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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그녀는 어떻게 잘난 남편을 넘어섰을까

조소현 |2007.10.31 09:34
조회 98 |추천 5


유능한 내조자에 만족치 않고 킹 메이커.정치적 동반자 입지 구축

‘빌 클린턴의 힐러리’에서‘힐러리의 빌 클린턴’으로 역사속에 우뚝서다

촉망받는 유능한 여성이 자신만큼 혹은 자신 이상의 자질을 갖춘 남자를 배우자로 택했을 때, 이 여성의 앞길에는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것도 여성이 진출하기 원하는 분야에서 배우자가 먼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어떻게 남편의 그늘에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남편의 헌신적인 내조자로 멈춰서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라

유능한 여성에게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을 추구하는 배우자를 만나면 ‘집사람’으로만 머물러야 하는 곤경에 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 최고의 명문여대인 웰슬리 여대를 졸업할 때쯤 힐러리는 당시의 세대와 가치관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라이프’지에 소개됐다. 예일대에서 힐러리는 캠퍼스 내 유명인사였다. 정치적 야망이 있는 동시에 뛰어난 이론가라고 알려져 있었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을 “내가 만나본 남자들 중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라고 평가했다. 빌이 어머니에게 밝힌 힐러리와 결혼하고 싶은 이유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는 일생을 정치와 공무를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와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해요.”‘장관이 되려 하지 말고 장관의 아내가 되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다행히 빌은 힐러리의 능력을 존중할 줄 아는 남성이었던 것이다.

▶남편과 나란히 서 있어도 감수해야 하는 것들

힐러리는 결혼 후 몇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위험부담도 떠안게 된다. 내조를 위해 자신의 꿈 중 일부는 포기해야 했다. 조신한 아내 역할을 하라는 사회의 압력과 함께. 남편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남편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치명적 오점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성공한 남편 뒤의 ‘제법 유능한 아내’로 사장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빌의 청혼을 받은 힐러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 젊은 변호사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힐러리는 마음만 먹으면 워싱턴이나 뉴욕의 일류 법률사무소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택하면 창창한 미래를 포기하고 빌을 따라 아칸소로 이주해야 했다. 힐러리의 한 지인은 “제정신이 아니야. 도대체 왜 미래를 내던지려 하지”라며 힐러리의 선택을 만류할 정도였다. 퓰리처상 수상 기자 칼 번스타인은 힐러리의 평전 ‘힐러리의 삶’(현문미디어)에서 “스스로 자신의 재능과 열정과 에너지를 남편의 앞길을 밝히는 데 사용하는, 전통적인 환경을 선택했다. 대신 힐러리는 협력자이자 관리자, 그리고 고문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잘 나가는 남편을 둔 것도 ‘죄’인가. 전통적인 아내 역할이나 하라는 주위의 압력도 힐러리가 감수해야 할 짐이었다. 대선에서 참모로 동분서주하며 빌이 당선되는 데 대단한 기여를 했지만, 보통 정치인들의 아내와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힐러리를 마땅찮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리처드 닉슨이 “아내가 지나치게 강하고 똑똑하면 남편이 무기력해 보이는 법”이라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빌은 현명한 아내 덕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힐러리도 대통령 남편 덕을 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부 중 한 명이 삐끗할 경우 그 여파의 일부는 배우자도 나눠져야 한다는 위험성이 있다. 닉슨의 부인 팻 닉슨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사려 깊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사임한 남편 탓에 오명을 써야 했다. 만약 빌이 르윈스키 파문에 휩싸여 탄핵당했거나 별 볼일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했다면, 힐러리는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대통령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정계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야심만만한 여성이 참을 수 없는 일은 남편의 그늘에 가려버리는 것. 1990년 클린턴 부부는 빌이 주지사 재선을 포기하고 대신 힐러리가 출마하는 문제를 놓고 상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사람들은 힐러리를 그저 클린턴의 부인이라고만 여겼고 독립체로 보지 않았다. 힐러리가 아동보호기금의 이사회에 있었고, 법률구조단 회장을 역임했음에도 말이다.

▶꺾이지 않는 의지

‘빌의 아내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힐러리의 결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결혼식 날의 ‘독립 선언’(?). 힐러리는 피로연장에서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힐러리 로댐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번스타인은 “힐러리에게 이름은 언제나 자신이 ‘정치인의 희생적인 아내’가 아닌 ‘고유의 권리를 가진 한 사람’임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백악관 입성 후에도 힐러리는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 이상을 원했다. 힐러리는 과거 퍼스트레이디들이 사용한 이스트 윙이 아닌 권력의 상징인 웨스트 윙에 자신의 집무실을 꾸미고 싶어했다.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힐러리는 독립체로 서기 위해 뉴욕 상원의원 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온갖 악재에도 힐러리는 멋지게 승리했다. 이때 빌이 지닌 정치가로서의 전문지식은 큰 도움이 된다.

상원의원 힐러리는 남편의 후광을 벗어던지게 된다. 번스타인은 힐러리 당선 후 한 달 뒤 벌어진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카메라 앵글은 일제히 빌이 아니라 힐러리에게 맞춰졌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아내에게 쏠린 채 시끌벅적해지자 곁에 있던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채 왜소한 모습으로 심지어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순간 힐러리는 미국 역사상 누구도 비길 수 없는 완벽한 여인이 되어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이고운 기자(ccat@herald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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