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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금칙어는 제 나름대로 살짝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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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고시’ 계열의 학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연 3600 정도의 ‘기본급’ 과, 학생 수에 비례
하는 인센티브 계약을 맺고 있다. 이 바닥에서 최고 몸 값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수입이 연 36억
까지 존재하고, ‘이 바닥’ 이라고 해봐야 모든 관계 종사자를 다 합쳐도 존재감있게 매겨질만한
사람은 백여명 남짓이니까, 아무래도 난 성장 가능성 있는 시장에 잘 뛰어든 것 같다.
내가 학원 선생을 시작한 것은 나이 스물,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파트 타임 강사
로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며 하루에 여덟개 정도의 수업을 했었고, 당시에 받았던 급여는 월 60만
원에 교통비조로 몇 만원 정도를 더 받았던 것 같다. 그 외 식대 같은 것은 없었고 복리 후생에
관한 것도 전무했다. 당시 내가 내고 있었던 국어 국문학과 등록금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4
0만원 정도였으니까 학생 수입치고는 상당히 괜찮았었던 편이었다.
여하튼, 기본급 3600 과 인센티브까지 얹어주는 나쁘지 않은 계약은, 그간 내가 해 왔던 일과 내
가 가진 일천하나마 학원 입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경험들을 존중해 준 것이라고 할 만 한데, 더
바랄 것도 없이 기본급 계약 만으로도 사실 나는 매우 만족 스럽다. 게다가, 내 스스로 학생들 앞
에서 강의를 하는 재주 만큼은 타고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1차적 목표로써 내년 이 맘때
재계약을 할 시에는 계약금 5000 에 연봉 5000 정도의 규모로 3년 계약을 맺는다는 목표를 설정
해 두고 있다. ‘고시’ 라는 곳은, 아직도 시장성이 확장되고 있으므로.
내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 학원이 나를 영입한 이유가 학원을 경영해 보았
다는 노 하우를 존중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대상을 불문하고 수업을 진행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인정했던 까닭이다. 사실, 나는 10여년의 학원 강사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연봉 2400 을 넘겨
본 적이 없었다. 내 직위가 평 강사든, 교무실장이든, 전산주임이든, 부원장이든, 월급쟁이 원장
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학원 강사라는 직업이 연봉 3600 이상
을 가지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여러분의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시장 분위기가 급변하므로, 최근까지 강사 몸 값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인데다 입시 학원 계통에
서는 이미 강사에게 고액 연봉을 줄 이유를 완전히 상실 했으므로 - 모든 시스템과 체계가 다 잡
혀 있는 마당에 고액을 주면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전혀 없다.
어쨌든 나는, 이미 고시에 진출해서 탑 시드 급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동일 계열의 회사까지 하
나 차린 선배로 부터 ‘고작 그 정도 밖에 달라고 하지 않았단 말이더냐. 쯧쯧’ 하는 소리까지 들어
가며 고시에 입문했고, 첫 번째로 떨어진 프로젝트는 학원의 시스템과 커리큘럼, 그리고 강의를
맡아줄 인재를 영입해 달라는 일이었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을 모두 동원해서, 고작해야 학부
를 마쳤을 뿐인 내가 석 박사 급의 면접을 보고 그들의 입사 여부를 결정하는데 기여하기 시작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입하지 못한 몇몇 분야의 사람들을 ‘공채를 빙자한 특채’ 하기 위해, 나는
법인 아이디를 가지고 잡 코리아, 리크루트, 노동부 워크넷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오
늘로 3일째. 일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허탈감과 약간의 분노, 또한 다소의 실망감을 섞어 복잡 다
단한 감정이 되어버렸다.
잡 코리아, 라는 사이트 하나만 해도 하루에 수 천장(혹은 그 이상) 의 이력서와 지원서들이 접
수 되는 것 같다. 자신을 뽑아 달라, 자신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등등 화려해 보이기 위
해, 무언가 있어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많은 이들의 PR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채용 담당자’ 가 되어버린 나는, 아, 신문지상에서 말하는 인사 담당자들의 씁쓸함이 이런
것이구나, 그런 심정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몸 값들이 너무나 높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입시 강사 생활을 하던 석달 전 까
지, 나는 단 한번도 연봉 2400 을 넘겨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내 능력의 부족이라고는 생각하
지 않는다. 내 능력의 부족이었다면 난 이렇게 큰 무대로 잡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나는, 계
약된 원장이었기 때문에 선생들의 월급을 주고 남은 금액에서 내 수입을 추리곤 했다. 그러나 입
시, 라는 시장이 워낙 과공급 시장이었던 까닭에 학원에서 1타로 내세울 만한 수학선생에게 연 3
600을 챙겨 주고 나면 나는 진정코 한달에 60 남짓한 금액이 남을 뿐이었고 부족한 부분을 내가
단과를 뛰며 채워 나갔었다. 내가 박봉인 까닭이 ‘입시 학원’ 이라는 시장성의 문제였을 뿐, 근본
적인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고 주제넘게 주장하는 근거가 그 곳에 있다.
이미 95 % 이상 나라는 사람에 대한 영입이 결정된 이후에도 나는, 이 곳에서 인정 받기 위해 내
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시안으로 작성해서 인사 담당자에게 들고 갔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
성과 구체적 실천 아이템들을 직접 파워포인트, 워드, 액셀, 포토샾 등을 통해 100 여 페이지가
넘는 문건으로 만들어 내가 가진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능력과 머릿속의 아이디어 들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나는, 그런 것이 ‘구직’ 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일’ 에 있어서의 자세라고 생각했었
다. 채용을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영입인사로써 인사 품의까지 결재된 상태에서도 말이
다.
그런데 채용된 지 3주만에, 이제는 내가 프로젝트 팀의 채용 담당자가 되어 하루에도 수 백건 씩
의 이력서를 살피고 또한 연락을 하며 이 계통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가’ 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패기와 열정, 성실한 자세, 남보다 한 발 더 뛰는 노
력’ 이라고 답한다. 바로 그런 부분을 보여 줄 수 있는 구체적 아이템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또
다시 ‘패기와 열정, 성실한 자세, 남보다 한 발 더 뛰는 노력’ 이라고 답해 버린다. 구체적 아이템
말이다. 구체적 아이템.
이런 친구가 있었다. 이력서의 제목을 ‘다꾼바 가내 은상세’ 라고 적어 올렸다. 이미 예전에 한
번 보았던 테크닉이긴 했지만, 흥미가 동해 이 친구의 이력서를 클릭해 보았다. 지원 각오에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덟글자. 희망 연봉은 3600. 어이가 없었지만 전화를 걸었다. 내심 ‘단순
관리직’ 정도라면 면접을 보아주겠노라는 생각이 있었다.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이
친구는, 우리가 어떤 곳이며 어떠어떠한 일에 관심이 있는가, 를 물었더니 인사 담당자라는 낌새
를 채곤, 다소 공손해진 목소리로 ‘예.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연봉은 얼마나...’ 라고 대답한다.
나는, ‘3600 주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에 걸맞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라고 물었더니 이
친구 대답이 ‘아직 사회 초년병이고 졸업 예정자 이므로 경험이 없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
겠다’ 였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친구는 무얼 믿고 자신의 연
봉을 3600 이라고 책정한 것일까. 이 친구의 이력서에는 자신의 상급자가 될 나보다 뛰어나다고
보여지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컴퓨터 능력에서도, 사회 경험에서도, 또한 이 직종에 대한 인식
과 경륜에서도.
그렇다면 이런 경우가 비단 이 친구 하나 뿐일까.
얼마나 배들이 불렀던지 이력서들 가운데서는 ‘다른 일 말고 옷에 대한, 패션에 대한 일만 시켜달
라’ 면서 희망연봉 3600을 부른 전직 ‘지오르다노 매장 사원’ 이었던 고졸 아가씨와, ‘나도 강의
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 1년만 강의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없겠느냐’ 면서 연봉 6
000 을 부른 석사 아저씨. ‘비서업무에 걸맞는 미모의 소유자’ 라며, 도무지 진의를 알 수 없는 이
력서와 함께 연봉 5000 을 부른 ‘스튜어디스’ 출신도 있었다. 모두, 오늘 접수된 86통의 이력서 가
운데 섞여 있는 것들이었고 이 정도 수준이 아님에도 자신의 능력과 연봉을 과 책정 한 것이라
판단되는 이력서는 수도 없이 많았다. 비율상으로, 전체의 70% 정도라고 판단된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학벌들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수의 명문대 출신도 있었고 실
업계 고졸이나 독학사, 검정고시 출신도 있었다. 학벌은 상관없었다. 중졸이었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능력만을 보고자 했다. 하도 세상에서 능력대신 학벌을 중시한다며 뭐라고들 해서,
나는 정말 능력만을 보고자 했다. 그럼에도 학벌 있는 놈들은 학벌이 되니까 6000 을 달라, 학벌
이 없는 놈들은, 학벌 없어도 능력있다, 믿어달라, 면서 3600 을 부른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자신의 범주를 뛰어 넘기 어려운 법이어서, 나 역시도 나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 설령 박봉일 지언정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다음 대가를 요구하는 그런 사람
을 찾고 있었다. 1년, 2년 뒤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이력서를 접수하는 차원에서라도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갈고 닦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는 기꺼이 5천이든 6천이든 제시해
줄 의향이 있었다. 그런데, 11월 7일 부터 어제 자정까지, 접수된 수백통의 이력서에는 그런 진짜
배기 ‘패기’ 와 진짜배기 ‘열정, 노력’ 이 보이지 않았다. 혼잣말로, 어디서 패기, 노력 같은 단어
들은 줏어들어 가지고...쯧. 하며 씁쓸했다.
안 되면 찾아 보겠노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단 우리에게 입사 지원서를 들이 민 사람들이 아닌,
잡 코리아, 리크루트, 노동부 워크넷에 이력서를 접수 시킨 ‘모든 이들’ 을 상대로 무작위 이력서
검색에 들어갔다.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우리가 채용 공고를 낸 날짜인 11월 6일을 기준으로, 11
월 7일 자 부터 오늘까지, 명실상부 ‘수 만통’ 의 이력서 가운데 ‘1차선 통과’ 에 해당하는 ‘수 천
통’ 의 이력서를 출력해서 하나 하나 살피고 최종 ‘연락자 명단’ 을 만들었다. ‘수 만 통’ 가운데
‘최종 명단’에 오른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다시 말해, ‘이력서’ 에 희망한 연봉과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을, 패기를, 열정을, 잘 표현했거나 최소한 보여 준 사람이라도, 신입 경력 무관하
게, ‘최종 명단’ 은 단 여덟 통 이었다.
무작위 이력서 검색의 수준은 필요로 하는 전공자를 1차 필터링, 하는 수준 뿐이었다. 그리고는
전부 출력해서 검토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여덟개. 미모를 본 것도 아니고, 석, 박
사 학위를 본 것도 아니고, 토익, 토플을 본 것도 아니다. 경력직인 경우 내가 원하는 분야의 경
력이 있는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가, 자신이 해 왔던 일에 대해서, 또는 지원하
는 이 분야에 대해 소신이 있는가 정도일 뿐이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절대 다수의 이력서는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자기 소개서들은 하나 같이 ‘누구누구의 몇 남 몇 녀 가운데 몇 째로 태어나서’ 로 시작
하거나 ‘무엇무엇을 강조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로 시작한다. 얼마전 매일 경제에서 우리나라 2
0대 기업 인사 담당관들의 고충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호구 조
사를 나온게 아니니까, 네 놈이 뭘 잘하는지를 말 하란 말이다’ 라고.
한심했다. 솔직히 한심했다.
도대체 내가 조ㅈ빠지게 빼ㅇ이치며 연봉 2400 도 안되는 곳에서 그렇게 능력을 보이겠다며 발버둥치고 있었던 동안, 이제사 비로소 그 대가를 얻는 것이라고 연봉 3600 에 만족스러운 지금에 이
르기까지, 이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했기에 당당하게 2400 부터 6000 까지를 요구하는 것일까?
하물며, 그 연봉을 ‘지급’ 해야할 당위적인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측면에서는 개나소나 다
가지고 있는 ‘열정, 패기, 노력’ 말고는 더 들이 밀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어제 하루에 걸었던 전화가 대략 60여 통이다. 일종의 사전 면접이었던 셈인데, 하나 같이 ‘자신
에게 얼마를 줄 것이냐’ 는 물어왔지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 하고 싶다’ 는 이야기
를 한 년놈은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사실, 이런 증상은 ‘학원 선생’ 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자신이 서한샘 뺨치는 강의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강사들치
고, 정말 그런 말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자기 자신만 영입하면 당장 학원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강사들치고, 나와 싸우지 않은 놈들이 없었다.
특히나, 알량한 경력이라도 있을라치면, ‘저, 과거에 이러저러한 학원에서 근무했어요’ 따위를
씨부리며 온갖 도도한 척을 한다. 나 역시 수업으로나 학생들 관리에서나, 학부모 와의 컨택 능
력이나 광고 기획, 홍보 플랜, 컴퓨터 능력, 심지어 학원 바닥에서의 경력, 무엇하나 남에게 뒤지
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던지라 그런 도도함이 눈꼴 시렵다. 도도하고 싶다면 능력을 보여 달라는
말이다. 그런 친구들 치고 수명이 긴 친구들이 없었다.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수업에서
도, 아이들에서의 인기도에서도, 학부모들의 지지에서도 조금씩 나에게 밀린다는 것을 눈치 챌
즈음, 학원 광고를 혼자 디자인하고 샘플 인쇄까지 해서 인쇄소로 들고가 인쇄소 디자이너에게
‘누가 하셨어요?’ 라는 감탄까지 한 마디 들을 때 쯤이면 그런 부류의 도도함은 일순 시기, 질투
로 바뀌고 결국 나와 맞지 않는다, 라며 나가 버린다.
반면, 자신은 모자라다, 는 겸손함을 지닌 친구들에게는 정말 안 쓰던 신경까지 써 주며 기특해
보이고 예뻐 보인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그 친구들을 키우기 위해 단과 수업들을 마련해 주
고, 일부러 아이들 앞에서 칭찬해 주며,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주고 싶어진다.
물론, 가끔은 악덕 기업주들을 만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정말
대한민국에 일자리가 없을까? 정말 눈높이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일할 만한 자리가 없어서 청년
실업이 높은 것일까?
예전에는, 여타의 토론방 등지에서 ‘일하려 해도 자리가 없다’ 라는 쪽의 주장이 있으면 그 쪽에
내 생각도 무게 중심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업 현실에서 일할 만한 자리가 얼마나 될까, 라고
도 생각했고 이 생각에는 이데올로기적인 회의도 틀림없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한 며칠 간의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태백? 이구백? 까는 소리 말라고 해라, 라면
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20대. 일하려는 생각이 없다.
특수한 경우로써 전체를 예단하는 것이라 지적한다면 틀린 소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 ‘특수한’ 경우들이 ‘일반적인’ 경우들로 생각될 만큼, ‘수 만통의 이력서 뒤지기 작
업’ 에서 내가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크다. 왠지, 이렇게 쉽게 자신의 연봉을 주장할 수 있는 것
이 사회적 분위기라면 내가 지난 10년간 해온 ‘일’ 들에 대한 얇디 얇은 댓가들이 한 없이 억울해
져 버리는 거다.
대한민국은 현재 자본주의 국가이고, 이것은 패러다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세계적인 추세, 라
는 것 만큼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능력을 보여라. 아니면 혁명을 기도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