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은 아내와 맞벌이를 한다. 그리고 둘 다 야근이 잦다보니 저녁은 주로 밖에서 각자 해결하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야근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왜?”
“여보, 나 오늘 야근해요.”
그러자 김과장은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뭐? 그럼 밥은 누가 하라고!”
때로는 무심코 뱉은 언어가 우리의 전반적인 생각으로까지 오해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예상치 못한 싸움으로까지 문제가 번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가까운 사람에게 막 대한다. 편하니까 소홀히 여기고 잘 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못한 것은 지적하려고 든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기만 한다면 우리의 관계에서 대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서로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가 쉼과 충전이 아닌 소진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전에도 지적했듯 남자들은 여자의 이야기를 늘 해결해주려고 한다.
“나 아파.”
“직장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
“친구 때문에 걱정이야.”
라고 말하는 여자를 향해 남자들은
“내가 병원에 가라고 했지!, 왜 내 말을 안 들어? 앞으로 병원 안가면서 아프다고 하기만 해봐!”
“그럼 직장 상사와 대화를 해봐, 말을 해야 알지!”
“그럼 친구에게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면 되잖아, 뭘 걱정이야? 자, 이제 해결 됐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여자의 말이 해결책이 아닌 공감을 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다뤘으므로 오늘은 한 단계 더 나가보자. 그것은 공감을 넘어선 격려다. 대학시절 우연히 한 선배와 비행기 안에서 꽤 긴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그런데 선배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칭찬했다. 그런데 그분의 칭찬이 전염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맞장구치며 그 사람들의 또 다른 면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가량의 대화가 모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칭찬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칭찬과 격려는 전염성이 있다.
위에서 다룬 김과장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를 볼 때 평소에 자신을 위해 밥을 지어주는 아내에게 감사의 표현이나 격려를 해주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맞벌이 상황에서 아내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자신을 위해 한 끼 식사를 준비해주는 아내의 모습은 눈물 나게 고마운 것이다.
2007년 중순경에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일정 중에는 한국인들과 광화문 교보타워에서 좌담회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프로수밍(prosuming;producing과 consumer의 합성어)을 하는 프로수머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며 그에 따라 앞으로의 혁명적인 부는 일상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치를 매기지 않고 있는 가사노동 같은 것은 사실상 엄청난 부의 가치가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런 대가성 없었던 영역에서 혁명적인 부가 창출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혁명적인 부의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나의 반쪽이 나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는 일들을 돌아보자. 그 가치를 부라는 것으로 매기기는 좀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것을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고 생각해본다면 상대가 내에 얼마나 헌신되어 있는지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상대의 섬김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격려하고 칭찬하자.
사람은 사랑은 먹고 자란다. 그리고 사랑은 격려와 칭찬으로 가장 많이 표현된다.