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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째 이야기...

김형규 |2007.10.24 03:19
조회 27 |추천 0


 




“음수(-)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예요.
그건 수학이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두 개의 고독을 합친다고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예요."


카롤린 봉그랑, 中






하필이면 남자끼리 영화를 보러간 날
극장 계단에서 그녀를 만납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내려가는 길
그녀는 이제 막 올라가는 길...

폭이 좁고, 가파른 그 계단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밀리면서 우리는 2년만에 마주 합니다

난, 그녀가 그냥 가버릴까 하는 마음에,
일단 아무 말이나 하고 봅니다

"난, 저기~ 허~ 저, 저 친구랑 보러 왔어~
아이.. 난 보기 싫은데 저 자식이 자꾸 보자 그래서...
어.. 예쁜데, 너 좋아 보인다~
내가 한번 전화했었는데 너 안 받더라고~
요즘도 많이 바쁘지~?"

허겁지겁 한 내 말에
그녀는 그저 잘 지냈다고 웃어 보입니다

그리고 한 10초쯤? 그보다 더 길었을 거 같지만,
어쩌면 더 짧았을지 모르는 그 시간동안
우리는 마주 서있었고,
그러다 그녀가 먼저 인사를 했죠...
위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만 올라가봐야겠다고...

"그래~ 영화 재밌게 잘 봐~"
나는 그 말을 하고 서둘러 몸을 움직입니다

혹시 휘청하는 마음에 계단에서 구르지나 않도록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제서야 많은 질문들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왜 그렇게 마주치기 힘들었니..
서울에는 있었니.. 먼 곳에 갔었어?
생일날 전화했었는데 왜 전화 안 받았니...?
어떻게 살았니...? 어떻게... 살았니...?'





하필이면 화장도 하지 않은 날
무릎 나온 청바지 입은 날, 그 사람과 마주쳤네요

한번쯤 꼭 보고싶었던 그 사람을 이런 모습으로 마주쳤네요

와락 반가웠다가 이내 내 꼴을 생각해내고는,
어디론가 피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너무 좁은 계단에서, 너무 가까이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놀란 얼굴의 그 사람이 있었거든요

꼭 오늘 이 영화를 봐야겠다며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친구가,
부끄럽게 커다란 팝콘봉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이
갑자기 야속해집니다

'우리 다음에 만날까? 내 꼴이 지금 너무 이상하지~?'
하지만 금방 튀어나올 거 같은 그 말은
끝내 입에서 떨어지지도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말도 하나도 들리지가 않고..

정신을 차리니
계단 위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는 친구..
어떻게 어떻게 인사를 하고 후들거리며 계단을 오릅니다

어쩐지 뜨거워진 눈두덩이와 목구멍...

'나 그동안 여행 갔었다...?
너 전화했었지...? 받고 싶었는데 겁이 났었어..
너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했었니...?
왜 다시 전화 안 했니...?
다른 누굴 사랑하게 되었니...?
어떻게 살았니...? 어떻게... 살았니...?'






편한 운동화 하나 사야겠다 결심한지가 벌써 몇주..
그 후론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 운동화 뿐이 보이질 않죠

친구를 만나러 가는길..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바라 보는데..
한순간 아주 낯익은 구두가 보였습니다
흔하지도 않은 모양인데... 혹시..

하지만 고갤 들어 얼굴을 확인할 사이도 없이
그 발은 나를 지나 쳤죠

뒷 모습을 바라 보니 그녀가 맞네요
그 사이 벌써 손바닥 만큼 작아진 뒷모습이지만
그녀라는걸 모를순 없죠
우리가 만나던 그 시절에도 그랬으니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내 눈에 들어오는건 그녀 하나였고
그녀가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있어도
내 마음에 애틋하게 꽂히는건 그녀 하나였습니다

점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을 여행하는 듯 아득해지는 느낌..

내가 이렇게 서있었는데
어느날 그녀가 내게 가득 다가 왔었고
내가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그녀는 바삐 날 지나쳐 버렸고

나는 그래도 이렇게 그녀만 바라보며
처음에 그 자리에 서있는 오래전 일과
얼마전 일과 지금의 모습..

한숨을 쉬고 정신을 차려 봅니다

운동화..운동화를 사러 가는 길이 었죠
아니.. 친구.. 친구를 만너러 가는 길이었군요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고개를 숙인채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 사람을 봅니다

늘 두리번 거리며 걷던사람..
저렇게 고개를 숙인건 이미 나를 보았다는 뜻이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느려진 내 발걸음이 그사람의 시선에 들어갈 즈음..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냅니다

안녕..
그래요.. 이런 인사도 있을수 있겠죠
앞코가 납짝한 내 보라색 단화..
아무리 봐도 웃기게 생겼다며
그 사람이 매번 신기하게 쳐다 보던 내 신발과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의 맑은 무테안경..

내 신발과 그 사람의 안경이 우릴 대신해 인사를 나누고
나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앞을 보며 걸어 갑니다

다시 나를 불러 세워 주지 않는 그 사람과
목이 뻣뻣하게 굳어버려
돌아 보지도 숙이지도 못한채 걷고 있는 나..

어디서 많이 본듯한 풍경이
이렇게 또 한번 되풀이 되었습니다



이소라의 음악도시 - 그 남자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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