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의 존재와 죽음에 관한 육중한 영화를 보았다. , 그것은 내게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물론 그 대답은 확신이 아니다. 네가 모르는 만큼 나도 모른다고 속삭이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확신하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은 신의 존재와 사후 세계에 관해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으며 자라나는 괴물 같은 종교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흑사병이 돌자 괴담이 떠돌고 사제들은 광대들에게 공포 심리를 조장할 것을 주문한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를 학대하며 때로는 희생양을 골라서 마녀 사냥을 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육 행위, 재앙을 왜 좌시하는가, 하고 영화는 되묻는다. 영화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은 진실과 진실을 응시하는 시선을 말한다. 영화 속에는 대답을 갈구하는 시선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존한다. 화형 당할 운명에 놓인 소녀는 한동안 죽음을 직시하지 못하지만(시선에 초점이 없다) 형틀에 올라간 후에는 시선에 죽음의 공포가 나타나게 된다. 한편, 기사는 지평선상에 걸려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신의 존재를 묻는데, 신은 대답이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그렇다면 신은 존재하는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안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영화도 이것에 대해 시원하게 답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답이 없다는 것이 곧 답일 것이다. 답이 없으니까 끝없이 찾아라.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을 믿는 채로,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채로, 영원히 평행선을 그리면서.
결국 신이 있든 없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은 너무 여리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어둠 속에 떨어지면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하잘 것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공포로 끝날지언정 삶은 언제나 경이로움으로부터 시작했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비록 신이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만들어낸 우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정해지지 않은 진실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냥 잊자. 진실이건 뭐건 잊자. 잊고 있다가 가끔씩 떠오르는 환상처럼 진실을 대하면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