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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토끼

김민영 |2007.11.14 08:16
조회 435 |추천 2


 영국 런던 외곽 소도시 레이튼-버자드 시(市)의 2003년 12월 16일자 신문에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영국 갈색토끼 보존협회'의 존 리밍튼이라는 사람이 레이튼 시의 서점에서 를 판매하지 말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리밍튼 씨는 를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장난으로 토끼를 죽이도록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게다가 영국 갈색토끼 보존협회의 회장 로드니 헤일이라는 사람은 더 나아가 전 세계 어느 서점에서도 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이튼 시의 대형서점 관계자는 여론을 고려해서 일시적이긴 하지만 실제로 를 서가에서 치웠다고 한다. 가 동물보존협회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했나 보다.

 

 영국 소도시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던 그 자살토끼의 저자 '앤디 라일리'의 기발한 상상력과 촌철살인의 재치가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책을 펴들면 무표정한 흰 토끼가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에 성공한 모습을 그린 카툰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대부분 한 마리이지만 때로는 여러 마리가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활약한다. 토스트기에서 흰 토끼의 귀만 삐죽이 보이고 레버가 ON으로 내려가 있는 표지 카툰은 본문의 카툰들에 비하면 충격의 강도가 약한 편이다.

 

 '자살토끼'의 활약에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필연적으로 뇌리에 떠오르는 의문. 도대체 왜 이토록 죽고싶어하고, 죽어버리는가? 게다가 상당히 섬뜩한 상황이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 상황을 보며 실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난감해지는 기묘한 책이다.

 

 이 작은 카툰책의 원서 제목은 『The Book of Bunny Suicides』. ‘자살하는 토끼에 관한 책’이라니 어찌 보면 섬뜩하다. 게다가 표지는 스위치가 ‘ON'으로 되어 있는 토스터 안에 토끼가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작은 털북숭이 토끼’라는 카피 한 줄.

 그림 속의 이 죽지못해 안달난 미친토끼는 온갖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 그 방법들이 깜짝 놀랄 만큼 기상천외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병사가 할복하는 순간, 병사의 등 뒤에 찰싹 붙어 함께 칼에 찔리게 된다든지, 곤히 잠들어 있는 커다란 개의 꼬리를 스테플러 사이에 올려놓고 그 위로 뛰어내리는 모습, UFO를 타고 온 외계인이 반갑게 손을 흔들 때 그 외계인의 급소를 가격하여 화가 난 외계인이 쏜 레이저총에 녹아내리는 모습 등에서 보는 작가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만하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토끼가 완전히 무표정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마주했을 때 마땅히 느끼게 되는 고통이나 공포의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토끼는 자연현상, 전쟁, 종교, 매스미디어, 역사, 외계인, 스포츠, 영화, 핵실험, 일상생활 등에서 얻은 다양하고 기발한 소재로 자살을 시도한다.

 

 셋째, 이 책에는 글씨가 없다. 그림을 설명하는 주(註)도 없다. 독자는 그림을 보는 순간 직관에 의해 문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토끼가 자살을 시도한 후의 결과가 표현되지 않는다. 이것은 독자가 스스로 다음 장면을 유추하게 함으로써 마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색다른 쾌감을 준다.

 이 책은 2003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영국에서 출간되어 곧바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영국 아마존과 미국 아마존 독자들에게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자살’이라는 코드는 국경과 시대를 불문하고 분명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토끼는 치밀한 관찰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물에 친근한 의미를 부여하고, 삶 자체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죽음을 웃음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참된 유머의 정수를 보여 준다.

 또한, 후편으로 등장하는 '돌아온 자살토끼'에서는 전기다리미, 전동드릴 등 전편과 동일한 일상의 '흉기'들 또한 여전히 등장한다. 전편의 연장선상에서 좀더 기발한 자살법을 찾아 애쓰는 토끼의 노력이 안쓰러울 정도. 자살을 미화한다, 의미 없는 그림의 나열일 뿐이다 등의 혹평과 질책도 있지만, 그보다는 죽음을 향한 몸부림으로부터 역으로 삶의 이유와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는 평이 좀더 지지를 얻고 있는다.

 

 이들의 무미건조한, 감정없는 죽음들이 하나하나 쌓여가면서 독자들은 유희처럼 즐거운 자살의 방법들에 웃다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죽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부제처럼 우리네 삶은 매일이 참 힘들고 "죽겠다"는 말을 매일같이 내뱉으면서도 계속된다. 앤디 라일리는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 하다.

 

 죽음을 작품의 이면이 아니라 표면으로 완전하게 까짚어 보여줌으로써, 죽음만을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삶이 얼마나 치열하게 계속되는 지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고 있다.

 

 그저 한바탕 웃음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도 있는 책에서 이렇듯 거창한 의미를 찾은 것은, 우리 사회가 지금 당면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힘들다, 힘들다’ 하고 중얼거리는 자신과 사람들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서서 뛰게 만드는 원동력을 느낀 것일까.

 

 힘들고 우울하고 괴로울 때, 사람들은 즐겁고 유쾌한 것을 원하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토끼가 바로 그렇다. 왜 자살을 하려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살을 하려고 온갖 방법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낙천주의와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힘들고 우울할 때 한 번씩 펼쳐 보고 웃은 뒤에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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