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평생 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마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같이 보내고, 진학과 취업, 인생의 진로 등을 함께 고민하는 어려운 시절을 보낸 친구기 때문에 그 우정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고등학교 때 친구가 아니더라도, 어렸을 적 사귄 친구들은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도 그 반가움이 상당히 크고, 비록 오래간만에 만나더라도 마치 얼마 전 헤어졌던 사람을 만나는것 처럼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만나왔던 수많은 친구들과 모두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무리 대인관계가 좋고,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면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오래된 친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동창회에서 10년 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들은 참으로 반갑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는 다시 연락하게 되고 만나게 되지만, 그 외의 친구들과는 동창회에서 밤새 수다 떨며 놀다가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다지 잘 연락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사소한 갈등이나 오해, 그리고 나와는 맞지 않는 성격, 아니면 어떤 사고와 사건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바꾸지 않을 것 같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는 일들을 겪게 됩니다.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선배와 후배, 심지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은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이 연극 [나쁜 자석(Our Bad Magnet)]은 이런 갈등과 오해, 그리고 인생에 있어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멀어지게 만들며,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어렸을 적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던 , , ...
이 세명의 친구들 사이에 서울에서 전학 온 이 끼어들게 됩니다.
다소 음침하고 조숙해 보이던 은 복화술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으며, 글을 쓰는 감각이 탁월한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동화를 쓰고, 그 동화를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이들은 밴드를 결성하고, 끝까지 함께 하리라 생각하지만, 의 죽음은 이들의 관계를 산산조각 내어 버립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이들 세 친구들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던지며 상처를 주게 되고, 이들의 관계는 파국(破局)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나 가 만들었다는 ‘기계(혹은 장치)’는 이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기계였으며 - 아무리 눈치 빠른 관객이라도 그런 기계가 등장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이 어렸을 적 쓴 동화 [하늘 정원]은 이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려 합니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동화 [나쁜 자석]과 [하늘 정원]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 결국 같이 모여서 살 수 없는 자석(magnet)들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요?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도, 주지도 않으며, 필요에 의해서만 관계를 맺곤 합니다.
하지만 진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힘이 없어져서 물건들을 끌어당기지도 않고, 밀어내지도 않는 ‘나쁜 자석’이 되고 싶어한 어느 자석의 이야기처럼, 결국 나 자신을 버려야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며, 진실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 정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절망 속에 남겨진 작은 씨앗 하나.
그 씨앗은 싹이 날 수도 있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세 친구들의 관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이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아마 마음 한구석에 과거의 추억들, 그리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며,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을 아마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씨앗은 아마도 싹이 나게 되지 않을까요? ^^
매력적인 네 남자 배우 , , , 은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었으며, 네명의 연기 모두 잘 조화를 이루어 누구 한명 튀지 않고 극의 전개에 무리 없는 연기를 펼쳐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작가 의 작품이지만, 전혀 외국의 작품 같아 보이지 않는 번역 또한 훌륭해서, 공연 팜플렛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의 친구들과 예전의 친구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연극 [나쁜 자석] 이었습니다.
사족(蛇足)....
연극을 보고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들과 지인들이 생각나서 다시 연락을 시도해보려 했으나, 전화기를 들고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전화하지 못했습니다.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용기’도 필요한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