말은
참 모호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가.
그 사람의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받아야 하는가.
마음까지 받을 생각이 없다면
다른 모든 것도 받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내 마음속 논쟁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답변은 따로 있겠죠.
많은 것을 주고,
내 외로움까지 달래 주는 그녀를
나는 얄팍한 정당화로
방치해 놓았다는 것.
마음이 가득한 물파스며 모기약
그리고 긴 편지를 읽으며
나는, 더 이상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방치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 여자
그 사람은 무척이나 가기 싫어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입대한다고 했을 때 기뻤어요.
"지금 어디 있나요?"
궁금해도 차마 물어볼 수 없던 사람.
내가 붙잡지 못하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한 곳에 붙들어주니
나는 오히려 군대가 고마웠어요.
생일 선물, 기념일, 이유 없이 사 주고 싶던 선물들
모두 보낼 수 있으니 좋았어요.
일방적으로 줄 수 있어서
그리고 어쩌면, 내가 주는 것들이
반가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
그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주기만 해도 행복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전화를 받으니 가슴이 뛰었어요.
고맙다는 말을 하려나,
내 마음을 받아 준다 하려나,
언제 면회를 올 건지 물어 보려나..
그런데 이제 그만 하라네요.
내가 주는 모든 게 부담스럽다고.
그 곳에 있어도, 외로워도, 곁에 아무도 없어도,
나는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 나는 이제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갈 수 없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대신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좀 더 울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