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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사랑

이성현 |2007.11.20 18:22
조회 175 |추천 2

어느 숲 속, 돌로 지은 아름다운 집들, 그런데 초가지붕이 있던가? 지붕에 겨울 안개가 자욱하다. 눈이 없었으니 아마 가을이리라. 단지 안개만 끼었으니까. 초대 받는 소님들이 편안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도착하고, 차들의 헤드라이트는 자갈길을 비추고있다. 우아한 나무울타리가 쳐 있다. 창문이 열려 있었으니까 여름이리라. 그 지역에서 가장 우아한 자태의 별장, 소나무 향을 풍기는 공기가 싱그럽다. 서실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여름밤이기 때문에 벽난로는 때지 않는다. 벽난로 주변에는 영국식 가구가 놓여있다. 소파는 벽난로 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된 그랜드 피아노를 바라보고있다. 그 나무가 소나무였던가? 아니면 마호가니였던가?, 그래 백단이었어!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눈이 먼 피아니스트, 눈동자가 없는 그의 눈은 자기앞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사물의 겉모양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정말 의미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 첫 연주회다. 그 장님은 자신이 막 작곡한 노래를 그날 밤 모인 친구들에게 연주하려고 한다. 여자들은 멋지고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적한 시골 분위기의 저녁식사에 맞는 옷이다. 아니 아마 가구도 프로방스풍의 소박한 것이었고 조명은 석유램프에서 나오는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행복에 찬 젊은 부부들, 중년 부부들 그리고 몇몇 노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려고 준비하는 장님을 바라보고있다. 잠시 조용해지자, 장님이 이 곡은 바로 이 숲에서 일어났던 사랑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초대 받는 사람들이 그 곡과 더 많은 교감을 갖도록 연주를 하기전에 <이 사랑 이야기는 내가 어느 가을날 아침에 숲속을 거닐고 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팡이를 짚고 개의 안내를 받으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까펫처럼 깔린 길을 걷고 있다. 발소리가 아주 멋지게 들리고있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면서 갈라지는 낙엽은 마치 웃음소리 같다. 숲의 미소일까? 오래된 별장 부근에는 장님은 지팡이로 더듬으며 울타리 옆을 지난다. 그때 아주 이상한 것이 자기 앞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상한 것으로 둘러싸인 집 그런데 무엇으로 둘러싸였을까? 그는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상한 것으로 둘러싸인 집, 그 벽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갈, 대들보, 거칠게 칠한 담벽, 돌을 휘감고 있는 덩굴이 모두 고동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장님은 한동안 그곳에 발길을 멈추고 서 있다. 그러자 사물들의 맥박소리도 멈춘다. 숲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천천히 집 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어느 처녀가 <당신과 개가 이 별장의 주인이신지 몰랐어요. 아니면 혹시 둘다 길을 잃으신 건 아니지요?>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달콤하다. 너무나 예의 바른태도다. 장님은 그녀가 틀림없이 아침 햇살처럼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모자를 벗는다. 불쌍한 장님이군, 내가 보잘것없는 식모인지도 모르고 모자를 벗어서 인사를 하는구나,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나의 추한 모습을 보고도 놀라움을 감출 필요가 없는 유일한 사람일거야. <이 집에 사십니까?>, 아니오. 지나가다가 잠시 쉬는 것이오>, 혹시 길을 잃으신 게 아닌가요? 제가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저는 이 부락에서 태어났거든요>, 아니, 이 부락이 아니라 고을이라고 했던가? 부락과 고을이란 말은 예전에 쓰이던 말이지. 아르헨티나에는 마을이라는 말을 쓰지. 미국에서는 숲속에 있는 이런 멋진 부락을 뭐라고 부르는지 나도 모르겠다. <저도 우리 어머니처럼 하녀에요. 어렸을 때 어머니는 저를 보스턴으로 데려갔어요. 지금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지요. 저는 숲속의 마을로 되돌아왔어요. 저는 혼자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집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그 여자가 하녀를 구한다는 말을 들엇거든요> 삐거걱 소리면서 문이 열리더니 노처처녀의 냉랭한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지요?> 노쳐녀는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못생긴 그녀는 맹인과 헤어지고 나서 그 집으로 들어간다. 노처녀에게 보낸 소개장을 보여주고 하녀로 그곳에서 일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자 노처녀가 설명한다. 그때 세들어 살 사람들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전갈이온다. <거짓말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들도 있어. 믿기는 어렵지만 말이야. 그들이 도착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한 쌍인지 알게 될거야. 나 혼자 이렇게 큰 집을 다 쓸 필요는 없잖아? 난 아래층에 있는 아담하고 깨끗한 방 하나면 충분해. 넌 안쪽에 있는 식모방을 쓰도록 해.> 시골풍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거실은 니스칠을 한 나무와 돌로 지어져 있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탁탁 불꽃을 튀기며 타고 있다. 창문은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있다. 그리 크지 않는 창문이다. 창문에는 조그만 사각형의 창살이 쳐져 있다. 모두 볼품없이 촌스럽기만 하다. 신혼방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은 어두운 색이었지만 왁스칠을 해 윤이나고 있다. 신혼방 옆에는 청년이 쓸 서재가 있다. 청년은 설계사였던가? 그날 오후까지 모두 정리하느라고 얼마나 서둘렀던지.... 노처녀가 청소를 감독한다. 화가 난 얼굴을 한다. 하녀가 서툴게 청소를 하자 잔소리를 하고는 곧 사과한다.<미안해 난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서 내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어.> 하지만 무뚝뚝한 목소리에서는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젠 노처녀의 꽃병을 닦아서 꽃만 꽂으면 된다. 그때 자동차가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렸어! 차에서 한쌍의 부부가 내린다. 금발 머리의 약혼녀는 멋진 털옷을 입고 있다. 밍크 코트엿던가? 하녀는 창문에서 그들을 쳐다본다. 청년은 뒤로 돌아 차문을 닫는다. 하녀는 서둘로 꽃병에 꽃을 꽂기 시작한다. 꽃병이 떨어질 뻔했지만 거칠어진 손으로 간신히 꽃병을 잡는다. 다행히 물만 흘리고 꽃병이 깨지지는 않는다. 하녀는 집에 들어온신혼부부를 보고 싶어 참을 수가없다. 하지만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닦는다. 노처녀가 짐을 안내하는 소리가 들린다. 청년의 목소리는 기쁨을 감추기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약혼녀의 목소리는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하다. 마을에서 떨어져 숲 속에 외로이 있는 것에 대해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다.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볼까? 하녀 주제에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에 맞을까? 약혼녀의 목소리는 쌀쌀맞고 까탈스럽다. 하녀는 청년이 있는 곳을 슬쩍 쳐다본다. 보기 드믄 미남이다. 하지만 그는 하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약혼녀는 숲 속에 외로이 있는 집이 너무 쓸쓸하고 밤이 되면 슬프기 짝이없을 것이라고 투덜거린다. 그래도 청년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마침내 그 집을 얻기로 결정한다. 구두로 약속을 한 다음, 수표와 함께 계약서를 편지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결혼식을 올린후 며칠 안으로 도착할것이라고 말한다. 청년은 하녀에게 거실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하녀는 꽃병에 꽃을 꽂고 있다. 청년은약혼녀와 단 둘이 거실에 있고 싶어한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이 꽃을 다 꽃을 수 있을거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이제 나가줘요.> 청년은 창가에 약혼녀와 나란히 앉아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잡고 숲을 바라보고 싶어한다. 약혼녀의 손은 집안일과는 거리가 먼 듯, 긴 손톱에 메니큐어를 칠하고 있다. 두껍고 작은 창문 유리에는 오래전에 새겨놓은 것 같은 글자가 비스듬히 씌어져 있다. 아주 조잡하게 새겨진 글씨다. 그곳에는 한 쌍의 남녀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밑에는 1914년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청년은 약혼녀에게 약혼 반지를 손에서 빼라고 한다. 그녀는 반지를 빼서 청년에게 건내준다. 마름모꼴로 세공된 커다란 보석이 반지에 박혀있다. 청년은 반지로 창문에 두사람의 이름을 새기려고 한다. 하지만 약혼녀의 이름을 쓰는 순간, 보석이 반지에서 떨어진다. 반지알이 빠져버린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간다. 불길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버린 정원에 노처녀의 그림자가 비친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그 집을 떠난다. 곧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작별을 한다. 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불긴한 예감은 갈수록 더해 한다. 가끔 가을은 너무 슬퍼! 오후에 햇살이 비칠 때도 있기는 하지만 해는 너무 짧다. 기나긴 황혼이 드리우자, 노처녀가 하녀에게 말한다. <나도 한때는 결혼을 한 뻔했지.> 1914년에 전쟁이 터지고 약혼자는 전사한다. 결혼 준비는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숲속에 돌로 지은 집,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그녀가 직접 수놓은 식탁보와 침대시트, 커튼 모든 것이 준비되 있다. <내가 이 비싼 천에 새긴 수 하나하나가 모두 내사랑의 고백과도 같았지> 거의 30년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약혼자와 이별하는 날 그녀는 이름을 새겨놓는다. <난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사랑하고 있어. 아니, 더 사랑하고 잇는지도 몰라. 난 그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 여기에 외롭게 남았던 그날 오후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어. >얼마나 슬픈일인가! 가을날 오후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라디오에서 좋지 않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미국은 또 다시 전쟁에 참가한다. 두 번째의 쓸모없는 세계대전이다. 어제의 일이 다시 오늘 일이 된다. 노처녀는 침실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다. 하녀는 추워서 몸을 떨고 있다. 벽난로에는 꺼져가는 몇 개의 장작만이 남아있다. 거실에는 세상을 잊은 채 그녀만이 홀로 남아 있기에 다시 장작을 지필 수도 없다. 조심스럽게 부삽으로 마지막 남은 재를 떠낸다. 며칠 후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든다. 전에 그집에 살고 싶어했던, 아니 이미 그집에 세를 들기로 핶던 청년의 편지다. 청년은 공군에 입대했으며, 그들의 결혼식은 연기되었고, 그래서 전에 맺었던 계약을 취소하게 되어 매우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것일까? 이제 집에는 하녀도 필요 없다. 집을 빌릴 사람이 없으므로 그녀가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창 밖으로 하루 종일 하녀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혼잣말만 되뇌면서....

하녀는 노처녀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하녀가 갈곳이 없으면 집에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한다. 노처녀도 외롭고 하녀도 쓸쓸하다. 두 개의 슬픔이 한데 모여있는 것 같다. 아니 상대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혼자 있는 편이 더 나을것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두사람이 함께 있는 편이 나을수도있다. 2인분의 깡통수프를 나누어 먹는데는.... 추운 겨울이 다. 온 천지가 눈으로 뒤덮여있다. 눈 덮인 세상은 더없이 고요하다. 흰눈으로 뒤덮인 탓에 희미해진 소리를 내며 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춘다. 집안의 유리창은 수증기로 흐려져 있고, 바깥쪽은 눈으로 반쯤 뒤덮여 있다. 하녀는 손으로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지른다. 자동차 문을 닫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녀는 기뻐한다. 왜 왔을가? 급히 문으로 달려간다. 얼른 달려가서 명랑하고 멋진 청년에게 문을 열어야지! 못된 얼굴을 한 약혼녀와 함께 들어오도록 말이야! <앗! 죄송합니다.> 하녀는 자신도 모르게 역겨운 표정을 짓고 이내 창피해한다. 가련한 청년은 무서운 눈으로 쳐다본다. 무서움을 모르던 조종사의 얼굴에 지금은 보기 흉한 흉터가 새겨져있다. 청년은 노처녀와 말을한다. 자기가 사고를 당해 신경 쇠약에 걸렸으며, 그래서 이제는 전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혼자 이집에 세들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를 보는 노처녀와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프다. 침통한 표정은 청년은 하녀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거의 명령조다. <내가 갖다 달라는 것만 갖다주고, 날 혼자 있게 해줘. 지금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 있으니까 아무 소리도 내지말아.> 하녀는 청년의 멋지고 명랑했던 얼굴을 되새긴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왜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가까이에 두고 싶고, 어루만지고 싶으며, 키스도 하고 싶을까? 잘생긴 얼굴이란 코가 작아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큰 코도 매력적일 때가있다. 그리고 눈은 커야 된다. 그러나 작은 눈도 미소를 띠고 있으면 상관없다. 작지만 다정한 눈이어야 한다.... 이마에서 시작된 흉터는 한쪽 눈썹을 거쳐 속눈썹을 지나면서, 코를 스쳐 반대편 뺨까지 깊숙이 새겨져 있다. 흉터가 새겨지 얼굴, 소름 끼치는 시선, 악의에 찬 눈빛, 그는 철학책을 읽고있다. 하지만 내가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섬뜩한 시선을 던졌다. 남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는 건 얼마나못된 짓인가! 하지만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것과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중에서 어느것이 더 나쁜 것일까?

어느 날 상처입은 조종사의 부모들이 그 집을 찾아온다. 조종사는 2층에 있는 자기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부모님을 보고 싶지 않다고 전해줘.> 그러나 부모는 청년을 만나보겠다고 고집한다. 거만하고 돈은 많지만 감정이 메말라 있는 부부다. 부모가 돌아간다. 이번에는 약혼녀가 찾아온다. <내 약혼녀에게 보고 싶지 않다고 전해줘.> 약혼녀는 계단에 서서 애원한다.< 당신을보게 허락해 주세요. 당신이 어떤 사고를 당했건, 제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약혼녀의 목소리는 위선적이다. 말하는 것이 모두 거짓말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약혼녀는 돌아간다. 세월이 흐른다. 청년은 자기 서재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린다. 창문으로 눈덮인 숲이 보인다. 봄 기운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연초록 새싹이 돋아난다. 청년은 야외로 나와 나무와 구름을 그린다. 하녀가 뜨거운 커피와 도너츠를 갖고 숲으로 온다. 하녀는 작은 이젤 위에 걸린 그림을 우연히 쳐다본다. 흉터 있는 청년이 깜짝 놀란다. 하녀가 그 그림을 보고 뭐라고 말했더라? 청년은 어떻게 하녀가 고상하고 순수한 마음씨를 지닌 여자라는것을 알게 되었더라? 가끔씩 말 한마디로 영원히 다른 사람을 정복하는데, 그런 말들이 뭘까? 하녀가 그 그림을 보고 한말이 무엇이었지? 뭐라고 말했기에 청년은 하녀에 불과한 그녀에게 뭔가 색다른 것이 있다고 느꼈을까? 그녀가 한 말이 기억이 나면 좋겠는데, 뭐라고 했더라? 그 장면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청년이 장님을 만나다. 장님은 자기의 눈이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자, 자기가 어떻게 체념했는지 말해 준다. 어느 날 밤 청년은 하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우리 둘은 모두 외롭고 삶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야. 사랑도 기쁨도 마랄 수 없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난 당신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이 약간 있어. 그리고 당신은 날 돌봐줄 수 있어. 내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하지만 나를 딱하게 여길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싶지는 않아. 당신은 나를 동정해 줄 수 없어. 당신도 나처럼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이것은 계약일 뿐이야.단순히 친구 사이에서 하는 약속인 거야.> 장님이 청년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했을까?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때로는 한 마디의 말이 기적을 낳곤 한다. 나무로 지어진 교회에 장님과 노처녀가 증인으로 서 있다. 제단에는 꽃도 없이, 단지 몇 개의 촛불만이 밝혀져 있다. 교회의 긴 의자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청년과 하녀와 증인들의 얼굴은 엄숙하다. 오르간 연주자의 자리와 성가대의 자리도 비어 있다. 신부가 강론을 하고 축복을 내린다. 밖으로 향하는 신랑과 신부의 발소리가 텅 빈 성당 복도에 울려 퍼진다. 날이 저물자 그들은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다.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이 들어오게 창문이 열려져 있다. 청년의 침대는 서재로 옮겨지고, 하녀는 청년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니까 전에 청년이 침실로 쓰던 방이다. 노처녀는 이미 결혼 만찬을 준비해 놓았다. 거실 창가에는 두 사람만을 위한 음식이 차려져 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노처녀는 다음날 만나자고 하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노처녀는 두 사람이 꿈꾸는 사랑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신혼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테이블에는 오래된 포도주가 한 병 놓여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채 두사람은 건배를 한다. 서로 상대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다. 정원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울리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숲속의 풀과 나무들이 다정하게 속삭인다. 그때까지 한번도 들어 본 적이없는 소리다. 그러자 촛불이 이상한 빛을 비춘다. 그때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불빛이다. 촛불은 점점더 신비로운 불꽃을 피운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희미한 불빛 속에서 흐려진다. 그녀의 아주 못생긴 얼굴과 청년의 일그러진 얼굴도 촛불 속으로 스며든다.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배경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아주 감미로운 음악이다. 그녀의 얼굴과 청년의 이지러진 얼굴이 희미한 안개와 흰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단지 그들의 눈빛만이 반짝일 뿐이다. 점차로 안개가 걷힌다. 그러자 착하게 생긴 어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바로 하녀의 얼굴이다. 하지만 몰라보게 아름다워져 있다. 볼품없던 눈썹은 연필로 그린것처럼 예뻤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녀의 속눈썹은 활처럼 길고 멋지게 휘어졌고 피부는 비단결 같다. 미소를 짓는 입가에는 고른 치열이 시선을 끈다. 머리칼은 비단결같고 잔잔하게 물결치고 있다. 그럼 옥양목으로 만든 심플한 옷은? 레이스가 달린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로 바뀌어져 있다. 그럼 청년은? 거의 흉터를 찾아볼 수 없다. 촛불에 반사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눈에 눈물이 고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얼굴이 다소 비뚤어져 보인다. 청년의 얼굴은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 난 눈물을 닦는다. 그러자 청년의 얼굴이 선명하게 본인다. 청년의 얼굴은 환하다. 보기 드믄 미남이다. 하지만 손은 떨고 있다. 아니지 떨고 있는 손은 신부의 손이다. 청년의 손이 그녀의 손으로 다가간다. 소리가 난다. 숲 속에서 부는 바람소리 일까. 아니면 바이올린과 하프 소리일까?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바라본다. 그들은 숲 속에서 불어오는 향긋한 바람에 실려오는 바이올린과 하프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다. 서로 손을 잡는다. 입술을 가까이 한다. 첫 번째의 촉촉하고 진한 키스, 두 사람의 심장이 고동친다......그 소리는 하나가 된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떠있다. 테이블에는 이미 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그날 밤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은 눈을 뜨자,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을까 걱정한다. 서로가 무척 근심스러운 얼굴로 아침 햇살에 드리워진 자신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 집에는 아름다운 여인과 이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진 청년이 살고 있다. 그들은 노처녀 몰래 집에서 빠져나간다. 그녀가 혹시 무슨 말을 해서 모두 엉망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새벽에 아무도 없는 숲으로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아침 해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두 사람은 서로 꼭 붙어 있다. 원하는 키스를 할 정도의 거리다. 아무도 그들을 보지못한 것같았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날 새벽 갑자기 숲속을 걷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무들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몸을 숨길 수도 없다. 한 사람이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 뒤에는 개가 한 마리 따라오고 있다...바로 그 장님이다.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장님은 그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숨소리를 듣자 장님은 인사를 한다. 아주 정중하고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이다. 장님은 무엇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세 사람은 매혹적인 노처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아침이라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 미국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다. 신부는 자기가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한다. 잠시 청년과 장님만이 남게 된다. 장님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청년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모두 이야기한다. 장님은 몹시 기뻐한다. 하지만 청년이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난 우리 부모님께 나와 내 사랑하는 아내를 보러 오라고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장님은 자기의 불안을 감추려고 애를 쓴다. 청년의 초대를 받은 부모가 도착할 것이라는 기별이 온다. 청년과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침실에서 부모님을 기다린다. 자동차 한 대가 도착한다. 부모는 노처녀와 대화를 나눈다. 청년이 자기 병이 완치되었다고 부모에게 편지를 했기 때문에 부모는 몹시 행복한 표정이다. 청년과 그의 아내가 2층 층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부모는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청년의 얼굴에는 예전과 같이 보기 흉한 흉터가 가로지르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아주 못생긴 얼굴의 볼품없는 하녀였기 때문이다. 부모는 도저히 기쁜 척을 할 수 없다. 그러자 잠수 후 청년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다 꿈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전혀달라지지 않은 것인가? 그는 노처녀를 쳐다보면서, 그녀가 자기를 전과 같이 멋진 남자로 보기를 바란다. 노처녀는 입가에 쓰디쓴 웃음을 짓는다. 신부는 거울로 달려가 자신을 쳐다본다. 현실은 너무도 잔인했다. 청년도 거울 앞에 서 있는 그녀 옆으로 다가온다. 역시 보기 흉한 흉터가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드은 어둠 속으로 도망간다. 서로 두려워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다. 도시로 떠나는 부모님의 차 소리가 난다. 엔진 소리가 멀어져 간다. 신부는 자기가 하녀였을 때 썼던 옛날 방에 숨는다. 청년은 실의에 빠진다. 청년은 신부를 껴안고 있는 자화상을 찢어버린다. 미친 듯이 갈기갈기 찢는다. 노처녀가 장님에게 전화를 한다. 장님은 가을날의 황혼이 질 때쯤 도착한다. 신경쇠약에 걸린 청년과 못생긴 신부와 대화를 나눈다.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불은 꺼져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세 사람은 하루중 가장 쓸쓸한 시간에 모여 있는 것이다. 노처녀는 문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아직도 어떻게 된것인지 모르겟소? 내 얘기가 끝나면 제발 전처럼 서로 얼굴을 쳐다보시오. 난 요즘 당신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잇소. 또한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서로 숨는다는 것도 알고 있소. 당신들이 행복하게 보냈던 저 아름답던 여름이 왜 그토록 매혹적이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들은 서로를 아름답게 보았던 것이오. 당신 들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람들이오. 서로 사랑하기에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오. 이 말을 이해 못하진 않을 것이오. 난 지금 당장 서로를 쳐다보라고 강요하진 않겟소. 하지만 내가 이집에서 떠나면... 그렇소. 전혀 걱정하지 마시오. 이집의 오래된 돌안에서 고동치고 있는 사랑은 또 하나의 기적을 나은것이오. 이 기적이란 당신들이 서로의 육체를 쳐다보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장님처럼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게 한 것이오.> 장님은 얼마 남지 않은 붉은 해가 질 무렵 집을 떠난다. 청년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다. 신부는 테이블에 저녁을 차린다. 하지만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고치고 머리를 손질하기가 몹시 겁난다. 노처녀가 뚜벅뚜벅 걸어와 신부의 방으로 들어온다. 노처녀는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격려의 말을 한다. 신부는 손이 떨려 제대로 머리를 빗지 못한다. 노처녀가 신부의 머리를 빗어주면서 말한다. <난 장님이 말한 것을 듣고 있었어. 장님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없어. 내 애인이 프랑스의 격렬한 참호에서 돌아올 수 없다고 했을 때부터, 이집은 사랑하는 두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당신들 둘은 모두 선택된 사람이야. 사랑은 바로 그런 거야.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것이지. 나 내 애인이 오늘 저 하늘나라에서 돌아오더라도, 날 전처럼 예쁘고 젊게 쳐다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 난 그럴 거라고 확신해. 그는 날 사랑하면서 죽었으니까.> 창가에 테이블이 준비되고, 신부는 서서 창문 너머로 어둠에 잠기고 있는 숲을 바라본다. 청년의 발소리가 들린다. 신부는 뒤를 돌아 그를 쳐다보기가 두렵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에서 반지를 빼어 유리창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다. 청년은 비단결 같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비단결같이 보드라운 피부를 어루어만진다.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멋지다. 그녀도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그들은 행복에 잠겨 촉촉하게 키스를 한다. 장님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자 달콤한 소나타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진다. 그때 초대 받은 또 다른 두사람이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들어온다. 바로 청년과 그의 아내이다. 뒷 모습만 보이지만 매우 우아하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있어서 그들의 얼굴이 예쁜지 아니면 못생겻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그들이 방금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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