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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적표에는 각 과목 점수와 이수단위, 응시학생수, 과목평균, 과목석차, 동석차 같은게 적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등수는 항상 고만고만 했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언제 무슨시험이 몇등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기억 나는거라고는 1,2,3 학년을 다 합쳐 2등으로 졸업했다는 거밖에.
하지만, 전체 학생 숫자는 기막히게 기억하고 있다. 618명... 그럴 수 밖에. 공부 한다고 기를써도 한명은 결코 이긴적이 없는 먹먹한 기분을 달래줄 건, 그래도 나보다 공부 못하는 놈들이 617명이나 된다는 감상이었으니까.
성적표에 618명이라는 숫자가 있다는 건, 동시에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지만 그래도 같은 학년이라는 공동체적 의식만으로도 언제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나 빼고 617명은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618이라는 숫자는 1학년 1학기 부터 줄어 3학년 2학기때는 579명으로 줄었다. 시험을 보면 볼 수록 말 한마디 못해본 잠정적인 내 친구들 39명이 없어져 버린것이다. 그렇게 617명이라는 감상에 빠져 있는동안 한둘씩 떠나가 버린것이다.
2.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나 내가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부모님, 할아버지등 5분이 돌아가셨다.
물론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 장례식장에는 갈 수 없었지만 장례식장을 가본 사람은 알것이다. 장례식장의 풍경이 그리 슬프고 애닯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물과 엄숙함이 있지만, 고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페이소스를 떨쳐내려는 일종의 과장도 섞여 있다. 상주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순 없지만, 빈소를 찾은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웃는 얼굴로 밤을 새기 위한 술을 마신다.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고인을 반갑게 보내주는 게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거다. 가족들에게까지 그런 생각을 강요할 순 없지만, 그래도 빈소를 찾는 사람의 열에 여섯, 일곱 명은 그런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내가 건너건너 알고 있는 5 분이 돌아가셨다. 그래도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어느 하루, 전세계 인구 60억명 중 내가 아는 한 명이 영원히 사라졌는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허전하다.
3..내가 군입대 이후 한권 한권 모아오던 건축 잡지중 A10 6월호가 사라졌다. 책을 고히 모셔두기 위해 부대에도 안가져 갔던 책들이 내가 없는 동안 내 방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외박 나와서 그 책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아마도 분리수거 됬겠지... 열권정도의 잡지 중에서 A10 6월호가 사라졌는데, 불쾌하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정말 좋은 건축물 들이 많았었는데...
사라지는 건, 불필요한 감상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그것이 잠시 모습을 감춘 것이든, 완전히 휘발해 없어진 것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번 달은 무언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몇 가지인가의 사라짐이 한 달 내내 어깨를 짓눌렀다. 지저분한 감상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새삼스럽게 '부재'(不在)의 부피 때문에 버둥대고 있다. 슬프거나, 애닯거나, 공허한 무언가는 아니다. 그냥 부재라는 그 자체의 무게. 그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
'잘가, 건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