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속이 텅 빈 느낌.
손에 잡히지 않는 마무리공부.
이게 바로 긴장감이라는 거 같습니다.
12년동안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면서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수능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았고
이 12년 숙성 공부의 목적도 결국 이 시험 하나를 잘치자는 거.
결국 종이 쪼가리 몇개가 내 12년의 모든걸 평가할거라니
이만큼 웃긴 시험도 없을 것 같네요.
'나는 초등학교때는 이렇게 살았고 중학교때는 이랫고 고등학교는 이랫습니다' 라는 걸
대학교수들은 저 점수로만 평가하겠죠.
(뭐 논술 내신도 있겠습니다만은;)
생각해보면 좀 억울할것 같기도 하네요.
지금 시간이 12시 50분이네요.
약 31시간 뒤면
저는 아마도 낮선 교실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컴퓨터용 사인펜을 만지작거릴
60만명의 수험생 중 하나가 되어있겠죠.
지금 집에 혼자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주 한주 내내 출장이시고,
어머니는 현재 6개월째 입원중.
동생은 졸업여행.
뭐랄까요...쓸쓸함?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이라는 게 옆에 없으니까
좀 심적으로 힘드네요.
어머니가 올 5월에 입원하시고 난 이후로
늘 정규수업만 하고 어머니 옆에서 병원을 지켰습니다.
야자는 늘 빠졌고,
공부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었죠.
그래도 최대한 시간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2주를 밤낮을 바꾸기도 했고
잠 안오는 약을 먹으며 버티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부족하긴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모든 게 걸린 상황에서
저런 이유 따위야 한낱 핑계에 불과하겠죠.
결국 다 내가 해온 결과니까.
죄는 지은대로 돌아가고 공은 닦은대로 돌아가니까.
결국 제가 이때까지 해온 공부,
여태 축적시켜온 지식.
그리고 가다듬어야 할 정신까지.
외부의 사정 따위에 핑계를 대봐야 아무 소용 없겠죠.
결국 수능을 치는건
바깥일이 아닌 나 자신이니까요.
무튼 저는 이 시험 정말 잘 치고 싶습니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나는 어릴때 나름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그 증거입니다.'하고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러면 12년치 쪽을 다 파는 일이니까요.
더불어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계신 아버지와
병상에 누워 천장만 보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잘 치고 싶습니다.
제 19년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방향과,
저와 함께하는 이들의 기대.
모든 게 섞여버린 수능이네요.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잘 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