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소설 같은 일이지만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책장 구석에 박힌 영문소설을 집어들었다가, 책사이의 틈이 보여 펼쳐보면 빨간 봉투가 들어 있고, 거기에는 마치 행복했던 기억만 존재한다는 듯 웃고있는 두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 풋풋한 연애편지가 시간과 공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거기 그렇게 있는 따위의 그런 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이다. 조금 더 일찍 이 소설을 다시 읽을 생각을 했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멍청하게 서 있다가 스스로의 무심함을 탓했으리라. 나름 소중했던 물건을 고작 갱지로 된 소설의 갈피로 사용한 무심함을. 그리고 고개를 돌린 채 봉투를 집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거나, 라이터로 태워버렸겠지.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성토하기도 했을 것이며,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낄낄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며, 즉자적으로 욕지거리를 잔뜩 뱉어냈을지도 모른다. 이런 다채로운 감정의 굴곡과 변이는 사실 간단한 귀결점으로 향한다. '나는 아직 너를 잊지 못했다.'
조금 더 늦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는 가소롭다는 듯 책을 덮는다.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건 누가 누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너벨 청이 하룻밤에 같이 잤던 284명 중 한명에 불과할만큼 내가 그 사람에게 아무런 존재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이미 역사가 되었고 화석이 된 일이다. 사진 속의 나는 분명 미소 짓고 있지만, 그 미소 이후에는 폭소도 상쇄할 만한 아픔과 고통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사진 속에서 어깨를 맞대오 있던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아니며 이렇게 글의 소재 정도로 기능할 뿐이다. '다 잊었다'라는 선언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폭탄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토해낼 때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 녀석 때문에 웃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밋밋한 웃음을 지을 때야 비로소 그 선언은 유효성을 획득한다.
우리가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대체로 그것은 가혼한 논리에 근거한다. 인사동 커피빈의 옥상에서 '할만큼 했잖아'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강의동 5층의 흡연구역에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을 때 온 '이젠 못 버티겠다' 따위의 문자메시지 같은 것들. 명백한 시점 앞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통속적인 이별의 순간이라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이것으로 명확하게 수치화된, 이를테면 351일 간의 사랑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이별은 4차원의 양상을 가질 것이다. 공간의 세 축에 더해진 시간 축 안에서 이별은 타임디펜던트의 궤적을 그리며 굵직한 입체를 만든다. 이 간사한 입체는 지루한 블럭버스터 영화와 같은 구석이 있어, 종결점을 기다릴 땐 그 끝이 보이지 않다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깜빡 잠이 들면 어느새 끝나 있곤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일어나고야 만다. 이런 게 이별이다.
친구들과 잡담을 할 때 자숙기간을 물어본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다른 사랑이 시작되기 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대답은 다양하다. 3개월. 한달. 반년. 두어번 뼈저린 사랑을 경험한 녀석들은 스스로의 주관에 따라 갖가지 답변과 근거를 쏟아낸다. 이것은 그들의 이별이 가졌던 부피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아, 이거구나. 이 정도면 됐어'라는 혼잣말이 나올 때쯤 이별이 끝났음을 깨닫게 되고 다른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 색색으로 칠해진 마음이 다시금 부풀어 오르며 도파민과 암페타민의 장난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갈갈이 찢어버려도 시원찮을 것만 같았던 편지 봉투는 단지 책갈피로 폴 오스터의 소설 113 페이지에 가만히 끼워지게 되는 것이다. 오줌 싸개였던 나는 사집첩 속에서 종종 발가벗은 채 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천진난만했던 나는 시종 즐겁게 웃고 있으며 그 웃음에는 조금의 멋쩍음도 묻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진들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오줌싸개였다는 것도 기억 하지 못했을 것이다. 편지봉투는 이제 이런 사진과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마주체게 되면, '고작 이것 때문이었나? 고작 이것 때문이었지.' 그렇게 웃고 마는.
그래서 다시금 기다리는 것이다.
혹시나 하며 찾아올 그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