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각오의 순교정신 되새겨야
1897년 경남 창원군 출생
1922년 평양장로회 신학교 입학
1925년 부산 초량교회 목사 부임
1931년 마산 문창 교회 목사 부임
1936년 평양 산정현 교회 목사 부임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
1944년 평양 형무소에서 별세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의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체포되어 옥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2007년 11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하였다. 아울러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근대민족운동관(제2전
시관)에서 이달 말까지 개최한다.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회장 김상복 목사)
에서는 김정택 장로가 이끄는 SBS오케스트라 연주로 11월 한달간 ‘칸타타
일사각오’를 순회공연한다.
탄신 110주년을 맞는 故 주기철 목사는 경남 창원에서 출생(1897.11.25
~1944.4.21)하여 1916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예수교대학교(연희
전문학교의 전신)에 진학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
하여 집사로 웅천읍교회를 섬겼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0년 12월에는 경상남도 창원 웅천청년운동단의 대표로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에 참석하여 의사(議事)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 1925년 12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를 시작으로 목회에 입문하였다. 1931년에는 마산 문창교회에
부임하여 여러가지 어려움에 놓여있던 교회를 재건하였으며, 1931년과 19
32년에는 경남노회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이무렵 일제가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의식'이라고 선동하자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주기철 목사는 이에
정면으로 대항하였고 1935년에는 평양신학교 학생부흥회에 초빙되어
'일사각오(一死覺悟)'라는 제목의 유명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대가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과
집중적인 감시를 받는 등 탄압을 받았지만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고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 결과 1938년부터 1944년 순교
하기 전까지 총 5년여의 투옥생활을 겪게 되었다. 잠시 석방되어 평양
산정현교회로 돌아온 주기철 목사는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는 '오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유언과도 같은 설교를 하였다.
아래 두편의 설교는 '순교의 정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의 출발임을
보여주는 주기철 목사가 남긴 한국교회의 거룩한 유산이다.
글 / 정영훈 갓피플뉴스 편집장 news@godpeop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